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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명절에 자식들이 안오는 이유.

by 그레이스 ~ 2019. 9. 8.

부산의 60대 70대의 사고방식은(평균적으로) 서울 사람에 비해서 훨씬 보수적이다.

아직도 명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

운동을 하고 목욕탕에서 만나면,

명절 장보기와 자녀들이 언제 내려오는지도 화제 꺼리다. 

 

나는 자식들에게 명절에 부산 오지 못하게 했다.

아들 결혼시키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작은아들이 먼저 결혼했는데,

12월 4일 결혼식을 하고 곧장 임신이 되어,

2012년 설명절 즈음에는 입덧이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은 상태에서 대상포진까지 걸려있었다.

태아를 생각해서 대상포진 치료도 못하고 그냥 겪어내는...

내가 올라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영양제를 맞히고,

조금 나아지면 곧 설이라고 내려가야겠다는 걱정을 하길래,

몸조리나 잘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첫명절을 보내고, 그 해 8월에 하윤이 낳고 한 달 지나서 추석이었다.

당연히 못오는 거지.

 

그 해 6월에 큰아들 결혼해서

큰며느리에게는 추석이 첫 명절인데,

작은며느리는 못 오게 했는데, 큰며느리 불러서 일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큰며느리의 직업이 휴일도 없을 만큼 바빠서 서울 갔을 때 며느리가 밤샘하는 걸 직접 봤기에,

추석 연휴에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큰아들에게 전화해서,

추석에 안 와도 되니까 둘이서 외국으로 여행 가라고 했더니,

아들은 감사합니다 했는데,

며느리는 친정어머니에게 의논했더니,

며느리 맞이하고 첫 명절에 그럴 리가 없다고, 오지 말라고 하셔도 가야 한다고...

혹시나 너를 시험하는지도 모른다고... 걱정하셨단다.

사위가 아니라고 어머니 허락을 받았다고 했더니, 사부인께서 직접 전화를 하셔서  물으시길래, 

내 뜻을 말씀드렸던 일이 있었다.

 

2013년 설 명절이 오기 전에,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명절을 없애고,

기제사만 지내겠다고 두 아들에게 알리고,

명절 지난 다음 주에 (도로가 복잡하지 않을 테니) 우리가 서울 가서 다 함께 식사하자고 했었다. 

2013년 설 명절에는

그다음 주에 자식들이 부산으로 와서 내 생일을 축하해줬다.

2014년부터는

명절 다음날 몇 가지 음식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우리가 서울로 갔었고,

아들들은 편한 시기에 부산 내려왔었다.

 

쌍둥이 태어나고 백일잔치하는 날.

윤호 유라를 안아주는 할아버지를 보고,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도 할아버지와 많이 놀고 싶었는데 놀지 못했다고,

하윤이가 서운해하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 어찌나 마음이 아리던지...

여름휴가라고 부산 내려올 때,

당분간은 두 가족이 동시에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할아버지가 자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믿고 있는 아이의 믿음을 깨트리고 싶지 않아서... 

 

결혼해서 3년 만에 임신한 큰며느리는 2015년 11월 30일 쌍둥이를 낳고,

2017년 설 명절에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돌 지난 쌍둥이를 태우고 장장 아홉 시간을 운전해서 내려오느라 아기들은 울고불고...

어른도 아기들도 전쟁 중에 피난 가는 것만큼 고생을 했었다.

서울 갈 때는 자동차는 우리 집에 두고 ktx로  가고,

대리운전기사가 서울에서 ktx 타고 내려와서 서울까지 배달했었다.

그런 난리를 치렀으니, 

앞으로 몇 년간은 내려 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다.

 

몇 년이 지나니,

이제는 명절에 내려오지 않는 게 익숙해져서 음식 장만한다고 재료를 사러 다니지도 않는다.

돌아가신 기일에 제사를 모시는 것도

이다음에 며느리에게는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가 죽고 나면,

너희들은 우리를 기억하고,

제사가 아니라도 어떤 형식으로든 추모하면 된다고 할 참이다.

 

  • 그레이스님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경의를 표합니다.
    또 그런 결정에 동의하는 남편분도 대단하신것 같아요.
    명절은 가족의 단합과 친목을 위한 것인데 여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명절은 매우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오죽하면 명절 후에 이혼이 증가하고 여자들이 가짜 기브스를 하고 입원까지 하겠어요?

