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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

다림질을 하면서

by 그레이스 ~ 2021. 11. 11.

물빨래하면 옷이 줄거나 변형될까 봐 입었던 스웨터를 세탁소 보내려고 종이박스에 담아놨다가 

까짓 껏 새 옷도 아닌데...

어제 큰 다라이에 물비누를 풀어서 30분 이상 담가놓았다가 

가볍게 손질해서 세탁기에 넣고 울세탁으로 돌렸다.  

 

4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았으면 가사 일중에 잘하는 게 한 가지는 있을 텐데

나는 그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일이

음식 만들기도 아니고 정리정돈이나 집안 청소도 아니고 다림질이다 

특히 주름을 잡고 각을 맞춰야 하는 와이셔츠나 회사 근무복은

세탁소에서 다림질한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이제는 정성스레 다려야 하는 옷도 없지만 다림질은 버릇대로 아침 일찍 하게 된다

 

아침에 스웨터 4개를 스팀다리미로 다림질해놓고 

 

스웨터 때문에 쫓겨날 뻔했던 사건을 떠 올렸다.

한마디로 무진장 야단을 들은.

1983년이었으니 38년 전이다

 

우리가 살던 동네에 한국인 가정이 있다고

큰애를 입학시키려 간 학교에서 소개해줘서 인사를 드렸더니 

그 댁 부부가 남편의 대학 선배이고 또 부인은 남편의 사대부고 선배여서 무척 놀라고 반가웠다.

(부인은 교수로 근무하다가 휴직하고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왔었다 )

그 부인을 따라 난생처음으로 세일 현장에 갔던 날.

시내 중심가 버버리 하우스에서

가격이 너무 높아서 나는 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옆에서 사라고 적극 권해서 내 수준에서는 아주 비싼 스웨터를 샀었다

(정상 가격이 80만 원이었으면 세일 가격은 40만 원이었을 거고 60만 원이었으면 30만 원이었을 거다)

 

남편은 내일 당장 가서 환불하라고... 노발대발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부인에게는 말을 못 하겠고,

어리바리한 나 혼자서 그곳까지 갈 수가 없어서 환불하러 못 갔던... 사연이다 

그렇게나 비싼 옷을 입을 수가 없다고 쳐다도 안 봐서

옷장에 그냥 모셔놨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 외출할 때나 가끔 입었던 옷이라서

아직도 너무 낡지는 않았다.

 

  • 키미2021.11.11 13:39 신고

    아가일 무늬가 이쁘네요. 요즘 다시 아가일 무늬가 유행이더라구요.
    저도 워낙 브이 넥크를 좋아해서 몇 개 갖고 있는데.
    몇 번 안 입으셔서 그런지 완전 새 옷 같으네요.
    세탁소 가기 귀찮아서 여긴 또 세탁소 가려면 버스 타고 가야하는데다,
    세탁소가 걸핏하면 문을 닫습니다. ㅎㅎ
    캐시미어, 울 잘 안 입고, 외출할 때만 한 번씩 입습니다.

    답글
    • 그레이스2021.11.11 14:01

      아이구~ 눈물이 나도록 매섭게 야단맞았어요
      꽤 오래도록, 5년 이상 안 입다가 그 이후에 한번씩 입었어요
      흰색 부분에 음식 국물을 흘린 얼룩이 있어서 (약품을 사용하면 옷이 상한다고 세탁소에서도 지우지 못했어요)
      이제는 외출복으로는 입을 수 없어 시장 갈 때나 입어요
      울 쉐터는 물세탁을 할 수 있는데 고급 케시미어 쉐터는 그냥 세탁소에 보냅니다
      계절이 바뀌어 옷장을 정리하다 보면
      사연이 있는 옷들이 눈에 띄고... 또 옛생각에 빠지는 반복이네요

  • christine2021.11.11 15:06 신고

    전 살림은 다 대충하고 옷다리는건 진짜 최악이라 다림질은 남편담당입니당~ ㅎ

    83년이면 울나라 일인당 국민소득이 2천불할때 아닌가요?? 30~40만원 가디건을 사셨으니 남편분께 화나실만하네요 ㅋㅋㅋ

    답글
    • 그레이스2021.11.11 15:50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여섯살이었을 때 할머니댁에서
      숯불 다리미 다림질하려면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할머니는 그 걸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 팔힘도 없는 어린 손녀에게 옷의 양쪽 끝을 꼭 잡고 있어라고 시키셨다
      나의 다림질 역사는 그렇게나 오래되었네.ㅎㅎ

      버버리 제품 케시미어 쉐터가 그당시에는 8만원이었던 것 같은데 50% 할인으로 샀었어
      처음이라서 그렇게나 벌벌 떨었으나
      세일시즌 두번째가 되니까 더 비싼 코트도 사고 다음해 세번째는 본챠이나 그릇도 사고... 간이 커 지더라구 ㅎㅎ

  • 데이지2021.11.11 22:08 신고

    비싼 옷 안입겠다고 거절하신 속내가 짐작되어 마음이 찡하네요. 입자면 못입을 형편이 아니셨을 텐데도요.
    옷들은 그 옷을 입었던 날의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게 하죠? 프로급의 다림질 솜씨로 각지게 착착 다림질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셨을 그레이스님의 아침이 떠오르네요.

    답글
    • 그레이스2021.11.11 23:55

      아~~!
      데이지님이 그 남자의 비밀을 눈치 채셨구나
      대기업 부장 월급으로 케시미어 쉐터 하나 못 입을 정도는 아닌데... 더구나 월급 말고 해외수당도 받았는데 말이예요
      당신(나)은 마음껏 하고싶은 거 하고 살아라 하면서
      본인은 ...매달 시어머니께 생활비를 보내는 형편이니 자기를 위해서는 쓰고싶지 않다고 합디다
      아내에게 빚지고 사는 남자라고 하면서요

      시어머니와 시동생들 도와주는 것 때문에 항상 미안해 하더니
      오십대에 사장이 되고나서는 완전히 변해서 ...하고싶은 거 다 해보고... 살다가
      은퇴후에 다시 아끼는 남자로 돌아왔어요

  • 하지희2021.11.12 08:37 신고

    신혼 초에 다림질을 몇 번 했던 것 같은 데, 그 이후로는^^;;;
    지난 금요일에 아이가 유치원에서 버버리 외투를 분실하고 와서 일주일째 리턴이 안되길래

    어제 원장 선생님께 하원 시간에 외투를 입었는 지의 여부를 cctv로 확인 요청드렸어요~
    담임 선생님은 원에는 없다고만 하시는 상황이었고,
    하원 후 갔던 학원 두 곳 중 한 곳은 입실 시간의 아이 복장을 cctv로 보내주셔서

    다른 학원 원장님께 다시 한 번 확인 부탁드린다고 연락드렸었구요~
    원장선생님께 다이렉트로 연락드리자마자 얼마 안 되어 찾았다는 연락 받았네요... 참^^;;;
    이번 일로 이제 고가 옷은 원에는 안 입혀서 보내야겠다~ 싶었네요 ㅠㅠㅎ

    (그런데 저렴한 옷이었어도 똑같이 찾아달라고 말씀드렸을 거에요)

    스웨터가 참 정갈해요~
    그레이스님의 옷장 보는 재미가 상당해요~

    그 때마다 긴 시간 보관을 잘 해오신 그레이스님의 비결도 알고 싶구요 :)[비밀댓글]

    답글
    • 그레이스2021.11.12 09:30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는 편하고도 무난한 옷을 입혀 보내는 게 좋을 겁니다
      옷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 같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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