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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생일에 보내는 편지.

by 그레이스 ~ 2012. 3. 6.

너에게 바뀐 이메일 주소를 물은 이유는,

멀리 외국에 있을 땐 참 애틋한 마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썼었는데,

서울로 돌아온 후엔 생일에 맞춰서 서울로 찾아가게 되니 편지 쓰기는 잊고 지냈더라.

이번에는 꼭 가서 생일밥을 차려주고 싶었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에 글이라도 쓰고 싶어 졌다.

 

옛 풍습대로 하면 이제야 상투를 트는 어른이 되는구나.

혼인 전에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땋은 머리로 살아야 하고... 어른이 아닌 거지.

하고픈 말이 많아서 온갖 생각으로 감회가 새롭다.

 

문득 대학시절에 니가 물었던 말이 생각나네.

훗날  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어머니가 원하는 만큼 출세를 못하게 되면 그 실망감을 어떡하냐고?

 

그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니?

40대 나이가 되었을 때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도

너는 이미 인격적으로 훌륭한 남자가 되어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내 아들이 아닌 한 남자로, 

엄마가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인품을 가져다오~ 그렇게 말했었지?

 

무슨 자격시험인가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너 참 대단하다~! 어쩜 그리도 뛰어난 수재이고 천재냐고 했더니,

우수한 머리로 낳아주신 것도 어머니, 잘 돌보고 잘 키워주신 것도 어머니, 이렇게 뒷바라지해주신 것도 어머니,

그러니까 저는 어머니가 만든 작품이잖아요, 모두 어머니 덕분이네요." 해서

 

"너는 어쩜 그리 듣기 좋은 말을 잘하니? 아~ 감동 먹었다"라는 말에

"그럼 어머니~ 지금 전화 끊고 그 기분 그대로 주무세요~  좋은 꿈 꾸실 거예요"

너는 20대에도 그런 아들이었다.

 

고3 이 되어서 처음 등교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밤중에,

너를 뒤에 태우고 운전을 하면서 그랬지.

"올 한 해 고생이 많겠다. 힘들어서 어떡하니? 나는 너무 긴장되고 떨린다"

니 대답이 얼마나 어른스러웠는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고3 을 나만하나요?

전국에 입시생이 60만 명이나 되고  나 혼자만 힘든 것도 아닌데,

공부하는 게 무슨 유세라고 유난을 떨겠어요?

공부는 내가 잘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는 아줌마들 모임에 다니면서 편하게 시간 보내세요."

네가 그렇게 말할 줄이야~!!

 

그렇듯, 너는 초, 중, 고등학생 동안 한 번도 공부하는 걸 짜증 내거나 하기 싫어한 적이 없었지.

공부 잘하는 너 때문에 내 사십 대는 화려하고 멋진 나날이었다.

 

너에게 생일 축하 편지를 쓰려고 했더니, 별별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네~ 이러다 밤새겠다.

지금도 우울하거나, 속상하는 일로 심사가 안 좋은 날은...

마음 갈피에 끼워둔 너와의 수많은 대화들을 생각한다.

 

나에겐 치료약이고 영양제인 너~!

언제나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어준 네가 정말 고맙다.

 

내가 낳았으니 너는 내 것이라고 억지 부렸던 엄마.

이제, 내 마음의 보물을 내려놓으며 나를 비우려 한다.

 

명훈아~  멋진 남편으로... 믿음직한 가장으로... 새로운  너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2012년 3월 7일  엄마가.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그 글을 남기다)

 

 

  • 깨몽깨몽2012.03.07 18:43 신고

    아~~~ 글을 다 읽고,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그레이스님의 글. 감동입니다.

    명훈씨는 앞으로도 늘 그랬듯이 존경받는 남편, 아버지, 아들이 되실겁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2.03.07 20:40

      편지를 쓸려고 마음을 가다듬으니... 사연들이 줄줄이 쏟아지더라.
      자랑스럽고 흐뭇했던 순간들.
      그러면서,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지난번에 둘째 결혼전에,
      아들과 며느리에게 도움이 되는 엄마가 되자고... 많은 다짐을 했었다.
      며느리의 어떤 행동이 내기준에 어긋날때, 나는 어떻게 할것인가?
      제일 먼저 세훈이를 생각하자.
      내가 안좋은 표정을 하면 세훈이가 마음 아파질 것이다.
      사랑하고,이해하고,아끼는 시어머니가 되자~!!

      한번 경험을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심란한 과정도 없이 빨리 다짐이 되더라구.
      아들을 마음에서 내려놓는 연습도 그렇고...

      그래도 이따금 쓸쓸해지겠지?