    • 그레이스2019.09.08 11:44
       
      시동생들은 서울 가까운 곳에 삽니다.
      먼 부산까지 오는 게 힘드니까, 서울 산소에 가서 인사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결정하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우리가 서울에서 계속 살았으면,
      시동생들 그 가족들이 우리집에 와서 먹고 놀고 하느라 명절 없애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남편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이라면,
      뭐든지 제 의견에 찬성할겁니다.
      나는,
      어떤 결정을 앞두고,
      아들을 먼저 생각합니다.
      아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인가,
      도움을 주는 일인가,
      그런 기준으로 판단을 하니,명절을 없애야 겠다는 결정이 됩디다.

      명절에 부산 오더라도 두 아들이 동시에 오는 건 피해라고 했어요.
      하윤이 하영이도 아직 어리고
      윤호 유라도 어려서
      할아버지의 사랑이 나눠지는 걸 직접 경험하면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믿고있는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꺼라서요.
      차라리 내가 손님을 두번 치루는 게
      몸은 고단하더라도 훨씬 유익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어요.
  • 개선문2019.09.08 11:17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곧 30년 직장생활을 마칠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50대 중반 아줌마^^ 인데요. 그저 조용히 읽고 사라지기만 하다가 오늘 올려주신 글을 읽으며, 감사의 마음을 표해야 할 것 같아서 댓글 처음 달아봅니다. 네이버 블로그처럼 공감버튼을 누를 수 있다면 공감을 백만번쯤 누르고 싶은 글들이 참참참 많았는데, 공감버튼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었답니다.
    자식들이 훌륭히 자란데에는 지혜로운 어머니가 있다는 생각을 올려주신 글을 읽을때마다 하게 됩니다. 저부터도 당장 내일 모레면 오만가지를 꾸려서 시골로 가야하는데, 회사일도 골치아픈게 많은 시점이라 머리와 마음과 몸이 다 제각각 그냥.. 확 숨고 싶은 심정이거든요. 그래서 매번 다짐하고 생각한답니다.
    이 모든 형식적인 행사들은 절대 물려주지 않는다고요.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셔서 좋은 글, 좋은 지혜 많이 나눠주세요. 감사합니다.

    • 그레이스2019.09.08 12:04

      개선문님의 복잡한 심정이 절절이 공감 됩니다.
      31세에 런던 발령받아 나가면서 (시어머니와 시동생이 3명 있어도) 시아버지 제사를 모시고 갔어요.
      3년후 돌아와서는 울산에서 오만가지 음식 만들어서 자동차 뒷 크렁크에 다 못실어서 뒷자석에도 싣고,
      시어머니 계신 인천으로 갔었지요.
      그당시에는 명절후에 시장이 며칠 놀아서 동서들에게 나눠 줄 반찬까지 준비해서 갔어요.
      나눠 줄려고 불고기도 600g 10근을 양념재워 가고요.
      조카들 명절옷도 백화점 유명 브랜드로 하나씩 다 준비하고...
      그렇게 하다가,
      울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간 이후에 우리집에서 모셨습니다.
      그 때 동서들에게 선언을 했습니다
      훗날 내가 며느리를 보면,
      그해부터 우리집에 오지말고 산소 가라고요.
      내며느리에게 친척들 음식수발까지 들게 하고싶지 않다고 했어요.
      기제사 음식을 마련할 때도
      시동생들이 제사음식 말고 각자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달라고 전화합니다.
      해파리 냉채도 하고,잡채도 하고,해물잡탕도 하고... 그랬어요.

      2012년 큰아들이 결혼한 그해 가을에 시어머님 돌아가셨어요.
      그러니,
      내가 집안의 어른이라서 결정하기가 쉬웠습니다.

