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온 이후로
아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일곱시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한시간 후에 다시 회사 갔다가
밤 12시 이후에(혹은 2~3시에)집에 온다.
그래서 마주 앉아서 여유롭게 이야기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밥 먹는 옆에서 그날 있었던 일,
아이들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함께 웃는 정도이다.
밥을 먹고 나면 윤호 유라와 잠시 놀아주고 아기 안고 눈 맞추고 그러고는 또 나가니까
아빠는 왜 맨날 회사 가냐고...?
하기사 아침에도 다녀오세요~ 인사하고,
저녁에도 다녀오세요~ 인사하니 아이들 시각에서는 이상하겠다
며칠만에 어제 처음으로 12시가 되기 전에 집에 왔더라.
며느리도 아이들도 아줌마도 모두 잠든 시간에,
큰아들과 남편과 나 셋이서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윤호와 유라의 성격에 대해서,
속깊음과 참을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윤호가 잘못해서 아빠에게 혼날 때 유라는 겁을 먹은 듯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유라가 혼날때 윤호는
옷방에 가두겠다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린단다
아빠~~~ 유라가 이제 안 그런대요~ 유라가 안 하겠다고 했어요 하면서.
그런 걸 보믄 윤호가 더 여린 성격 같다고 하길래,
내가 보기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속 깊은 정이라고 했다.
세훈이가 두 돌쯤 되었을 때,
세훈이는 집에 재워놓고 명훈이만 데리고
남편의 선배이면서 상관이었던 상무님 댁에 잠시 들렀더니
사모님이 현관에서 그냥 가지말고 들어와서 차 한잔만 하고 가라고 권하셔서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
명훈이에게는 m&m 새알초코렛을 손에 주셨다.
얼른 커피를 마시고 나오면서 명훈이 손을 잡으려고 보니,
아이 손에 초코렛이 녹아 있네
사모님이 명훈아 왜 초코렛 안 먹었냐고 물었더니
집에 아가 줄려고...남겼단다.
나도 놀라고 사모님도 놀라고.
아이 손을 씻기고 사모님은 초코렛을 비닐봉지에 두 봉지 담아주셨다.
하나는 명훈이 꺼 하나는 아가 꺼~하시면서
명훈이는 3월생이니 지금의 윤호보다 어린 만 3세 아이가 자기 안 먹고 동생을 챙기다니~!!
그때의 일을 큰아들에게 들려주면서,
몇 가지 더 옛이야기를 했다.
엊그제 유라가 어린이 집 다녀와서
사소한 트집 잡아서 징징거리다가 옷에 오줌 싸고 울었을 때
윤호는 유라가 걱정되어 엄마가 준 초코렛을 안 먹고
목욕탕에서 씻고 나오도록 기다렸다가 유라 손에 쥐어 준 사건과 비슷한...
(유라가 울고 있는데 나 혼자 먹을 수는 없다는 윤호의 말에 나도 며느리도 아줌마도 다 놀랐었다)
아마도 휴일이었을 텐데
선잠을 깬 세훈이가 식탁에 앉아 밥을 안 먹고 징징거리니 달래다가 화가난 남편이
세훈이를 달랑 들어서 현관문 밖에 세워두고 문을 닫아버렸다.
아기는 죽겠다고 큰소리로 울고...
식탁에 와서 명훈이도 밥을 안먹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보더니,
너도 쫓겨날라고 그러냐고 야단치니까,
울먹울먹 하며 아가가 쫓겨났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 수가 있겠어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명훈이의 그 말에 남편 얼굴이 변하면서,
얼른 밖에 가서 세훈이를 안고 오셨다.
역시 그즈음의 다른 이야기.
만 3세 즈음부터 레고 만들기를 무척 좋아했으나 아직 어려서 손이 정확하지 않아서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끼워달라 다시 분리시켜달라 수시로 달려왔다.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가 편하게 커피 마시는 여유가 어디 있겠냐?
싱크대 앞에서 세탁기 옆에서 일하다가 마셨는데
그즈음에 명훈이에게 부탁을 했었다.
엄마가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때는 부엌에 들어오지 말고 부엌 앞에서 기다리라고
커피 다 마시고 도와주겠다고.
알았다고 하더니,
엄마~~~ 레고 끼워줘~하며 작은방에서 달려오다가
커피 마시는 나를 보더니,
앗~ 커피 마시네~ 기다릴게~~ 하고는,
부엌과 거실 경계선에 두 발을 가지런히... 운동선수가 출발 전에 신호 기다리는 포즈로 서 있었다
어젯밤에 그 포즈를 흉내 내어 보였더니 아들이 웃는다.
엄마와 한 약속은
몇 달이 지난 후에도 꼭 지키고
해도 되는 일인지 하면 안 되는 일인지를 꼭 물어봤었는데
윤호도 똑같이 그러네
지난번에 아들이 말했던 윤호와 유라가 다른 점은,
윤호는,
어떤 행동을 해도 되는지,
하면 안 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왜 하면 안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면 납득을 한다고.
유라는,
자기가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가 판단기준이 된단다.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단다.
아빠가 왜 안되는지 열심히 설명 중인데,
그 말은 안 듣고 인형을 보여주며 아빠 이거 이뿌지?
라며 딴소리한다고 했었다
아들이 기억 못 하는(들어서 어렴풋이 아는) 옛 일들을 풀어내다 보니,
닮는다는 건
교육이 아니라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고,
그 게 어떻게 시켜서 되겠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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