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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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라면서 부모님에게 큰 영향을 받고
많은 부분을 닮아 가면서 어른이 되었을 거다
나 역시,
살면서 힘든 일을 겪거나 어려운 일을 앞두고 할머니라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친정할머니를 먼저 생각한다
며느리(우리 엄마)에게 할머니만큼 헌신적인 사람을 본 적도 들었던 적도 없다
엄마가 고등학생 딸에게 20년 살아온 옛 사연을 들려주면서
친엄마(외할머니) 보다 시엄마가 더 좋다고 했으니,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될 거다
할머니는 모르는 남에게도 잘하셨다
열여섯 살 나를 데리고 재래시장 가셔서, 난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물건을 살 때
무리하게 값을 깎거나 덤으로 더 달라고 요구하지 말라고 하시고
조금 덜 먹으면 될 것을
남을 서운하게 만들고 조금 더 먹어서 너에게 좋을 게 없다는 말씀이셨다
할머니의 오촌 당숙께서 일본 고베에서 성공해서 잘 산다는 소식을 듣고
할아버지 혼자 일본으로 떠난 게 아버지 태어난 이듬해였다네
4년 후 할머니는 비상금을 마련해서 남편의 편지 주소를 들고
여섯 살 아들 데리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서( 우여곡절이 오죽 많았겠냐)
일곱 살에 초등학교 입학한 사연과
하층민이 사는 공장 지대의 학교라서 일부 아동들의 나쁜 버릇부터 배우게 될 지경이라서
중산층이 사는 지역의 학교로 이동하기 위해 하꼬방 하나 얻어서 이사를 단행한 할머니
고베 시의 쯔쯔이 소학교는 일본에서 유명한 학교였단다
그렇게 교육열도 대단하셨고,
반찬가게를 시작해서 돈을 모았다고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그 돈으로 논 스무 마지기와 밭 열 마지기 그리고 집과
형님 댁을 위해서도 큰돈을 내놓으셨단다
아버지는 44년 메이지 대학 예과에 진학했으나 합격증서만 받고
패전이 임박하여 곧 학도병으로 나갈 게 명확해서 일본 육군 항공본부에 군속으로 들어가셨다
아들이 남태평양 라바울 방면으로 파견이 될 거라는 연락을 받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베에서 도쿄까지 걸어서( 통행증이 없으면 차를 탈 수가 없어서)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식권이 없으니 돈이 있어도 사 먹을 수 없어서 하루 종일 굶기도 하고
사정하여 사 먹기도 하고, 며칠 만에 거지꼴로 육군 본부에 도착하여
오직 하나뿐인 자식이라고 탄원하여, 조사 결과 무매 독남이라는 게 판명되어
대구 비행장으로 배치가 변경된 것이 귀국하는 동기가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서둘러 정리하여 귀국하셨고
아버지는 3남 3녀 자식을 키우면서
한 번도 우리들에게 크게 화를 내시거나 욕 비슷한 단어를 쓰신 적이 없었다
(잘못했을 때는 꿇어 앉아 반성하라 하시고, 아버지는 화를 가라앉힌 후 무엇이 잘못인지 타이르셨다)
가시나, 기집애 그런 단어도 안 썼고 일상생활에서도 품격 있는 어휘를 사용하셔서
중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 닮고 싶은 나의 롤 모델이 아버지였다
1926년 생이면서 키가 180이 넘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을 거다
잘 생긴 외모에 키가 크고 또 엘리트였으니... 어린 딸은 아버지가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나
내가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상스러운 단어를 안 썼던 건 아버지 영향이 컸을 거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 주점에서 58세의 아버지와 33세의 나

노년의 사진이 없어서 책에 나온 흑백 사진을 찍었다 (만 65세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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