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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모임

안동 - 도산서원 그리고 이야기 하나.

by 그레이스 ~ 2017. 11. 20.



도산서원 앞마당에 수령 600년 정도 되는 고목 두그루가 눈길을 끈다.

가지를 지탱해주는 지주목을 여러개 세워 제대로 뻣어나가도록 해놨다.

해설사의 설명으로 정확한 연대는 모르겠으나 서원이 터를 잡았던 그 시기에 심었던 나무일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간 다음날이 음력 초하루여서,

제사를 모시는 행사가 있다고,하루 전에 도착해서 이곳에서 잠을 잔다면서,

자원봉사를 맡으신 분이 해설을 해주셨다.

은퇴후 봉사활동으로 휴일에는 해설사 역활도 하신다고.

대학교수로 은퇴하신 분이어서 강의 하듯이 설명을 잘 해주셨다.



퇴계선생께서 직접 쓰신 도산서당 현판.

자세히 보면 '서'자 안에 기러기가 들어있다.

여러 일화에도 재치와 유머가 있어서 그 성품을 짐작할 수있는데,글씨에도 유머가 담겼다.



선조의 명을 받아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현판.

그 유명한 도산서원 현판을 쓰라고 하면 젊은 한석봉이 놀라서 붓이 떨릴 것을 염려하여,

선조께서 부르는데로 쓰라고 명하시고,꺼꾸로 '원' '서' '산' 을 쓰고나서 마지막으로 '도'를 불렀더니,

그때야 내가 도산서원 현판을 쓰는 구나 알아차리고 떨리는 맘 진정하고 도 자를 썼으나

붓이 떨려서 도 자가 비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도산서원의 위세가 그 정도로 높았다는 일화 인 듯.




농운정사는 요즘으로 말하면 기숙사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도산서원에서 공부할 수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요즘으로 비유하면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한 정도의 유생이 과거시험 준비하러 들어오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과거가 3년마다 있었으니 유생이 들어와서 서원에 머무는 시간은 3년인 셈이다.


여러곳의 사진을 찍었으나

도산서원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끝내고,

이번 모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안동에서 낮 12시에 만나,

(여행가방을 차에 실은채로)점심은 재래시장 부근의 안동찜닭을 먹었다.

그 후에 도산서원으로 가서 친절한 해설사를 만나 상세한 설명을 듣고,여러가지 질문도 했다.

현재 도산서원 원장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국무총리 혹은 장관을 지낸 분 중에서 원장을 맡으셨다고 한다.

말하자면,서원의 원장은 대학교의 총장이니,설립자의 후손이 맡는 건 아니다.

친정아버지의 영향으로 내가 제일 관심이 많았다.


도산서원을 나와서는 단풍이 유명한 곳으로 갔으나, 이미 떨어져 단풍구경은 못하고,

가까운 찻집에서 (다른 손님은 없고 우리 일행뿐이어서)거의 두시간을 얘기하며 놀다가,

7시 후에 찻집 주인이 소개해준 한우 전문식당에 가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모텔은 개업한 지 얼마 안된 듯

깨끗하고 넓은 방에 침대와 침구도 좋았는데,가격이 4만원이어서 놀랐다.

아침은 해장국집 국밥으로 해결하고, 하회마을로...

(나는 해장국이 너무 매워서 국물은 한숟가락도 못먹고 건더기만 조금 먹었다) 

기록물 보관 건물에서 징비록 사본 앞에서,

임진왜란과 이순신을 다시 떠올리며 저마다 착찹한 감정으로 한마디씩 했다.


토요일 점심은,

안동 가면 꼭 먹어보라던 헛제사밥 식당으로 갔더니,한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아무튼,가격 대비 실망이었다.

1인당 만팔천원이었는데,나물,전,생선,탕국...

어느 것 하나 일반 가정집에서 준비하는 제사 음식 비슷한 게 없었다.

일반식당에서 만팔천원짜리 한정식을 시켰으면 훨씬 나은 음식이 나왔을 거다.


헛제사밥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크림빵이었다.

1인당 2개씩만 살 수 있다고 줄을 섰길래,아주 맛있는 빵인가보다고 기대했으나

집에 와서 먹어보니,일반제과점의 크림빵보다 훨씬 질이 떨어져서 한입 먹다가 남겼다.

속의 크림은 다  덜어내고 빵껍질에 딸기쨈을 발라 먹었으니 참~.

그래도 한우 생고기 숯불구이를 맛있게 먹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 겠다.


일행중 어느댁 손녀 이야기.

며느리가 알레르기가 심한 체질이어서 대학생이 되어서도 외식을 못하고 꼭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나중에야 들었단다.

아들이 미국 유학중에 첫손녀가 태어나서,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사진이 왔는데,

좀 이상해서 물었더니 태열이 심해서 그렇다고 하더란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아기는 알레르기증세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서,

호흡곤란으로 수시로 응급실에 드나들었다.

단백질에 거부반응이 있으니,모유도 분유도 먹일 수 없고,특수한 분유를 먹였다.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에는 간장 한방울도 음식에 들어가면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었다.

콩이 들어간 일체의 음식이 안되는 상황.

생선도 마찬가지.

모든 음식을 반응을 살피면서 아주 조금씩 늘려 가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음식을 만드는 시어머니와 아기 돌보는 며느리의 정성이 눈물겹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아기 때문에 친구부부의 사생활을 포기하고 단독주택 2층에 아들가족이 들어와 살았다.

아들가족이 오기전에 벽지와 페인트도 천연제품으로 외국에서 구해와 전부 다시 했었다.

모든 옷과 집안 소품도 천연면으로 교체하고.

몇년후에 아이 상태가 좋아져서 이사를 나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건강상 이유로 입학만 하고 홈스쿨링으로 공부를 했다.

온갖 정성으로 돌 본 결과 열살이 넘으면서 면역력이 강해져서

이제는 왠만한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다고 하더라.

올해 중학생이 되었는데,

초등학교 과정을 집에서 인터넷수업 하루에 한시간씩 공부한 것으로는

수학이 다른 아이들보다 뒤쳐져서 개인과외를 시켰더니,

과외선생님에게, "저를 도저히 못가르치겠다고 엄마에게 말해주세요"했었단다. 

그 말을 전해듣고 과외를 중단하고,고민끝에 시부모님께 상의를 했겠지.

할아버지께서 주말마다 아들집에 가서 손녀를 가르치신단다.

수학를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의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신다고 했다.

그 나이에 알아야 할 사회성과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

몇년전에 정년퇴직하셨으나,요즘도 대학원 강의를 나가시고,

전공분야에서는 우리나라에서 1인자여서,지금도 바쁘게 활동하시는 중에,

매주 하루를 손녀를 위해서 강의하시는 할아버지.

참~~~

멋진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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