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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아들과 여행.(바르셀로나 그리고 남부 프랑스)

by 그레이스 ~ 2019. 1. 11.

 

 

형제 카톡방에 매일 오빠의 그리스와 터키 여행기가 올라 온다.

메테오라,갈리폴리,에페소,파북칼레...

봄에는 동유럽 다녀오더니,가을에 또 갔었던 모양이다.

여행 다는 걸 좋아해서 일년에 두번씩 외국으로 나가는 오빠와 남동생을 보니,

장거리 비행기 타는 게 싫어서 외국여행 안가겠다고 선언한 남편과 비교된다.

 

일년에 몇번씩,

30년을 유럽으로 미국으로 출장을 다니는동안,

회의가 없는 날은 이곳저곳 다녔다면서,더 가보고싶은 곳이 없는데 왜 또 가냐고 한다.

내 인생에 가장 좋았던 여행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겠다는 말도 덧붙여서.

가장 좋았던 여행이라는 건,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프랑스 남부를 큰아들과 함께 다녔던 여행이다.

 

싱가포르에서 런던으로 스카웃되어 간 아들이

부활절휴가에 부모님과 여행을 하고싶다면서,어디가 좋겠는지 전화를 했었다.

그렇게 결정된 여행이었다.

 

 

아들은 런던에서 출발해서 바르셀로나로 가고,

우리는 서울에서 파리로 가서 이틀 놀다가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기로 했다.

2008년 3월 16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했고,3월 26일 귀국했으니 10일간의 일정중에서

아들과 함께 있었던 날은 6일이었나보다.

파리에서 이틀을 보내고,저녁에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탔다.

바르셀로나에서 아들을 만나 호텔을 찾아가니,

아들이 예약한 방이 맘에 안든다고, 아버지가 호텔측에 더 나은 방으로 옮겨 달라고 했었다.

아래는,2008년 여행을 다녀와서 썼던 글이다.

 

 

아들이 예약한 방보다 좀 더 좋은 곳으로 옮겨서 짐을 풀고나서(하루에 50만원 정도),

 

이미 밤 1시가 되었건만 방에있는 미니바의 위스키와 맥주로 가족상봉 축하를 하고...

 

그렇게 가족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앞은

관광객들로 복작복작~

 

 

 

호텔방에서 본 광장.

 

 

 

 다음날 아침.

제대로 갖춰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식당을 찾아 내려가다가 발견한 시장.

(하얀색 자켓을 입은 사람이 아들인데,저 자켓이 아버지 맘에 안들어서 백화점에 가서 새로 사입혔다.)

 

 

 

각종 말린과일과 너트를 사고,

 

 

 

햄과 베이컨도 사고,

생과일도 사고.

 

 

 

 

간밤에 늦게까지 먹어서, 

아침겸 점심을 먹을 참이었기에 약간 늦은게 탈이었을까?

적당히 배고픔이 느껴져서 봉지봉지 사 들고, 레스토랑에서는 또 풀코스로 시키고...

 

 

 

우리는 테이블에서 먹었는데

 

차마 사진은 못찍었지만 빠에야를 메인으로

 

스프와 셀러드까지 곁들여서 와인까지 80유로가까이에 팁 15유로 포함해서 95유로를 지불했다.

 

이후에도 호텔방에 팁을 두고 나오는걸로 아들과 아버지의 의견차이가 있었는데,

 

명훈이는 2유로면 충분하다고 하고,

 

아버지는 5유로를 두라고 하고...

 

아버지의 설명이 "너같은 젊은이는 1유로,2유로면 충분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르다."

 

"나는 가난한 나라에서 일하러온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차원에서 넉넉하게 주려는거다,

 

그리고 친절한 한국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기는게 다음에 오는 한국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곳곳에서 아까울 정도로 넉넉한 팁을 주는 남편의 인심에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눈치만 봤다.

(그당시 남편은 현역 사장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해변에서 바라다본 요트 계류장.

 

 

요트를 끔찍이도 좋아해서 몇년전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한척 살려고도 했지만

내가 결사반대를 했었고,

유지비용이 워낙 대단해서 꿈으로 끝났었다.

요즘도 요트만 보면 그냥 못지나가는 열렬 팬이다.

 

 

 결국,

계류장을 가까이서 보려고 해변과 연결된 다리를 건너 섬으로 들어 갔다.

 

 

 

마침 우리가 건너고난후

통행금지를 시키더니

다리의 중간부분이 움직여서

그 사이로 요트가 지나가고...

 

 

 

 

 

 다리는 원위치로 돌아오고,

 

 

다시

사람들이 건너가고...

