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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아들 생일에 보내는 편지

by 그레이스 ~ 2020. 8. 22.

예정대로였으면 큰아들 가족이 어제 부산에 왔겠다.

결막염은

오늘 가족 모두가 안과에 가서 검사하고 전원 완치가 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단다.

윤호 유라 윤지와 화상통화를 하고 곧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세 아이의 아빠가 된 큰아들을 보고

갑자기 결혼 전에 썼던 편지가 생각나서 2012년도 글을 찾아봤다.

 

2012년 3월 6일에 쓴 글인데,

처음에는 공개로 블로그에 올렸으나 

한 달 사이에 사전 양해도 없이 글을 복사해서 가져 간 사람이 3명이나 되어

(블로그 개편이 있기 전에는 복사를 해가면 댓글 알림처럼 누가 스크랩 해 갔다는 표시가 남았다)

육아에 대한 글도 아니고 아들에게 쓴 편지글을 복사하다니...놀라서 비공개로 바꾸었던 글을

8년이 지나 다시 읽고는 오늘 공개로 해놓고,

그 글을 복사해 가져왔다.

 

예비며느리와 부모님 뵈러 와서 인사하고 간 날이 2012년 3월 4일.

이틀이 지나고 생일을 하루 앞 둔 날.

올해 생일이 결혼 전 마지막 생일이구나 싶어서

3월 6일 밤에 아들에게 편지를 써 놓고,

밤 12시가 지나자마자 이메일로 보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답장이 와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한다고.

앞으로도 더 잘하겠다고.

앞으로는 결혼 안하냐고 속 썩을 일도 없으니 더 좋은 사이가 되지 않겠냐고.

 

.......................................................................................................

 

너에게 바뀐 이메일 주소를 물은 이유는,

멀리 외국에 있을 땐 참 애틋한 마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썼었는데,

서울로 돌아온 후엔 생일에 맞춰서 서울로 찾아가게 되니 편지 쓰기는 잊고 지냈더라.

이번에는 꼭 가서 생일밥을 차려주고 싶었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에 글이라도 쓰고 싶어 졌다.

 

옛 풍습대로 하면 이제야 상투를 트는 어른이 되는구나.

혼인 전에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땋은 머리로 살아야 하고... 어른이 아닌 거지.

하고픈 말이 많아서 온갖 생각으로 감회가 새롭다.

 

문득 대학시절에 니가 물었던 말이 생각나네.

훗날 어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어머니가 원하는 만큼 출세를 못하게 되면 그 실망감을 어떡하냐고?

 

그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니?

40대 나이가 되었을 때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아도

너는 이미 인격적으로 훌륭한 남자가 되어있을 테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내 아들이 아닌 한 남자로,

엄마가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인품을 가져다오~ 그렇게 말했었지?

 

무슨 자격시험인가에 합격했다는 소식에,

너 참 대단하다~! 어쩜 그리도 뛰어난 수재이고 천재냐고 했더니,

우수한 머리로 낳아주신 것도 어머니, 잘 돌보고 잘 키워주신 것도 어머니, 이렇게 뒷바라지해주신 것도 어머니,

그러니까 저는 어머니가 만든 작품이잖아요, 모두 어머니 덕분이네요." 해서

 

"어쩜 그리 듣기 좋은 말을 잘하니? 아~ 감동 먹었다"라는 말에

"그럼 어머니~ 지금 전화 끊고 그 기분 그대로 주무세요~ 좋은 꿈 꾸실 거예요"

너는 20대에도 그런 아들이었다.

 

고3 이 되어서 처음 등교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던 밤중에,

너를 뒤에 태우고 운전을 하면서 그랬지.

"올 한 해 고생이 많겠다. 힘들어서 어떡하니? 나는 너무 긴장되고 떨린다"

니 대답이 얼마나 어른스러웠는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고3 을 나만하나요?

전국에 입시생이 60만 명이나 되고 나 혼자만 힘든 것도 아닌데,

공부하는 게 무슨 유세라고 유난을 떨겠어요?

공부는 내가 잘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엄마는 아줌마들 모임에 다니면서 편하게 시간 보내세요."

네가 그렇게 말할 줄이야~!!

 

그렇듯, 너는 초, 중, 고등학생 동안 한 번도 공부하는 걸 짜증 내거나 하기 싫어한 적이 없었지.

공부 잘하는 너 때문에 내 사십 대는 화려하고 멋진 나날이었다.

 

너에게 생일 축하 편지를 쓰려고 했더니, 별별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네~ 이러다 밤새겠다.

지금도 우울하거나, 속상하는 일로 심사가 안 좋은 날은...

마음 갈피에 끼워둔 너와의 수많은 대화들을 생각한다.

 

나에겐 치료약이고 영양제인 너~!

언제나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어준 네가 정말 고맙다.

 

내가 낳았으니 너는 내 것이라고 억지 부렸던 엄마.

이제, 내 마음의 보물을 내려놓으며 나를 비우려 한다.

 

명훈아~ 멋진 남편으로... 믿음직한 가장으로... 새로운 너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2012년 3월 7일 엄마가.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그 글을 남기다)

 

 

  • 키미2020.08.22 20:37 신고

    지금도 감동...
    그 편지를 누가 복사해 갔나요?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제 시를 올리면서 자기 마음대로 산문시를 연을 구분하여 마음대로 잘라서 올려놨네요.
    우와...진짜 이상하다...시를 쓴 사람이 산문시로 써 놓은걸 왜 마음대로 잘라서...