  • 키미2019.09.08 16:22 신고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정이 종가집이라 일 년에 제사가 10번도 넘었는데..
    남동생 생각에는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보다 병구완하시던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것이
    다 집안 일에, 제사에 너무 치여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삼우제 끝내고 집에 와서는
    이제부터 우리 집에 제사는 없다. 그냥 성당에 다 미사예물 넣고 생각날 때, 산소에 가고 하도록 하자.
    그렇게 하고는 당시에는 작은아버지 여동생은 난리가 났지만..저는 찬성이었어요.
    우리 아래 세대들은 누가 돌아가셔도 음력도 제대로 모르는데..어떻게 제사를 지내겠어요.
    다 산 사람들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지..
    처음에는 다들 불만이 많더니, 정작 기일이 되어서 산소에 가자고 하면 다들 바쁘니, 뭐니..
    저도 지금은 큰 집에 가지만
    나중에 힘들면 못 가죠. 그 집도 아이들이 다 출가하고 나면 자기 식구들끼리 지내고 싶을테고 말입니다.
    즐겁게 명절을 보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분들이 많습니다.

    • 그레이스2019.09.08 19:32
      집집마다 사연은 다 다르겠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집에서 차례를 안지내고 산소에 가서 지내는 집이 많습디다.
      우리 친정도
      몇년 전에 오빠가 단안을 내려서 집에서 모시는 건 없애고
      명절에도 기일에도 올수있는 사람은 산소에서 모이자고 했어요.
      오빠의 아들이 딸만 둘 있어서 다음 대에는 제사를 물려 줄수도 없는데,부담만 준다고 생각하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해서 오빠가 결단을 내린 것 같아요.
  • 하늘2019.09.08 17:53 신고

    한국의 시댁문화가 그레이스님댁처럼 바뀔 날이 올까요...?
    몇년 한국 살면서 명절이 아니라 기절이네.. 라고 친구에게 말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많은 식구들 매끼니 식사며 제사준비 손님맞이...
    지금 생각해도 아득해요 ㅎ
    명절문화가 시대를 따라갔으면 좋겠어요

    • 그레이스2019.09.08 19:37

      아직도 전통 그대로 지키는 집도 많지만,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는 점점 달라지고 있어요.
      음식도 종류도 간소해졌고,양도 많이 줄었어요.
      명절 전날은 횟집이나 밖에 나가서 외식하고,
      차례 모시고 한끼만 집에서 식사하는 걸로 바뀐 경우도 많습디다.

  • christine2019.09.12 11:14 신고

    정말 현명하십니당~ 이젠 세상이 변해서 맞벌이도 많고 유학, 파견, 이민등으로 해외거주 가정도 많고 또 젊은세대들은 명절때 해외여행도 나가고 이렇게 바뀌다보니 명절때 꼭 가족을 만나야한다는 생각은 벗어나도 될듯합니당( 저희는 오래전부터 이미~ ㅎㅎ)
    부모 자식은 서로 보곳싶을때 or 만나야할 일이 생기면 보면되공 전통과가풍은 시대가 변했으니 거기에 많게 어른들이 룰을 정하심될것같아욧~
    전 이주전에 친정가서 추석인사하공 할머니할아버지 산소도 가공 지난주엔 시댁가서 미리다하고 왔어용~ 시부모님께서 명절때 역귀성해서 울집에 오셨는데 3년전 시어머니 돌아가시공 시어른 혼자 올라오시다가 작년구정부터는 각자 알아서 명절보내자하시더라구용~ 아직도 주변에서 전통을 고수하고 명절스트레스겪는 집들보면 진짜 안타까워용~ ㅠㅠ

    • 그레이스2019.09.12 13:44

      옛날에는 일찍 결혼해서,
      20대 30대 며느리가 일하고,50대 시어머니들은 물러나 있었는데,
      요즘은 60대 70대에도 명절음식을 하느라 고생하는 늙은 아내들이 수두룩 하니
      체력이 안되어 더 이상 못하겠다는 푸념이 나오더라구.
      시엄마도 며느리도... 서로 서운하고 원망하는 사이가 될 바에야
      차라리 명절을 간소하게 하거나 없애는 게 좋을텐데,
      여자들은 간소하기를 원하지만 시아버지들이 고집 피우고 동의를 안한다더군  

       

늘 합리적인 결정을 하시되 그 기저에는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자리한 그레이스님!
올 한 해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그레이스2022.02.01 08:25

데이지님의 따듯한 격려에 기분이 환~ 해졌어요
자식들에게 명절에 부산 오지말고 여행 가라고 했던 게 벌써 9 년 전이네요
그때는 이해 못하겠다면서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어요
괜히 이웃집 눈치도 보이고, 마음이 불편했는데
점점 사회 분위기도 달라져서
몇 년 전부터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자식들에게 부담 안 주는 가정이 늘어났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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