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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일기)

묵은 때를 벗겨내다.

by 그레이스 ~ 2017. 8. 8.



부엌 그릇들 묵은 때를 벗겨낼 때는,언제나 생각나는 이가 있다.

사택에 살던 시절의 단짝 옥희씨.

한번씩 친정에 다니러 가면,기운이 빠질 정도로 부엌 청소를 해놓고 온다면서,

엄마가 노인이 되니 살림살이 구석구석 때가 껴 있어서,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면서,

친정가서 쉬다가 오는 딸은 무슨 팔자인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했었다.

물로는 안지워지는 커피잔 안쪽의 흔적과 손잡이 밑,스탠냄비의 묵은 때,나무제품에 켜켜이 앉은 때,

젊은시절의 엄마는 깔끔했는데,

변해버린 엄마를 보니 늙음이 보여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고 했었다.


요즘 내가 옥희씨 친정엄마처럼 산다.

설탕통과 양념통 뚜껑이 더러워진 줄도 모르고 살다가,

베이킹소다로 빡빡 문질러 닦았더니,새것인양 본연의 색이 나온다.

창문앞에 조르르 올려놓은 장식품들도,

음식할 때 날라간 기름이 섞인 수증기가 먼지와 섞여서,끈적한 때가 되어,본래의 반짝임이 없어졌다. 



나는 딸이 없어서 그런 모습을 안들키고 사는 건가.

이러니,며느리가 온다고 하면 대청소를 하는 이유이다.


이번에는 며느리는 안오고,아들이 두 딸을 데리고 온다고 했지만,

"다음에 한꺼번에 하지 머~ "라는 핑게로 미루기만 하는 일상생활에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묵은 때를 청소할 엄두도 안낼테니까,

아침마다 한시간씩 노인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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