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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죽음에 대해서.

by 그레이스 ~ 2021. 1. 27.

며칠 전에 네이버의 밤호수님 블로그에서 죽음에 관한 여러권의 책 소개를 읽고,

앞으로 다가 올 나의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던 차에

오늘은 파란편지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임종시에 남은 가족들의 반응 혹은 자세에 대한 글을 읽었다.

 

긴 댓글을 쓰고는,

13년 전 친정아버지 돌아가시던 때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고는...

 

우리 형제들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과 아버지의 본인이 선택하신 죽음을 겪으면서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

품위있는 죽음에 대해서 각각 비슷한 결심을 하게 된 것 같다. 

만약에 중병에 걸린다면... 나의 죽음은 내가 결정하겠다는... 결심.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지만, 그럼에도 치매에 걸린다면...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초기에 결단을 내리겠다는 생각도 동생들도 비슷하더라

요양병원에서 자식들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수 년을 더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

 

친정 아버지.2  (2007년 12월 7일)

 

지금 쉽게 잠들어 보려고 포도주를 두 잔 마시고,

나른해 지기를 기다리면서 오늘을 기록하려합니다.

 

오전에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창원에 도착한 시간은 12 시.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에 병실을 지키던 여동생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는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러니 네 큰오빠를 불러다오." 하셔서 형제자매들에게 호출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한 명 한명 병실에 도착할 때마다 되풀이하시는 아버지 말씀이,

간밤(꿈)에 아버지 사시는 집에 다녀왔고, 아들 딸 집집마다 다 다녀오시는 꿈을 꾸셨다고...

"이제 갈 때가 된듯하니 팔에 꼽고 있는 모든 영양제와 항생제를 떼고 자연사하고 싶다"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고 싶으니 내 뜻대로 해다오."

"이렇게 생을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나는 맑은 정신으로 너희들과 작별하고 싶다" 하시는데...

 

(아버지께서 담당의사에게 강력하게 요구를 하셨더니 자식들의 동의를 받으라고 했답니다)

우리 모두는 당황하면서도 서울에서 저녁 늦게 도착한 남동생을 기다려서

모든 형제가 의논 끝에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오빠가 대표로 아버지 뜻에 따르겠습니다 했더니,

 

"고맙다 내 인생은 참 행복했고 내 죽음 또한 행복한 죽음이다"라고 말씀하시네.

너무나 또렷이 말씀하시고 정신이 맑으셔서 믿기지 않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이 모든 약을 제거하면 24 시간 정도 후에 운명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끝내신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고...

아버지 편안하시라고 오빠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개구쟁이 추억을 얘기하고,

나는 일곱 살 때 서울 출장 다녀오시면서 사주신 예쁜 색깔의 소꼽장과 새구두 이야기.

동생들도 즐거웠던 추억들, 우스웠던 일들을 기억해내고...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신다.

 

어째 저리도 작은 소리까지 잘 들으실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이토록 위급상황인데도 아무런 통증이 없으시다는 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의 주사약 이후엔 더 이상의 영양제와 항생제는 쓰지 않기로 의사와 합의했었고,

지금의 약이 4 시간은 더 걸린다길래 잠깐 다녀가려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 밤 12시.

 

아버지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들, 딸들에게 잠깐 쉬고 오라고 당부도 하시는 우리 아버지

무서울 정도로 반듯하게 삶을 마무리하시는 모습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히 따라 하지 못할 스승을 보는 듯도 합니다.

 

복잡한 내 마음을 이렇게 횡설수설 쏟아놓고

새벽녘에 아버지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갑니다.

잠깐이라도 잠을 청하려 했는데 이렇게 울면서 밤을 새우려나 봅니다.

 

...................................

 

12월 13일.

 

장례를 마치고 어제 왔습니다.

사인은 폐렴.

 

6 월에 식도암 수술을 하셨는데

봉사활동으로 맡고계셨던 회장 직책도 넘기고 주변정리를 하시느라 무리한 일정으로 여러 행사에 다니시더니,

급격한 체력 저하로 쓰러지셔서 입원하셨고,한달만에 떠나셨습니다.

 

폐렴 때문에 호흡이 힘들었지만 암이 퍼지지 않아서 통증은 없었기에

지켜보는 우리들에겐 그나마 참 다행이었지요.

모든 약을 제거하고 다음날 면도를 원하셔서 해드리고,

물 타월로 온몸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머리까지 정갈히 빗은 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를 키우면서 즐거웠고 사랑스러웠다고 또는 고맙고 든든했다고 작별인사를 하시고

 

오빠에겐 장례를 어디서 치를 건지 (운명하신 병원과 장례를 치룬 병원이 다름) 사후의 절차도 들으시고,

운명 후 제일 먼저 누구에게 연락하라고 지시도 하시고,

강인한 정신력 때문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또렷한 의식으로 앉고 싶다고 하시더니,

"나 죽고 난 후 울지 말고 형제끼리 술 한잔씩 마시며 아버지를 생각해다오"그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먼길 떠나시는 아버지 전송하러 모인 듯이 이틀간을 보내고

(의사는 약을 끊은 24시간 후에 운명하실 거라고 했으나 하루를 더 지나 50 시간 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정신이 맑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음)

토요일 저녁 우리 모두가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5일장을 치르고 어제 돌아와 죽은 듯이 잠을 자고는 오랜만에 블로그를 열어봅니다.

