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남편의 삶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수월성교육에 관한 글.
대학생과외가 금지됐던 세대였다면 대학은 꿈도 못 꿨을 그.
2학년 12월 아버지 돌아가시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상태에서 고 3 이 되었으니...
같은 반의 부유한 친구 공부 파트너가 되어주는 조건으로 그 집에서 숙식을 함께한 고3 일 년.
그리고 대학 4년
가난한 학생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뿐.
본인의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이고 집안에 도움까지 줘야 했으니...
하루를 48시간으로 쪼개어 사는 방식은 그때부터 시작되었겠지?
아를르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큰아들에게 들려준,
암울했던 청년시절에
철학서와 불우한 환경을 겪어낸 화가들과 그 작품, 그리고 음악이 자신을 지탱해 준 위안이었다는... 말.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여러 번 자살을 꿈꿨다는)
우수한 중고등학교의 뛰어난 선생님들 덕분에 반듯한 사고와 야망을 키웠고,
역경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었다는 고등학교시절의 이야기.
평준화 고등학교였다면 학교공부만으로 어떻게 서울대를 갔겠냐고?
스무 살 이후 사십 년을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노력으로 살아온,
그 삶의 기록들을 보면,
내 남편이 아니어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존경했을 것 같은... 이 남자.
자살 이야기.
스무한 살 어느 날.
자살을 결심하고 서해 어느 작은 섬에 갔었는데, (무작정 인천부두에서 출발한 후 큰 섬에서 쪽배를 타고 )
바닷가를 걷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조개 줍던 할머니 한분.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하시더란다.
다 쓰러질듯한 움막.
촛불이나 호롱불도 없고, 냄비와 최소한의 그릇들.
밥과 조개에 소금을 넣어 끓인 국.
할머니께서 물으시면 답하고... 그러다 들은 할머니의 사연.
아들 삼 형제.
큰아들과 둘째는 6.25 때 군인으로 죽고,
셋째는 순경으로 공비 토벌 때 죽고,
자식 목숨값으로 살기 싫다고 국가 유공자 연금 거부했단다.
아무도 모르게 죽으려고 섬으로 왔는데,
그냥 죽는 것도 자식 앞세운 죄값이 아닌 것 같아,
최소한의 연명으로 살다가 죽어지기를 기다린다는... 성품이 강인한 할머니.
할머니께서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서늘한 눈빛에서 죽으러 온 젊은이인줄 한눈에 알아봤다며,
내 삶보다 더 기구하지는 않을 테니 돌아가서 살아라~하시더라는...
그곳에서 며칠을 더 머물다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할머니 그 얼굴이 가끔씩 생각난다며)
인간의 가장 큰 아픔과 슬픔에 대해서,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슬기롭게 넘겨야 하는지를...
프랑스 여행 중에,
고흐와 인연이 있는 아를르에서... 아들에게 하더라구.
나는... 없는 듯 뒤에서 듣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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