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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

친구모임.옛 이야기.

by 그레이스 ~ 2019. 12. 27.

 

 

두 달에 한번씩 네째 목요일에 만나는 친구들.

열두명이 나오기로 했는데,아침에 갑자기 3명이 빠졌다.

밤사이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성지.

시고모님이 돌아가셔서 남편과 참석하러 간다는 윤희.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는 인숙이

 

한정식집에서 식사중에 들깨찜을 보고는

내가,

예전에 친정에서는 정월 보름에 미더덕이랑 여러가지 해물을 넣은 들깨찜을 해먹었다고...

우리 외갓집 별미였다는 설명을 하다가,

돌아가면서 어린시절에 맛있었던 음식으로 이어졌다.

상정이가,

갓지은 쌀밥 한숟가락에 김치 척 올려 먹던 맛이라니~!

아참~ 쌀밥이라 하지 않고,맨재지밥이란다.

뜨거운 맨재지에 김치를 찢어서 척 걸치면 꿀맛이지~

차순이가,

엄마가 김을 한장씩 나눠주면(서로 많이 먹으려고 싸우니까 한장씩 나눠 줬다고) 

아끼느라 쬐끔씩 떼어 간장에 찍어 밥위에 올려 먹었던 이야기며,

저마다 하나씩 추억이 나오는데,

 

정하가,

자기는 그런 추억이 없단다.

너무 가난해서 세끼 보리밥 먹기도 힘들었는데 무슨 김이냐고...

딸 넷을 낳고 밑으로 남동생이 셋 그 중에 둘째딸인데,

고등학교를 갈 수 없는 처지에,

애원을 하다가 병이 난 딸을...부모님이 고민고민하시다가,

한해 농사 지으려고 사다놓은 비료 20포대를 다시 내다 팔아서 그 돈으로 마감날 입학금을 냈더란다.

입학금을 내어놓고 보니,

농사를 지어야 아홉식구 먹고 또 빌린 비료값도 갚을 건데

또 어디서 그 돈을 마련하냐고... 도저히 안되겠다고 다시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께 입학금 돌려달라고 사정사정 하셨단다.

사정이 딱하지만 당장은 안되고

서류 절차를 거쳐서 한달 후에 돌려 드리겠다는 대답을 듣고 오셨다고

그러는 중에 학교 가는 날이 되어

차라리 다같이 굶더라도 학교에 보내자고 결심하셔서

자기가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옛 이야기를 한다.

가난한 집에서 딸을 고등학교 보낸다고 동네 사람들 비난을 받으면서,

시골 집을 떠나 자취생활로 다녔던 학교라고.

 

그래도 부모님은 딸 덕분에,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 가셨고, 외국여행도 가셨다네

 

 

  • 키미2019.12.27 13:37 신고

    어머...우리 어릴 때도 그랬었죠.
    대부분 가난하던 때여서, 중학교 마치고, 직장 다니다가 결혼 한 친구도 많았고,
    고등학교 나와서는 대학 안가면 당연히 결혼한다고 했던 때..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저나 나나 얼굴을 슬쩍 돌리고..민망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국민학교 졸업하고, 버스 안내원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저만 그 사실을 알아서, 그 친구가 나중에 동창회에 나와서는 저를 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싫었을 겁니다.
    누구든 과거가 다 유쾌하지만은 않으니까요.
    고관절은 좀 어떠신지요?
    날씨가 추우면 더 안 좋다고 하던데..

    답글
    • 그레이스2019.12.27 14:23

      중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해서
      동생들 공부 시키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셨겠지요
      밥을 안먹고 날마다 울다가 결국에는 병이 났으니...

      고관절이 아직은 병이라고 할 단계는 아니고
      뼈가 어긋나게 물려 있으니 걷거나 움직이면
      그 주변의 근육이 경직 되어 근육통이 생기는 거예요

  • 달진맘2019.12.27 16:20 신고

    예날 이야기 풀ㅇᆢ놈
    딸이라서 차별않았지요
    큰딸이 중학교 졸업후
    서울방직공장가서 취직해 집에 돈보내
    오빠 대학보냈구
    계타서 내려 보내 송아지 샀구
    그거키워 자갈 논사구
    동생거두어 방얻어 살구
    집안 살린 딸들 많치요

    답글
    • 그레이스2019.12.27 19:48

      초등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도 정하는 수십년간 한번도 내색을 안했어요.
      69년에 졸업하고,
      85년부터 친구들이 모임을 시작했으니 우리가 34년이나 만나 왔는데,
      여러명 앞에서 처음 이야기 한 겁니다.

  • 여름하늘2019.12.27 19:37 신고

    정하님의 옛이야기
    옛날 우리나라엔 그런 시절도 있었지...하는
    생각도 문득 드네요

    오랜만이지요?
    그레이스님께서도 바쁘게 지내셨군요
    건강하시고 행복한 새해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9.12.27 19:50

      아이구나~~~!!
      참으로 오랫만이예요.
      궁금해서 가 봐도 새로운 글이 없어서
      뭐하나...?
      여행 갔을까...? 그랬네요.

