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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부딪치지 않고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

by 그레이스 ~ 2018. 6. 15.

2009년도에 명훈이가 한국에 왔으니 그해  글 중에 그 에피소드가 있을 텐데,

찾아봐도 어느 카테고리에 있는지 모르겠다.

동생과 한집에서 살면 서로 불편하다고,

동부이촌동에 아파트를 마련해서 살았는데,

자주 외국으로 출장 가고, 서울에 있을 때도 집에서 밥을 먹는 일은 거의 없으니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가서 보면 냉장고에는 주스와 맥주 생수 정도 들어있었다.

갈 때마다 날짜를 넘긴 주스와 우유, 상한 과일을 버리고 새로 사 넣는 게 일이었다.

 

일 때문에 바빠서 몇 달 만에 아들이 사는 모습을 보러 처음 오신 아버지.

동네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신다.

옆 가게에서 이미 과일을 몇 가지 산 이후에 편의점에 들어갔으니,

주스와 우유 생수 정도 살 꺼라고 예상했었다.

바구니에 포도 오렌지 자몽 주스를 종류별로 다 담고,

다른 것들도 가득 담는 걸 보고, 너무 많이 산다고 한마디 했더니,

불같이 화를 내시면서

조용히 해~! 큰소리를 내어 편의점 청년이 움찔 놀라고 나도 멍~ 했었다.

그 일을,

다음날 신촌의 작은아들에게 가서 아버지 흉을 봤더니,

어머니~, 아버지가 아무리 많이 사셔도 그게 백만 원을 넘겠어요?

많아봐야 10만 원 20만 원일 텐데,

형이 안 먹어서 다 버린다 해도, 어머니가 아무 말도 안 했어야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 정도 낭비하셔도 되는 분이세요.

아버지가 지금까지 어떻게 사 신분인데 그 정도에 잔소리를 하시냐고,

아들을 생각해서 냉장고 가득 채워주고 싶은 아버지 마음을 이해 못 했다고,

오히려 나를 나무라는 말을 했었다.

 

그때 이후로,

남편이 뭘 사거나 쓸데없는 지출을 했다 싶을 때,

세훈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내 마음을  다스린다.

우리 집에서 그만큼 대접받는 남편이어서 

좀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도 남편에게 내색을 안 하고 살았다.

 

예전에는 카리스마에 걸맞게 꼬투리 잡힐 일이나 실수를 거의 안 하더니,

은퇴를 하고 칠십 넘은 나이가 되니 점점 어이없는 일도 생긴다.

쪼잔하고 인색하게 구는 일뿐 아니라,

자기가 잘못해놓고 그 화풀이를 내 탓이라고 뒤집어 씌운다.

 

맹장염 수술을 하고 병실에서는 지갑이 필요 없다고

카드 한 장과 5만 원 한 장만 휴대폰 케이스에 끼워놓고, 지갑은 집에 갔다놔라고 남편에게 줬었다.

집에 와서 지갑을 달라고 했더니,

어디에 뒀는지 기억을 못 해서, 집안의 이곳저곳을 다 찾아보고,

내 자동차 남편 자동차에 두 번씩이나  갔다 오고...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서 나에게 화풀이를 하신다.

(왜 지갑에 현금을 많이 넣어 다니냐고, 현금이 없으면 잃어버려도 덜 억울할 거라고)

결국에는 남편 차의 조수석 앞 박스 안에서 가져오셨다.

집에 오는 길에 시장에 들르면서 의자에 두면 위험하다고 박스 안에 넣어둔 게 기억이 안 났다네.

(이런 식으로 자기 잘못을, 내 탓이라고 하면서 화를 내는 일이 3번 있었다)

 

엊그제는 전기밥솥 크기의 박스를 들고 오셨다.

에어 프라이기를 샀단다.

속으로(나에게는 자동물걸레 청소기를 못 사게 하더니, 자기는 한마디 말도 안 하고 잘 사 오네)라는,

말이 생각났으나,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서 지방 섭취를 줄이려고 샀겠다 싶어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동안 몇 가지를 더 샀으나,

주부 노릇을 못하고 누워있는 내 처지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게 쌓여서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를 때,

남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본다.

칠십넘은 남자 노인이 아내 대신 집안일을 하는 게 어디 쉬운가.

그것도 한 달이 넘어가면 지치고 귀찮고 짜증 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남편을 이해하는 게 먼저다.

그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한고비를 넘긴다.

 

저도 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편이라 남편이 항상 좀 부드럽게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지금은 많이 유해졌는데, 그래도 본래 성격이 어디 안 가네요.
그레이스님이 한 마디 하시면 그게 아마 굉장히 생각하고 하는 말씀이라
부군께서는 크게 느끼실 수도 있지요.
아드님 말씀에 감동 받았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우리 자식들이 친정아버지를 그런 마음으로 한번이라도 생각해봤는지 반성했습니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애달플 따름이네요.

  • 그레이스2018.06.16 09:58

    당신이 힘들고 짜증나겠지만,혹은 당신은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그렇게 말하니,서운하다 혹은 속상하다.
    말의 시작을,
    남편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먼저 말하고,
    그래도 그런식의 표현은 나를 아프게 만든다고, 쓸쓸하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쉽게 화를 안내는 성격이어서,
    굳어있는 나의 표정만 보고도,남편이 하던 말을 멈추기도 해요.

    아버지의 여러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본받고싶은 점이 많은 아버지라서, 두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이순신장군 세종대왕만큼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어요.
    청소년기에 아버지를 존경했으니 반항없이 잘 넘겼습니다.

    나에게도 하늘의 별 같은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길거리 자갈로 변해가네요.
    옛날에 쌓아놓은 가산점으로 벌점을 상쇄하고 있어요.

  • 커피좋아2018.06.16 20:34 신고

    평소엔 너그럽게 받아들이던 일도
    몸이 아프셔서 고깝게 느껴지시는 걸 거예요.
    회복하시면 다시 반짝이는 별이 되실겁니다.ㅎ
    얼른 회복하셔서 즐겁고 편안한 일상 누리시길 빕니다.

    • 그레이스2018.06.16 22:57

      남편이 주부의 영역 경계선을 너무 많이 넘어서 불편해요.
      전혀 의논없이 재료들 사오는 것도
      요리의 방식도,
      감당이 안돼서 한두번 말했더니 화를 내서 이제는 모른척 합니다.
      아플때가 아니라면 절대로 안참았겠지요.
      당장 손떼라고 하고싶은데... 그러지 못합니다.
      남편의 성격상 앞으로도 걱정이에요.
      자기가 그만두고싶어야지,
      내가 싫어한다고 물러설 사람이 아니어서요.

  • 여름하늘2018.06.18 09:56 신고

    하윤할아버지께서 남탓을 하시며 화를 내시는모습을 보며
    이젠 지치실때도 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레이스님께서도 지치실때가 되셨는데...
    하지만 할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시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 하려고 하시는 마음이
    안타까워지네요
    어디에 화풀이를 하시며 스트레스도 확 푸셔야 할텐데 말입니다

    • 그레이스2018.06.18 10:30

      왜 고집을 피워서 파출부를 못쓰게 하냐고요?
      일주일에 3번씩 두달이면 200만원으로 서로 편하게 지냈을텐데요.

      워낙 말도 안되는 화를 냈으니,
      곧 풀어져서 내 눈치를 보는 듯 햇어요.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요.
      남편도 나도 감정이 오래 가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 순간이 지나고나면
      쉽게 풀어집니다.

      많이 회복되어서,
      이제 남편에게 손떼라고 했어요.
      힘들때는 도와달라고 할테니,한발 물러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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