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차분하게 앉아서,
며칠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숙제 하나를 풀어야겠다.
가까운 지인의 아들이 35세가 넘었는데도 아무런 하는 일 없이
부모의 둥지를 떠날 생각을 안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부적응으로 우울증까지 앓는다는...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부모의 고통도 자식의 고통 못지않다.
부모가 바쁘다 보니 어렸을 적 할머니 손에서 키워졌다.
조부모는 손자가 귀하기도 하고,
혼내거나 엄하게 키우면 아들 며느리에게 원망을 들을까 싶어 오냐오냐 키웠을 테고,
부모 역시 아이를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자식에게 무조건 잘해주었단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사달라는 말이 있기도 전에 뭐든지 사주고... 공부를 별로 강요하지도 않았단다.
아들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문제는 군대에서였다.
부적응으로 우울증을 겪었다는...
그래도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취업을 했는데, 이번에는 직장 내 부적응이 문제였다.
늦게까지 야근을 해야 하는 것도, 동기들끼리의 경쟁도, 상사의 타박도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두 번 직장을 옮기더니, 얼마 못 가고 그만두었다.
이후 집에서 게임만 하면서 지내는 생활이란다.
요즘은,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사 주려 하고, 뭐든지 들어주려 한다.
마냥 편하게 밝게 키우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어려운 일도 시키면서 극복하도록 해야 할까?
자라면서 세상 모든 것이 그저 편했고 말하기만 하면 뭐든지 이루어지는 아이였다면,
성인이 되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낯설고 기막혔을까.
베이징대 정신의학연구소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생후 28~55일(쥐에게는 청소년기)의 쥐를 대상으로'예측할 수 있는 가벼운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주었더니
다 자랐을 때 우울증에 잘 걸리지 않도록 돕는, 이른바 '회복 탄성력'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쥐들은 성인기에 예측할 수 없는 만성 스트레스가 주어졌을 때에도 잘 견뎠다고 한다.
이는 고위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뇌세포들의 변화와 관계가 있었다. (발표논문 인용)
정신건강의학과 어느 교수는 "역경이나 부족, 박탈의 경험 등이 있어야 창조력이 길러질 수 있다."
라고 했고, 또 내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는,
" 역경이 없으면 이를 극복하는 창조력 문제 해결 능력은 배양될 수가 없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역경에 처한 아이가 이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사랑으로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라고 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게
3~4세 때부터, 사고 싶고 갖고 싶은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본다.
(요즘은 아이가 원하기도 전에 먼저 사다 주는 부모가 대부분이라고 하더라만...)
내 경험을 기억해 보면,
신혼 때부터 시어머니께 생활비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어서 넉넉지 못한 형편이기도 했지만,
아이의 장난감을 원한다고 선 듯 사준 기억이 없다.
아이를 맡길 때가 없으니 시장에 갈 땐 유모차를 끌고 나가거나, 서너 살 땐 작은애는 업고 큰애는 손잡고
백화점에 가면, 으레 아동복 옆의 장난감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기 마련이었고...
아이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그 자리에서 거절하거나 야단을 치지 않고, 갖고 싶은 게 어느 거냐고 물어보고,
아빠돈이어서 엄마는 결정할 수가 없으니 저녁에 아빠 오시면 사도 되는지 물어보자고 말했었다.
그러면 알아들었다는 듯이, "아빠 오시믄~~ 물어보자~ 엄마~~~" 그러고는 선선히 물러나던 명훈이.
(자연스럽게 거절할 방편으로 아빠를 핑계 댄 것이니, 얼른 회사로 전화해서 어러 저러한 이유로
저녁에 안된다고 말하라고 부탁하면, 남편은 악역 맡기 싫다고 투덜대기도 했었다)
즉흥적으로 갖고 싶었던 장난감은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고...
만약에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장난감을 아쉬워한다면 다시 사러 갔었는데,
그런 장난감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애착을 가졌던 행동이 기억에 남는다.
5~7세 무렵엔 런던에서 살았었기에 상대적으로 지도하기에 편했었다.
(한국에서 살았다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장난감을 받는 이웃의 다른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겠지)
설날, 생일, 어린이날, 추석, 크리스마스 장난감을 선물 받는 날이 일 년에 다섯 번으로 정해져 있어서
수시로 사달라는 일은 없었을 뿐 아니라, 꼭 갖고 싶은 물건은 카탈로그를 구해다가 동그라미를 쳐놓고,
엄마에게, "다음번에 선물 주실 때 이것으로 사주세요~ "했다가
기다리는 동안에 원하는 품목이 바뀌기도 하고... 그렇게 욕구와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길러졌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참는 훈련과 기다리는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 있으면,
학교생활에도, 집에서의 생활습관과 공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자세히 설명 안 해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조금씩 운동을 해서 몸을 단련시키듯이, 적절한 스트레스는 성장기의 아이에게
정신근육 기능을 향상한다는... 점을 젊은 엄마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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