    • 여름하늘2019.12.27 20:01 신고

      여행은 아니구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과로사하는줄 알았어요 ㅎㅎ
      새해부턴 좀 조용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ㅎ
      윤지 큰 모습을 보니 반갑네요

    • 그레이스2019.12.28 08:18

      많이 바빴구나~
      아프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그 바쁨으로
      뭔가를 이루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ㅎㅎ

  • 이쁜준서2019.12.29 14:51 신고

    우리가 어렸던 시절은 이젠 예전이 되었습니다.
    김장김치를 담아서 쭉 째서 받숟가락에 걸쳐 먹으면 꿀맛이었습니다.
    시골 농가에서도 겨울에는 쌀을 제법 넣고 보리쌀을 섞은 밥이였고,
    여름에는 꽁보리밥을 먹었습니다.

    도시 공장으로, 또는 도시에서 잘 사는 댁으로 아기 돌보고, 집안 일 거들어 주러,
    우리 세대의 아이들은 그랬습니다.
    남동생이나 오빠 공부 시키고, 돈 모았다 보내면 밭, 논도 사고 그랬던
    딸은 살림 밑천이었지요.

    답글
    • 그레이스2019.12.29 16:09

      어린시절에 먹었던 별미가 가끔 생각납니다.
      외갓집에 겨울방학에 가면 생대구를 꾸덕하게 말리느라 여러마리 걸어놓은 것도 생각나고
      평소에 못 먹는 별미를 해주셨어요.
      외가에는 명절이 아니라도 각종 먹거리가 많았어요.

      남의집에 일하러 가는 아가씨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외갓집이 떠오릅니다.
      외갓집은 시골인데도 쭉 일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외할머니께서 시집 오실 때,시중 드는 아이가 따라 왔다더니,
      그 이후로 계속 부엌일하는 아줌마와 심부름하는 아이가 있었다고 했어요.

      제가 학교에 가기 전 아주 어렸을 때 외가에 가면
      오빠와 나를 데리고 놀아주던 20대 아가씨가 제일 오래 된 기억이예요.
      그 처녀가 결혼한다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
      겨우 일곱살 어린 아이가 왔었어요.
      마침 1학년 겨울방학이라 내가 외가에 있을 때인데,
      나하고 나이가 같다는 어린 아이가 심부름 할 아이로 들어 왔더라구요.
      얼마나 굶었는지 밥을 보더니 정신없이 먹던 그 모습이 눈에 선 합니다.
      먹고 잠시후에 쓰러져서 자고,또 먹고 자고...일주일은 그랬어요.
      그 아이는 결혼 할 때까지 있었으니 20년을 넘게 외가에서 살았던 셈이네요.
      가을에 그 아이 아버지가 1년 일한 세경을 받으러 해마다 왔다고 했어요.
      나중에 혼수와 결혼 비용은 전부 외할머니가 마련해서 보냈다고 들었어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도 희생도 기꺼이 하신 친할머니의 삶과
      자신의 몸 고단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셨던 외할머니의 삶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저의 인생에 크나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 키미2019.12.29 22:33 신고

    위의 그레이스님 말씀에 가슴이 뭉클하네요.
    그렇게 어린 아이가 남의 집에 일하러 오다니..
    얼마나 못살았으면 말입니다.
    그 아버지가 세경을 받으러 매년 왔으니.
    아마 외할머니께서 일을 시키기 보다 측은해서 데리고 있지 않았나 싶으네요.
    나중에 결혼 비용까지 다 마련하셨으니 완전 식구였네요.
    제 친정에도 어릴 때 죽 아버지 고향에서 온 일하는 언니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을 보살펴주었는데, 그 언니도 나이가 어릴 때니 얼마나 일이 하기 싫었겠어요.
    학교도 다니고 싶었을 텐데..
    지금 그레이스님 글을 보고 생각을 해보니 그 시절이 참 아련하네요.

    오늘 같은 겨울 밤에 온 식구들이 아버지 몰래 김장김치 꺼내
    보리쌀 섞은 밥 먹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이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9.12.29 23:29

      일곱살에 남의 집에 올 때는, 심부름 시키고 밥만 먹여달라고 했는데
      열살이 넘어 가니까 일년치 일한 값으로 쌀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나중에는 아줌마 보내고 집안일 다 하는 일꾼으로 컸어요
      그 때에 10살 짜리 아이가 심부름꾼으로 또 들어왔고요.
      나는 고등학생이어서 외가에 별로 안갔으니 그 애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없네요.
      대학생 이후로는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외가에는 명절에만 인사하러 가는 정도로 자주 안가게 됩디다.
      외갓집은,
      해방 전에는 한해 쌀농사만 200석 하는 상당히 알려진 부자였대요.
      우리 아버지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유학 갔다 온 똑똑한 청년이 부잣집 사위가 된 케이스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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