    비대면 수업에 쓸 동영상 강의가 저번 학기엔 50분 했었는데,
    이번 학기엔 75분 이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료를 보충하고, 새로 녹음하고..

    차츰 건강이 나아지고 있다는 굿 뉴스...기쁩니다.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미친듯이 치네요.
    무슨 재난영화 투모로우처럼...무서버요.

    답글
    • 그레이스2020.08.22 22:29

      아는 분이어서 좀 당황했어요.
      수필 작가라고 기억합니다.
      두사람은 추적이 안돼서 확인을 못했어요.

      뉴스를 보니 중부지방은 오늘 비 온 곳이 많았다고 하네요.
      여기는 하루종일 덥기만 했어요.
      다음주에는 태풍이 올거라는데 또 피해가 있을까봐 걱정됩니다.

  • 앤드류 엄마2020.08.23 07:28 신고

    아드님이 정말 스윗하네요.
    아드님 말씀처럼 그레이스님께서 사랑으로 잘 키운 덕분이겠지만.
    아드님은 100점짜리 아들에 남편, 아빠일듯.
    머리도 좋고, 인성도 반듯하고, 가슴이 따뜻한데다, 또 스윗하기까지 하니.
    아드님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하시겠습니다.
    아는분이 복사을 해서 자기 블로그에 올렸다니 참.

    답글
    • 그레이스2020.08.23 10:07

      큰아들은 서너살 어렸을 때부터
      깜짝 놀랄 행동을 해서 동네사람들을 감동 시키는 아이였어요.
      시켜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지혜로웠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군요.

      결혼이 결정되고나니
      만감이 교차되면서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려 보게 됩디다.
      너를 키우면서 정말 고마웠다는 말도 하고싶었고요.
      그래서 편지를 썼어요.

      복사를 해 간 분은 자기 블로그에 게시를 했던 게 아닙니다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문장을 자기의 글에 사용하려고 그랬을 거 예요.
      본인에게 왜 복사해서 가져갔냐고 했습니다.

      내 블로그의 글 중에 육아와 교육에 관한 글은
      복사하고 싶다하면 흔쾌히 허락합니다
      애초에 젊은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포스팅한 글이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인 글을
      가져가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요.

  • 여름하늘2020.08.23 09:09 신고

    그러했던 아드님이 지금은 아이가 셋인 멋진 가장이 되었으니...
    지난 세월이 정말 뿌듯 흐믓하실것 같네요.

    요즘 블로그는 복사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네요
    복사 금지 기능이 뭐가 있나요?
    저는 아무런 조처를 안해 놓은것 같은데...

    답글
    • 그레이스2020.08.23 10:20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던 우려의 말이
      저렇게나 잘난 아들을 뒀으니 훗날 얼마나 별난 시엄마가 되겠냐고...
      시어머니 유세가 대단할 거라면서 수근거린다 하더라구요.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그 해부터
      좋은 시어머니가 되기위한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10년간 노력하면
      아들이 결혼할 즈음에는 모범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아들을 별개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된다는 것부터
      서운해 하지말고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다짐을
      아들이 대학생때 시작했어요.
      그 마음의 다짐을 마무리하는 뜻으로
      저 편지 마지막에 내 마음에서 너를 비워낸다고 썼습니다.

      공개 블로그에서는 글을 복사해서 가져 가는 걸 막을 수 없겠다 싶어서
      편지형식의 글은 전부 비공개로 바꾸어 저장했어요.
      사진은 복사가 안되는 걸로 알고있어요.

  • 산세베리아2020.08.24 09:09 신고

    멋진 아드님을 두신
    어머님 그레이스님이 더 멋지십니다.....

    답글
    • 그레이스2020.08.24 10:19

      오늘도 재활운동하느라 수영장 다녀와서
      얼음을 넣은 냉수 한잔 마시면서 블로그를 열어봅니다
      멋진 어머니라고 표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쳤던 기분이 풀리네요~^^

  • 키미2020.08.24 14:24 신고

    우연히 스크롤바를 내리다가 방문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방문이 2036이네요.
    오늘도 벌써 744...우와..완전 인기블로거세요. ㅎㅎ

    답글
    • 그레이스2020.08.24 15:37

      하루 4000명이 넘는 날도 있다고 자랑질도 했었는데,
      이번 8월달은 3000명 넘은 날이 없어요.
      최고치가 2799명이었어요.(16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내 글을 읽는구나 싶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월요일은 오후에 병원 가는 날이라서
      재활치료 끝내고 마트 갔다가
      지금 막 집에 왔어요.

  • 하늘2020.08.24 16:26 신고

    이 글은 읽어볼수록 감탄이 납니다
    어쩜 그런 엄마에 그런 아들이라니...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ㅎ

    정말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기분을 많이 선사해준 아들이었나 봐요
    저도 큰아들넘이 가끔 그랬는데 인격적으로 그리 훌륭하진 못해요 ㅎ

    그레이스님의 지혜로운 노력을 저도 한참 따라해 봐야겠습니다
    며느리에게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관계는 맺고 싶거든요^^

    답글
    • 그레이스2020.08.24 18:14
      젊은시절에는 월급의 반을 시어머니께 보내느라
      또 수시로 목돈을 요구하는 시동생 때문에,
      참으로 고달프고 속터지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걸 다 잊게 해주는 두 아들이었어요.
      편지에서는 서너가지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저런 종류의 이야기가 서른가지도 넘어요.
      이야기 하나 하나가
      우울하거나 속상할 때 나를 위로하는 치료제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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