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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명절.1

by 그레이스 ~ 2015. 2. 23.

금요일 오전 9시 30분 비행기로 출발하면서 전화를 했고, 부산 도착 후 택시를 탔다고 전화를 받고는

12시 되기전부터 서성이다가 아예 밑에 내려가서 기다리는 할아버지.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애들 배고프겠다고 빨리 음식을 차리라는 채근이셨다.

할머니는 아예 순서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건 예상했지만...

엄마와 아빠도 뒷전이고 모든 행동을 할아버지와 함께 하려는 하윤이 덕분에

며느리도 아들도 편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았다.

 

떠들썩하게 노는 게 무척 흥분되고 좋았던 하윤이는 밤늦도록 잠 잘 생각을 안 하고,

엄마와 동생이 있는 2층 침실에 올라갔다가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또 내려오고...

12시가 되도록 버티다가 잠이 들어서, 평소에 어른들보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이 둘 다 늦잠을 잤더라

 

며느리와 아들도 아주 오랜만에 푹~ 잤다면서 9시쯤 일어났다.

우리 집 2층 침실에서 자는 사람은,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서 깊은 잠을 잤다고 말하는데,

그건 커튼 때문일 거라는..(극장용 커튼처럼 두꺼운 2중 천이라서 낮에도 커튼을 닫으면 깜깜하다)

 

혹시나, 내가 딸그락 소리라도 낼까 봐  아래층 거실 커튼을 여는 것도 못하게 하시고,

날더러 발소리도 내지 말라고 그냥 누워 있으란다.

조용히 차 한잔을 마시고...

 

아침밥을 먹기 전에 손녀에게 단것을 먹이려는 할아버지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할 뻔했다.

버릇을 망쳐놓으면,

나중에 제자리로 고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고... 며느리 고생시키려고 작정하셨냐고~?

남편에게 주의를 줘도 그때 잠깐 뿐이다. 

 

폭신폭신 말랑카우와 새콤달콤 젤리로, 또는 갖가지 부드러운 빵으로  

손녀의 환심을 사는 할아버지.

별별 놀이를 개발해서 집안에서 낚시도 하고... 아이들은 그때그때 새로운 놀이에 흠뻑 빠졌다.

 

설 전에 내려오지 못해서 엄마가 많이 서운하셨을까 봐 마음이 쓰였던 아들은,

바쁘고 고단한 생활중에도 자기 나름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표현한다는 게 약간 오버를 해서,

내가 그걸 지적했더니, 자기 맘 몰라준다고 기분이 상했더라.

 

11월 19일에 예약을 했으니 (무려 3개월 전) 

설 전날 표가 매진되었을 꺼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거지.

기분이 상한 아들에게,

"그걸 전부 알기에 엄마가 화가 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일에 찾아오는 자식 없이 부부만 있으면, 마음속 한자리에 서운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냐.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들이 변명을 먼저 하기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더 일찍 준비해서 명절 전에 올게요~ 하고

그다음에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는 게 더 좋았겠다"라고, 엄마 맘을 전했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오해가 쌓이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푸는 것과,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었다.

니가 부모를 생각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아무런 말을 안 해도 너의 마음을 읽고, 너를 믿고 이해한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의 집은,

자식들이 와서 세상사 근심 내려놓고, 편히 쉬고 즐겁게 놀다가 가는,

어린 시절의 다락방 같은 장소이기를 바란단다.

 

    • 일요일 오후 하윤이네가 떠나고 난후 갑자기 피곤이 몰려와서 집 정리도 하지않고 그대로 누웠더랬어요.
      하루를 지나고나니,몸살 하지않고 잘 지나가는 듯 합니다.
      빨래꺼리 다 꺼내서 세탁기 돌리고,봉제인형들도 베이킹소다 풀어서 세탁해 햇볕에 널어놓고...

      사람마다 각자가 추구하는 생활방식이 있을텐데...
      나는,"이렇게 살고싶다~" 라는
      내가 원하는 방향을 정해놓고,그 원칙에 맞춰서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합니다.
      남편에게는 어떤 아내인가~
      아들에게는 어떤 엄마인가~
      며느리에게는 어떤 시엄마인가~
      수시로 점검을 하고,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반성합니다.
      가끔은 억울한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내가 잘해줄 수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않았다고...
      (관절 상태가 더 나빠지거나, 더 늙어버리면 잘해주고 싶어도 할 수없을테니) 스스로 최면을 걸어요.
      아들과 수다 떠는 것도 즐겁고,
      며느리에게 내가 알고있는 비법이랄까,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도 즐겁고,
      손녀에게 할아버지댁의 환상을 심어주는 것도 보람있고...
      준비하는 과정이(대청소하고 음식 장만하느라) 고단하고 고생스러웠지만, 그 이상으로 가치있는 명절이었어요.

  • 수선화2015.02.24 15:44 신고

    친정 식구들과 싱가폴 여행 다녀오겠단 말에 처음엔 너무 서운했어요.
    아들 취직하고 처음 맞는 명절인데 어떻게 저러고 싶을까....? 다른 한편으론 사돈들께도 많이 서운했고요...
    예전 같으면 서운한 맘 먼저 내비쳐 들켜버렸을거예요. 그러면서 대화도 끊기고....
    그런데 이번엔 다행이도 일단 듣기만 하고 반응을 자제 했지요. 일차 맘 다스리기 성공.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며늘 맘이 이미 싱가폴에 가 있는걸 억지로 붙들어 놔봐야 화근이 될 뿐이란걸 느꼈지요. 그러면 일단 흔쾌한 듯 보내야 할것이니 기왕이면 진짜로 흔쾌히 보내줄 명분을 찾아 고심 했지요.
    그래. 저도 백수 남편에 시부모님 돈으로 애 키우며 살기가 얼마나 팍팍 했을까?
    그간 잘참고 살아온데 대한 보너스라 생각하자. 라 생각하는 순간 비용 대며 데려가 주시는 사돈께마저도 감사한 맘이 들었어요.
    받지도 않은 세밴데 세뱃돈 봉투라며 여윳돈까지 넣은 걸 주니 미안해 합니다.
    꼭두 새벽 비행기라 공항에 델다 주고, 또 귀국편도 새벽 도착이라 픽업 나갔더니 유모차에서 편히 자던 손녀가 배시시 눈 뜨며 첫마디에 할무니 하부지 하니 그나마 간간히 비치던 서운함마저 싸악 날아갔습니다.
    이러면서 가족이 되고 식구가 되고 가까와지는거겠죠?

    • 그레이스2015.02.24 20:33

      많이 서운했을텐데,아주 현명하게 대처했군요.
      20대 어린나이에 결혼해서
      부모님 보내주시는 돈으로 공부와 생활까지 하느라 살기가 팍팍했을 꺼라는 말...몸도 마음도 그랬겠지요?
      이제 좋은곳에 취직을 했으니, 장인장모님께도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나봅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얘기했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마음 다스리기가 첫번째 과제이고,
      그다음에는 사건을 단순화 시켜서 이성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실마리를 잘 풀어가는 방법이라고 했던...


      며느리도 아들도,어머니의 배려심에 많이 고마워 할겁니다.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을, 몇번 되풀이 공유하면,끈끈한 정이 생기고 더 가까워 지더라구요.
      나도 수선화님도..

      자식들에게 몇번 참아주고 양보한다고 자식에게 무시당할 엄마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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