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풍과 전통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나의 처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비난을 할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결혼생활 40년간, 격식과 도리를 무척 따지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 생각이 확 바뀌어 버렸다.
둘째를 먼저 결혼시켰고, 두 달 후에 설 명절이었는데,
며느리가 입덧이 심해 너무 못먹어서 대상포진에 걸렸었다.
임신 초기여서 아무런 약도 쓸 수가 없는... 당연히 시댁에 내려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지.
그 후 추석에는 출산 후 한 달이어서 내려오지 말라고 했었고.
그해 6월에 결혼한 큰며느리는 추석에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지 걱정하길래,
둘째는 아기낳았다고 쉬라고 하고,
큰며느리는 내려와서 일 도우라고 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싶어서,
이번에는 신혼이니 내려오지 말고, 외국으로 여행을 가라고 했었다.
며느리 맞이하면,
명절에 모여서 전부치고, 음식 장만할 꿈을 꾸었던, 내 기대는 허공으로 날아가고...
살다 보면 처음 희망했던 내용이,
형편에 따라 ,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걸 경험하게 되더라.
그 당시에,
앞으로 설 명절에는 시댁으로 내려오고,
추석에는 친정으로 가든지 여행을 가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두 며느리에게 선언을 했었다.
작년 추석에는 다 같이 일본 여행 갔었고, 이번이 세 번째 추석이다.
다녀간 지 보름밖에 안되었고...
여행 가려면 예약도 해야 할 테니, 추석에 올 필요 없다는 전화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기제사는 평일이어서,
(같은 도시도 아니어서) 총각시절부터 참석시키지 않았기에,
며느리들 부를 생각은 한 번도 안 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윤이 가족이 아쿠아리움 구경 갔던 시간에,
큰아들 큰며느리와 얘기했던 내용은,
결혼한 자식과 부모와의 관계에 대해서... 였다.
자식의 삶에, 부모는 어느 정도 의견을 표현하는 게 적당한가~
거의 모든 부모가, 자녀가 결혼하면 아기를 가지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그중에서도 내 남편은 아들(손자)에 대한 욕심이 큰 편이어서,
큰아들과 며느리는 그런 부담도 클 게다.
살아가다 보니 생각이 바뀌더라고...
아버지께 여러 번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해서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살 것이며, 그 애들의 성장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가 태어나 준 그 자체를 축하하고, 조건 없이 사랑하고, 예뻐해야 하는 존재다.
그러니, 큰며느리도 손녀만 낳더라도 서운해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 애들이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떠날 사람이잖아요.
또 한 가지 더,
앞으로 큰며느리에게 제사를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나는 구시대 사람이니 지금까지 해왔던 그대로 큰며느리의 소임을 할 것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를 모시는 건 아버지대에서 끝내고,
우리가 죽은 이후에는,
(제사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너희는 너희 방식으로 부모를 기억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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