요트계류장과 제법 근사한 레스토랑도있다.

차 한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중.

(10년 전의 명훈이를 보니 엄마 눈에는 귀여운청년이구나 )

 

 

 다음에는 가우치 건축물을 보러 갔다.

여러곳의 사진중에서 대표로 한장만 뽑았다.

 

 

가우치 건축물을 본 후,

바르셀로나에서 제일 큰 백화점으로 가서,아들의 옷을 샀다.

아버지가 보기에,

입고 온 아들의 차림이 영~ 맘에 안들어서,

쉐터도 사고 청바지도 몸에 착 붙는 것으로 새로 사고,

고가의 윗옷을 사려했으나 맘에 드는 게 없어서 본인이 원하는 가죽잠바도 사고.

나도 사달라고 해서 고급 구두를 하나 샀다.

바르셀로나 호텔에서 이틀 자고,

오전에 중앙역에서 프랑스 페르피낭역으로 가는 특급기차를 탔다  

 

 

 

명훈이는 새로 산 쉐터와 청바지를 입었다.

아버지와 피레네산맥과 스페인역사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중.

아래 지도를 펼쳐놓고 기차가 지나가는 지역의 지명을 확인해가면서.

 

 

페르피낭역에 도착해서 기념사진을 찍고.(바람이 너무 불어서 머리카락이 전부 뒤로 넘어갔다.)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하고는,

기차를 타고오면서 피레네산맥에 대해서 열심히 얘기하더니,

안도라공화국을 보고싶다고 한 번 가보자고 하셨다.

 

그리하여,

일정을 바꿔 버스를 타고 피레네산 깊숙히 들어 갔는데,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얼마나 고불고불하던지...

두 남자는 견딜만했으나, 나는 멀미가 극심해서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어

목적지까지 못가고 몽루이에서 내렸다.

 

 

2급 정도의 호텔에 들어가 하룻밤을 자고, 다시 페르피낭으로...

멀미에 몸살까지 겹쳐 아픈 엄마를, 아들은 다리도 주무르고 괜찮겠냐고 걱정하는데

남편은 자기 고집으로 오게 되었다는 민망함을 감출려고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피레네산 속에 와보겠냐고 너스레를 떨더라.

아래는 아침에 일어나서 창밖으로 본 전경이다.

 

 

다시 페르피낭으로 돌아와서,

님므에 호텔을 정해놓고,님므와 아를 그리고 악상프로방스를 구경했다.

 

 세잔의 작업실과 흔적이 있는 악상 프로방스.

 

 

 

세잔느가 자주 갔었다는 카페에 갔더니,벽에 세잔이 그린 카페그림이 걸려있었다.

음식을 먹었는데 뭘 먹었는지는 오래 되어 기억이 안나네.

 

 

세잔의 아뜰리에가 있는 집.

 

 

 

 

 

 

건물내부 아뜰리에도 구경하고,

정원 산책도 하고...

명훈이는 나를 닮은 체격이어서,앞에서 보면 몸집이 커 보이는데,

옆모습으로 보면 상당히 날씬하다

왼손에 들고있는 건 노트북.(노트북을 호텔에 둘수 없다며 가지고 다녔다)

 

 

 

 

 

다음날은 남편이 가장 가보고싶어했던 고흐의 흔적을 찾아서 아를(르)로 갔다.

고흐의 작업실에도 가보고,

그림에 있는 장소에 가보고,

헌책방에서 남편의 출생연도인 1946년도에 출판된 책을 한권 샀다.

 

 

 

 

 

다른 가게에는 관광객이 많지 않았는데,

유독 여기는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잠시 쉬고는 저녁에는 별이 빛나는 강가에 가서 산책을 했다.

 

 

 

 

다음에는,마르세이(내가 마르세이유라고 발음하니, 유는 묵음이라서 소리가 안난다며 

마르세이가 맞는 발음이란다)로 가서 항구를 구경하고,

그곳의 특산물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다음날 새벽 마르세이 공항에서 아들은 런던으로,우리는 파리를 거쳐 서울로 왔다.

 

바르셀로나 2박,

몽루이  1박,

님므   2박

마르세이 1박

아들과 단둘이,밤늦도록 이어지는 이야기 이야기들...

아버지는  6일동안 잠자는 시간만 빼고,

가는 곳곳마다 중세시대까지 거슬러 역사와 지리적인 이야기,

화가들,음악가들,귀족 후원자들에 대해서도 서로 토론하고,

 

그리고 어떻게 살고,무슨 일을 겪었는지...살아 온 이야기,

가치관 인생관,

앞으로 바라는 것들.

