맹장 수술 후 집에 와보니,
내일 퇴원해야 하는데, 하루 일찍 퇴원을 하니 입원비가 정확하게 정산이 안된다고,
가 정산을 하란다.
맹장염 수술을 하면서 조직을 떼어 검사를 의뢰했는데, 그 결과가 안 나와서 그렇다네.
다른 질병이 있는지 암 검사도 하는 모양이다.
예상 비용에 20%를 더해서 계산을 하면 목요일 외래방문을 했을 때,
조직검사 결과와 정확한 정산을 다시 해준다는 설명이다.
퇴원수속을 하고,
목요일까지 3일분 약을 받아서 집으로 왔다.
병원에 가기전에, 지난 목요일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가 창가에 그대로 있고,
바닥에는 먼지가 밟히는 건 이해한다고 치자.
부엌으로 들어갔더니,
커다란 스텐대야에 열무가 가득 들어있다.
너무 놀라서 이게 뭐냐고 목소리를 높였더니, 열무김치 담그는 중이란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기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남자가,
열무김치 담그는 걸 구경도 안 한 남자가,
그것도 칠십을 넘긴 남자가,
대관절 왜 이러냐고?
못움직이는 아내 대신 부엌일을 하더니,
자기가 솜씨가 좋다고 착각을 하시나, 아니면 부엌을 장악했다고 생각하시나.
온갖 쓸모없는 반찬을 만드는 걸 넘어서, 이제 김치에 도전하는구나.
냉장고에 가득한 반찬들을 싫은소리 못하고 참는 것으로도 힘들었는데....
분노가 치밀어서,
입을 열면 안좋은 말이 나올 것 같아, 침묵으로 감정표현을 했다.
냉동고에서 미역국 한 봉지를 꺼내 해동해서 햇반 하나 데워 절반을 국에 말아먹고,
칫솔을 하자마자,
2층으로 올라와 누웠다.
간밤에 아기의 울음과
어제 옆자리에 새로 들어온 환자가 심하게 코를 골아서 두 시간도 못 잤기에,
모든 건 나중으로 미루고 잠을 자는 게 우선이었다.
점심식사 후 남편은 외출했다.
자고 일어나
시간이 지나니 감정이 정리되어, 남편이 들어오면 할 말을 생각해 두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먹는 게 부실해서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걸 느낀다.
아픈 몸으로도 내일 시장에 가서 내가 먹고 싶은 걸 사 오겠다.
생선도 싱싱하고 큰 것으로 살 거고,
고깃국도 갈비탕 식당에서 사 올 거다.
김치도 당신이 담 궈 놓은 건 안 먹을 꺼고 김치 아줌마 꺼 사 올 거다.
비싸다고 안 사던 과일도 사 올 거다."
나는 심각하게 말하는데 남편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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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웃으시는 부군의 표정이 떠오르면서 저도 슬그머니 웃음이 납니다.
답글
그레이스님 그렇게 말씀하실 때 엄청 귀여우실 것 같아요. 하하
그렇게 하세요.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많이 드시고 얼른 회복하세요~!!-
그레이스2018.06.12 06:29
남편이 웃는바람에
심각했던 내 감정이 다 깨져 버렸어요.
4일이나 지난 빨래를 창가에 그대로 두고,
식탁위에 내가 마시던 물컵도 안치우고 그대로 있구만,무슨 열무김치를 담냐고...
그걸 보는 내 기분이 어떻겠냐고,속상했던 감정을 털어놨어요.
나는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것만 먹을 꺼라고,
그래서 당신이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 하나도 안먹을 꺼라고,
한달 내내 못했던 속마음을 표현했어요.기운이 너무 없어서 외출을 못했어요.
시장에는 못가고,
남편이 해운대 구청옆 식당에 가서 갈비탕 2인분 사와서 지금 막 점심을 먹었어요.
체력이 완전히 바닥입니다. -
그레이스2018.06.12 15:25
지금 입맛이 같은 거 며칠 먹을 정도가 아니라서 사골은 안되겠어요.
오늘 내일은 생각나는 것 사오라고 부탁하고
모레는 시장 나가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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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답글
글을읽으며
화가치미신 그레이스님 생각도. 나구
열무김치 담구시는 바깥어른 푲닝도 교차하구요
공직이나 사회에서 열심히. 일만하시든분들이
대개 은퇴후. 집에서. 옥신각신하시는것 같아요
아픈 아내를돕는다구. 앞서 가신일이
열무김치. 담그시는 도전정신에. 한표를 드립니다.가만히
안자 세키 차려 내라구
가족들 한테 호령하시는 분도 계시든데요
편하게 생각하세요
아에 부엌을 따루 남편전용으로 내드린 분도계세요
나이먹어 식성이 다를 부부가 서로의 식성을 존중해 주는방법중하나 이지요
장에가시어 드시고 싶은거 사서 드시고
얼른 기운차리세요
허기지면. 감정이 더예민해 져요-
그레이스2018.06.12 08:59
처음에는 아내를 돕는다는 순수한 마음이었으나,
점점 실패를 하더라도 자기 맘대로 만들어보는 재미에 빠진 것 같아요.
정말이지 눈에 거슬리는데도 말리지 못했거던요.
뭐라고 한마디 하면,발끈하시는 성격이라서요.
그러니 냉장고속에 내가 먹을 게 없어요.
생선을 먹고싶어도,사지 말라고 합니다.
작년에 낚시로 잡아서 냉동실에 넣어둔 생선이 많아서 그걸 굽거나 조림을 하는데,
나는 오래된 건 질려서 싫고,
싱싱하고 맛있는 생선을 먹고싶어요.
어떤 심정인가 하면요... 50리터 쓰레기 봉투에 오래된 것들 전부 다 버리고 싶어요.
남자나 여자나
많이 도와주는 사람은 이것저것 간섭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어요.6월이 되어서는 뭐든지 잘먹고 컨디션이 좋았는데,
맹장염 수술하고,
또 항생제 진통제 부작용으로 입맛이 없어져서,오늘은 먹는게 신통찮았어요.
내일까지만 약을 먹고 목요일 외래진료가서 약 안먹겠다고... 물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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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남편분에 대한 글을 읽을때마다
남편 은퇴후의 삶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희 남편은 사실 인스턴트라면도 잘 못끓이거든요
젊어서부터 제가 아프면 슬그머니 집을 나가서 안들어 오고
저번에 너무 아파 죽 좀 끓여달랬더니 밥을 했더라구요
모든게 장단점이 있겠지만
같이 있을 일이 사실 막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답니다
그나저나 그레이스님 체력이 떨어져서 큰일이네요
일본선 장어를 먹던데... 여긴 보양식이 별로 없어서 한국 떠난지 오래 된 저로선 생각나는게 없네요
저는 그럴때 링거를 맞거나
사슴육골즙이 들어간 보약을 먹거나 한답니다
좋은 건 뭐든 챙겨 드시고
빨리 회복되기만 빕니다-
그레이스2018.06.12 20:10친정오빠가 음식이라고는 라면 끓이는 정도의 실력밖에 안됩니다.
그대신 상대의 마음을 편하게,아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반대하는 적이 없어요.
오빠였으면,
집안일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아도 파출부든 뭘 사든 니가 원하는대로 하라고 했을 겁니다.
감정절제와 참을성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서 어떤 경우에도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그러니 마음을 편하게 해줬을 꺼고요.
내남편은 누가 봐도 아내를 위하고 잘해주는 남편이라고 합니다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하기때문에 내가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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