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다녀 간 방문자의 흔적을 찾아
남편 카테고리의 글을 다시 읽어보다가 2009년 9 월 2일에 쓴 글을 복사했다
그 남자가 사는 방식
집을 구매자에게 넘기기 전에 큰 가구와 물건들을 치우려 강원도 시골집에 가셨다.
부산 집으로 가져와도 쓸모가 없을 테니,
필요한 사람에게 주던지 재활용품으로 보내라고 부탁했었다.
(작년에 새로 구입한 거실 소파와 오래됐지만 아직 깨끗한 장식장 정도가 아까운 물건이다)
어제, 하루종일 잔디를 깎고 나무들을 다듬고 했다길래
"이제 넘겨줄 집인데 뭘 그리 고생을 하냐고 정리만 하고 오세요" 그랬더니
"눈앞에 일을 보고 그냥 못 넘어가는 게 내 성격이잖아"
무성하게 풀이 자란 걸 어찌 그냥 두냐고
며칠 더 머물면서 다듬고 정리해서 넘겨주겠다고 한다
10 년을 넘게 정성을 들여 가꾸었으니 아쉬운 마음이야 오죽할까?
하나하나 손길을 주면서 작별인사를 하겠지
그게 남편의 성격이다
내게 아무런 이득이 없는 일에도 열심히, 정성을 다하는, 부지런함이 생활습관인 사람.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한마디 더 할 수가 없었다.
식물과 동물에게도 저렇게 정성을 다하는 성격이니
동생들에게도 긴 세월 한결같이 베푸는 형이었다.
가난한 집 장남이었으니 줄줄이 동생들을 책임지는 일은 당연하게 생각했었고.
그런데 그 친절과 보살핌이 마약이 되어버렸다.
뗏목 위의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마셔도 마셔도 갈증은 더하는 것처럼
집을 사 줘도, 식당을 차려줘도, 제과점을 차려줘도... 일 이년 지나면...
이번에 또 망해 먹었단다
남편 심정이 어떠할까?
그 괴로움과 아픈 마음이 헤아려져서 내가 느끼는 실망감과 분노를 내색할 수가 없다
내가 사십 대였을 땐 고스란히 감정을 터트렸었다
그런데, 이제는 돈의 아까움과 분노보다 남편에 대한 연민이 앞선다
좌절감
무너져내리는 심정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고
중순쯤 가겠다던 강원도에 서둘러 떠나는 걸 눈치챘었다
불쌍한 남자
흙과 나무들 속에서 헝클어진 마음을 가다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