아들에게 들려주고싶은, 모든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 그레이스2019.01.11 13:42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다닌 그 여행이 너무나 좋아서
      그해 여름에는 아들이 있는 런던에 가서 2주 있다가 왔어요.
      아들과 같이 어릴때 살았던 동네와 다녔던 초등학교, 우리가 살았던 집에도 가보고,
      아들이 운전해서 영국 남쪽의 바닷가에도 갔다오고,
      근사한 레스토랑에도 가고,
      밤에는, 나는 빼놓고 아들과 술한잔 하러 팝에도 가고...
      2008년도부터 해마다 한번씩은 큰아들과 여행 다녔어요.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
      공항에 내리면 예약해둔 차를 받아서 아들이 운전하면서 다녔으니 편하고 여유롭게 여행을 했어요.

  • 꽃밭에서2019.01.11 17:45 신고

    안녕하세요~^^
    가족간에, 부자지간에 화목한 사랑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덕분에 간접적인 유럽여행의 향기를 살짝 맛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답글
  • 키미2019.01.11 19:55 신고

    참 좋습니다.
    아드님이 지금은 살이 약간 붙었네요. 그땐 샤프한 청년, 매력 있습니다.
    그레이스님이 바람에 머리 날렸다는 사진이 좋은데요. 머리가 뒤로 자연스럽게 바람에 빗겨져 멋있어요.

    고흐는 100주년 기념 전시회를 암스테르담에서 암표를 사서 봤습니다.
    그런 전시회는 예약제라 당일 관람은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도 네덜란드 가서 제일 잘 한 것이 그 전시회 본 겁니다.
    그림은 생각보다 좀 작았고, 그림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어요.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십 년전인데도 벌써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군요.
    십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드님 결혼에, 손주들 탄생에, 좋은 날들입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9.01.11 21:14

      사진을 보니 그때는 좀 말랐었네요.
      아들은 살찐 틈이 없을만큼,
      시간을 쪼개서 살 정도로 바쁜 나날이었어요.
      10년 전 내모습도 반갑네요.ㅎㅎ

      100주년 기념 전시회면 1990년인데,
      키미님의 빛나는 젊은시절이네요.
      그 시절에는 여행을 다녀도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았는데...
      가끔 그때가 그립죠?

    • 키미2019.01.12 07:26 신고

      네. 그때는 유럽도 안전했고, 한국사람도 많지 않아서 한적하게 잘 다닐 수 있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은 그때 에이즈 환자가 많다고 소문이 나서 좀 무섭긴 했지요.
      에이즈가 막 소문이 나던 시기네요.

      고흐는 워낙이 좋아하기도 했지만 색감이 좋아서 더 좋아합니다.
      요즘은 좀 차분한 그림들이 좋습니다.

    • 그레이스2019.01.12 08:08

      우리가족이 여행을 많이 다니던 82년 83년 84년 그당시는
      유럽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사람을 만나기 어려웠어요.
      외국인들도 여행을 안다니던 때라서
      로마의 트레비분수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고 두 아들데리고 나만 앉아있어요.
      20년후에 가보니,각국 사람들이 와글와글... 발 디딜틈이 없더군요.
      지금은 유명 여행지마다 사람들이 밀려다닌다고 합디다.
      더럽고 복작거리고...

      옛추억이 많은 런던은 가끔 그리울 때가 있어요.

  • 여름하늘2019.01.11 21:37 신고

    윤호가 아빠를 꼭 닮았네요
    윤호아빠의 젊은시절 모습은
    와우- 정말 누구나 탐낼만큼
    정말 멋진 청년이네요.
    그레이스님께서는 그러한 아드님을 보실때마다
    정말 흐믓 하셨을것 같습니다
    10년전 아드님과의 좋았던 시절 사진을 보시며
    옛생각에 참 즐거운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되네요

    답글
    • 그레이스2019.01.12 00:35

      윤호랑 정말 많이 닮았죠?
      나도 윤호를 보면서 깜짝 놀랄때가 있어요.
      큰아들 어릴때를 보는 것 같아서요.

      미국에서 대학원졸업식에도 아버지는 바빠서 못가고 나혼자 참석하고
      프랑스에서 인시아드 졸업식에도 나랑 작은아들만 참석했어요.
      나는 아들과 여행을 여러번 다녔지만,
      아버지는 프랑스남부 여행이 아들과 첫 여행이어서,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것 같아요.
      참 좋았던 여행.
      아름다운 추억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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