  • 사랑jy2012.03.07 19:28 신고

    너무 감동적인 글에 마음이 찡하면서 순간 울컥했습니다.
    아드님과 그레이스님사이에서 간직할 수도 있었을텐데
    이렇게 멋진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드님의 결혼도 축하드립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2.03.07 20:44

      글이 공개가 되어서 좋은점은,
      만약에 내 마음이 흐트러져서 심술이 생기는 경우에는,
      나를 꾸짖고, 처음의 다짐을 찾아볼수있게 되잖아요?

      감사합니다~

  • 홍신영2012.03.07 20:45 신고

    안녕하세요?그레이스님 처음뵙겠습니다..
    다른사이트에서 님을 처음 알게 되서 곧바로 님의 블러그 글을 밤새워 읽은 님의 왕팬 59살 대전 아줌마입니다
    저는 블러그도 없구요 그저 남의 글을 읽을 줄만 아는 염치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요..

    님의 글은 제가 지금까지 읽은 어떤 블러그 글보다 참 신선하고.. 충격적일 정도로 제 마음을 울리네요..
    글중 충남대 박창식 교수님이 나오시네요
    2월 29일 충남대 정심화홀에서 저의 남편도 retirement했습니다.박창식 교수님 부부는 우리 앞에 서있으셨구요..

    아드님 결혼 온 마음을 다해 축하드립니다..
    부모의 삶은 그렇지요..온힘을 다해 자식들의 꽃대궁을 올려주고 싶은..그래서 활짝 꽃피게 하고 싶은..영원히 상사화처럼 환하게 피는 꽃을 보고싶은 부모의 마음이지요..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계룡산 우람한 정기를 그레이스님에게 보냅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2.03.07 20:55

      찾아주시고 이렇게 글 남겨주셔서 정말 반갑습니다.
      신영씨의 성함을 잘 기억할께요~

      부끄럽지만,칭찬의 말씀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남편의 친구이신 충남대 교수는 공과대학 이창섭교수님과 홍창호 교수님이예요.
      약간의 착오가 있었나봅니다.
      같이 근무하셨으니 이창섭씨와 홍창호씨도 잘 아실 것 같군요.
      46년 친구여서 허물없이 지냅니다.
      이창섭교수께서 작은아이 주례를 서 주셨어요.

      다시 한번 더 감사드립니다~^^

  • 여름하늘2012.03.07 23:31 신고

    멋진 어머니세요.
    이렇게 멋진 편지도 쓰시고
    저 감동 먹었어요.. 자꾸 감동 주시면 어떻해요-
    멋진 어머니에 멋진 아드님 이세요.

    답글
    • 그레이스2012.03.08 07:33

      여름하늘님의 멋진 편지라는 말에 예전에 쓴 편지가 생각나서 다시 읽어봤어요.
      명훈이 카테고리의 첫째 페이지에 있는,
      5년전에 쓴 "3월 7일 생일을 축하하며" 라는...
      그때가 더 순수한 편지였네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요즘엔 편지를 쓸려면 왜 그리도 감상에 빠지는지...
      아들에 대한 짝사랑이 지나치지요?

  • 호박꽃의 미소2012.03.17 09:37 신고

    뿌린 데로 거둔다지요?
    들녁의 곡식도 그저 수확하는 것이 아닐진되
    하물며,
    하늘의 새도
    지키고 돌보시는 분이 계신다는데.....

    사랑을 주고 키우신
    자식이야 오죽하실려나요?
    그레이스님의 휼륭한 보살핌과 양육하심 덕분 아닐까요?

    큰아드님 결혼식 이야기!
    이제서야 축하의 팡파레가
    여기 까질 들립니다.

    정말 축하 드리고.....
    두 며느님을 양쪽에 팔짱끼고
    사랑 나누시는 즐거운 상상을 저도 해 봅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2.03.18 09:35

      같이 운동하는 팀의 맏언니가 친목모임을 하자고 여러번 권해서... 미루다가 어제 낮부터 저녁까지 잘 놀다왔어요.
      46세, 56세, 나머지는 모두 60대,
      밤에는 또 동문회 봄 정기모임.

      아들을 잠깐 잊고... 노느라고 바쁜 나날입니다.

      미소님의 축하인사가, 그 환한 미소가 보이는 듯 하네요~^^
      감사합니다~

    • 호박꽃의 미소2012.03.19 09:20 신고

      앞으로는
      함께 웃고 즐기며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이웃이
      참 좋은 영양제 인듯한 생각에 저도 동감이네요..ㅎ
      오늘도
      좋은 날 되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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