 

본인의 의지로 죽음을 결정하시고

오빠에게 사후의 장례일정까지 지시하시고

자식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감사의 인사와 사랑을 표현해 주셨던 아버지의 임종은,

오래도록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서,

우리 육남매는 똑같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닮고싶어 했다

 

나는 말 할 것도 없고,

내 남편도 종종 장인어른의 마지막을 얘기한다

...............................................

  •  
    • 그레이스2021.01.27 18:38

      만약에 암에 걸린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은 해보잖아요.
      50대 60대라면 항암치료를 하고 투병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70대라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병원에서 항암치료 안하고 남은 시간을 가족과 작별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아쉬움이 없을만큼 만족한 삶이었고, 행복했다고...
      그러니 마무리도 잘 하고싶다고 말하고요.
      친정아버지 돌아가신지 벌써 13년이 되었네요.
      아버지 연세는 82세였는데,
      82세면 좀 아쉽지만 너무 애통한 연세는 아니라고 했어요.
      아들 셋 딸 셋 다 결혼해서 손자 손녀가 14명이었으니 다복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 이 글 기억나요... 저도 몇년전 형제의 죽음 뒤에
    자신의 죽는 모습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암으로 죽어가는 친구의 절절한 삶에 대한 의지같이 이 생을 놓지 못하는 모습과 그레이스님 아버님같이 이 삶을 정리하는 모습...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역시 후자이더군요
    그래서 현재를 감사하는 마음도 깊어지고 언제나 주변을 정리하는 마음자세도 갖게 되었어요
    참 좋은 글이었어요...

  • 2021.01.27 15:02 신고

    안녕하세요 그레이스님.. 써주신 글을읽고 또 눈물이.. 작년 12월, 62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지신 아버지는 큰 두번의 수술 후 4개월넘게 병원에 누워계시다가 ..가족들에게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그 채로..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제가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지 5일 만이라..코로나 상황으로..무슨 핑계가 되겠냐마는..저는 맏딸로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그런 딸입니다.. 가슴이 아립니다..그레이스님의 아버님처럼 먼 여행을 떠나듯..저희 아버지도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마무리 하셨다면..이렇듯 문득문득 떠오를때마다 하염없이 슬픈 눈물이 흐르지는 않을텐데.. 표현이 맞을지 모르지만 이러한 아름답고 따뜻한 죽음이 있을 수 있다는것이 너무 대단하고 많은 생각을 들게 하네요~!
    늘 건강하시고 가족들모두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비밀댓글]

    • 그레이스2021.01.27 18:46

      62세에 뇌출혈로 쓰러지신 친정아버지...
      두번의 큰 수술후 의식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신 것도 애통한데,
      수술로 아기 낳고 5일만이라서 장례에도 참석 못한 장녀.
      문득 아버지 생각 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라는 표현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생각날때마다... 좋은 글귀를 읽어드리고,
      아버지 딸로써 잘 살아 가겠다고 기도하세요.

  • 키미2021.01.27 20:16 신고

    친정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13년 되셨군요.
    아버님이 참으로 당당하시고, 멋지십니다.
    저도 다짐해 봅니다. 하지만 마음을 놓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 그레이스2021.01.28 08:05

      아버지는 젊은시절부터 무서울 정도로 자기절제를 잘 하는 분이셨어요.
      화가 난 모습을 가족에게 보인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요.
      품위있게 죽겠다는 말씀을 우리가 따를 수 밖에 없는 분이셨어요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남편의 말투와 행동에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 여름하늘2021.01.27 23:14 신고

    아, 이런일이 있으셨군요
    숙연해 집니다
    방금 다른 불친 방에서
    18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가 발견되었다며
    울컥하는 글을 읽고 왔는데
    그레이스님께서도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를 포스팅하셔서 읽고나니
    나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서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제가 30년전 일본 생활 글을 쓰고 있는데
    그때 일본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2년후에 아버지 임종을 보게 되었어요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시고 그 다음해에 췌장암으로....
    너무 일찍 가셨기에 참으로 허무했어요.

    저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레이스님과 같은 생각이지요
    그러한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어요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레이스2021.01.28 08:17

      우리 형제들도 며칠 전에 오빠가 보내 준
      1996년도 삼락회 회보에 실린 아버지의 일본 여행 기행문과 아버지의 사진을 받고...
      남동생은 자기가 다녀 온 곳과 겹치는데 같은 장소를 보았는데도 이렇게도 차이가 느껴지는,
      아버지의 해박한 지식에, 역시 우리 아부지셔! 내심 감탄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귀중한 자료를 재공해주신 큰형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라고 댓글을 달아 놨네요.
      70세에 쓰신 기행문을 25년만에 발견했어요.

  • 2021.01.28 08:46 신고

    저는 7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렴풋이 아버지의 기억이 납니다.
    결코 쉽지 않은 마지막 천국 환송식~~~~
    정말 잘 살다가 잘 죽는게 우리들에게는 숙제인것 같아요~~!!
    건강하세요
    그레이스님!! [비밀댓글]

    • 그레이스2021.01.29 10:30

      일곱살에 아버지 돌아가셨으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겠어요.
      한편으로는
      어린시절에, 또 성장하면서 슬픔으로 목이 메이지는... 않았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이제 우리들 차례가 되었으니,
      마지막 순간에 좋은 이별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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