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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편애.

by 그레이스 ~ 2015. 12. 14.

 

 

어린 시절에 육 남매 중에서 가장 어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할머니는 나보다 오빠를 더 애지중지 사랑하셨지만,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오빠에게 질투를 느낀 적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느낌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돌이 지나고 세살때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가서 일곱 살 입학하러 부모님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면서,

할머니께서 기억하는 큰손녀는 그렇게나 말을 잘 들었단다.

이웃집에 심부름을 시키거나, 콩줄기를 따고, 콩을 까라고 일을 시켜도,

한 번도 안 하겠다는 말 없이, 다섯 살 어린아이가 어두워질 때까지 마당 멍석자리에 앉아

계속하더라고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셨다.

다림질을 하려면 그 당시의 다리미는 빨갛게 달군 숯불을 올려놓은 옛날식 다리미여서

반대편에서 누가 잡아줘야 다림질이 가능했다.

풀 먹인 이불 홑청을 여섯 살 어린 손녀에게 꼭 잡고 있으라고 시키시고는, 팽팽하게 할머니가 당기니

그 힘에 끌려서 아이가 앞으로 엎어졌던 기억도 나네.

순식간에 다리미를 치우신 덕분에 화상은 입지 않았다.

 

뭐든지 시키는 데로 고분고분 잘 들었던 큰손녀에 비해,

그 이후에 맡아 돌봤던 밑의 동생들은 콩을 수확해도, 고구마를 캐도, 솎음배춧단을 묶어도,

싫다고 한마디로 거절하고는, 아무리 달래고 야단쳐도, 뒤도 안 돌아보고 놀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큰손녀와 비교해서 꾸중도 많이 하셨을 거다.

 

엄마가 여섯째를 임신해서 있었던 일이니까, 내가 아홉 살이었던 때다.

밤중에 자는 나를 깨워서, 입석 아지매집에 가라고 엄마가 심부름을 보내셨다.

한밤중이었지만, 엄마의 부탁이니까 싫다는 말 안 하고 집을 나섰는데,

우리가 살던 역전마을은, 상점도 많고 불이 많아서 무서운 줄 모르고 지나갔는데,

기차역을 건너 들판으로 내려가니 철길에서 사람 죽은 것도 생각나고, 어찌나 무서운지

눈을 감고 정신없이 뛰다가 논길에서 바닥으로 굴러서 더 놀라고,

(낮에는 많이도 다녔건만) 입석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큰 비석과 아름드리나무에 또 놀라고,

입석 사는 아지매는 엄마의 친정 8촌 언니로 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이여서 급한 일이 있으면

달려와 주었었다.

삽작문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놀라 나와보니, 온몸에 묻은 흙이며 헝클어진 머리며,

내 몰골을 보시고는 두말없이 내 손을 잡고 뛰셨다.

집으로 와보니 엄마는 별 탈이 없어서,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는데,

아버지는 숙직이셨을까?

나는 왜 못 가겠다는 말을 못 했을까?

오빠랑 함께 보냈으면 덜 무서웠을 텐데...

(그 이후로는 밤중 심부름은 오빠와 같이 다녔다. 그래도 무섭기는 매한가지더라)

 

아무리 싫어도, 아무리 귀찮아도, 어른들 시키는 일에는 싫다는 말 못 했던 나는,

하기 싫은 청소며, 부엌 설거지며, 동생들 돌보는 일이며, 맏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일곱 살 학교에 입학하고부터 학교 갔다 오면 동생들 돌보느라  내 등에 오줌 마르는 날이 없었다.

2년 동안 다섯째를 업고, 여섯째가 태어나 네 살이 될 때까지.

순해서, 말을 잘 들어서, 그래서 어른들이 편애하셨나 보다.

 

오늘 아기들 데리고 첫 병원 나들이를 했다는 며느리의 소식에,

아기들이 순해서 고생 없이 잘 다녀왔다는 말과,

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가장 순한 아기들이라고 칭찬을 듣는다는 말에,

엄마 아빠의 순한 성품과 좋은 태교 덕분에, 아기들이 유순한 성품을 타고났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아가들 유순한 성품이, 명훈이 유아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더 거슬러,

배가 고파도 기저귀가 젖어도 울지 않아서, 혹시나 지능이 모자라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는

나의 아기 시절도 떠올려봤다.

 

순둥이가 지나쳐서 바보가 아닐까 의심했다는 나는,

겉으로는 어리숙했으나, 속으로는 또래보다 빨리 철이 든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 한집안의 맏이 역활을 정말 거뜬하게 잘 해내셨군요
    언젠가 보았던 예전 드라마 맏이가 문득 떠오르네요
    줄줄이 달린 동생들과 가난을 이기고 일어서는 그러한 옛시대 드라마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는 말도 있었어요.

    • 그레이스2015.12.15 10:53

      이웃 블로그에서 "맏이라는 자리가 내겐 너무 버겁다" 라는 글을 읽었어요.
      81세 노모의 거취를 두고 고민하는...
      20년을 모셔온 남동생네의 수고와 고충도 충분히 알겠고,
      점점 어린애 처럼 본인만 챙기는 엄마가 야속하고,
      바로밑 여동생이 엄마 어쩔꺼냐고 언니에게 성질피우는 것도 답답하고.
      맏이의 심정에 공감이 가면서
      동생들은 참...어느집이나 똑같다 싶었어요.
      언니들은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그걸 다 내색하지는 않지요.
      여러번 쌓여서 주전자의 물이 끓기 직전만큼 되었을 때 표현을 하는 건데,
      동생들은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니까요.

      어린시절부터 거절 못하고, 싫어도 참고,칭찬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어도 자기가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거절을 잘 못합니다.
      남편에게도,형제자매에게도, 친구에게도,
      그렇게 되더라구요.
      손해보며 사는 인생이지요.

  • 하야니2015.12.16 16:37 신고

    타고난 맏이의 면모가 보입니다
    그런데 동생들에겐 엄격하지 않았나요

    • 그레이스2015.12.16 19:32

      동생들에게 물어보면,강한 언니였고 무서운 누나였다고 대답할 것 같아요.
      나에게 친구처럼 대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어요.

      대학 1학년때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할머니와 아버지의 보살핌과 희생으로 동생들이 잘 자랐어요.
      오빠의 희생도 많았고요.
      나는 그 이후,
      엄마노릇을 대신 해야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결혼 이후에도 계속 동생들을 보살피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마음고생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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