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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부부간의 의견조율

by 그레이스 ~ 2021. 5. 17.

아카시아 향기에 어린시절이 떠올라 글에 

실키님이 댓글로 물어주신 부부간의 의견 조율에 대해서 답글을 쓰고 나니 

아래는 실키님의 댓글에 쓴 답글 

 

(먼저 한숨부터 크게 쉬고
숨을 가다듬고 난후에 말을 해야겠어요
저는 남편과 동등하게 의견을 조율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남편이 강력하게 주장하면
안되는 일이라고... 뻔히 보여도
꼭 말려야 하는 일이라도 일단은
남편의 고집대로 추진하게 둡니다
그 진행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수정할 즈음에 내가 왜 반대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아주 중대한 일이 아니면 남편이 하고 싶은데로 제가 양보하고요

오늘 저녁에 돼지고기 편육을 먹으려고 썰어놓고 새우젓 양념해놓은 것을 찾길래
오래되어 내가 버린 게 아니고
다 먹어서 없는거라고 하고
다시 만들려고 냉동실에서 새우젓을 꺼냈어요
그 걸 글세... 10번 먹을 만큼 많은 양을 양념해 놓겠다는 거예요
오래 두면 맛이 변질되니 한두 번 먹을 만큼만 만들자고 했더니
새우젓 양념도 내맘대로 못하냐고 화를 냅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원하는 데로 하시라고 했어요
재산상으로 크게 손해 볼 일이 아니라면
설령 잘못된 선택이라도 잔소리 안 하고 그냥 넘어갑니다

부부 사이에 기어이 이겨야 하는 일은 별로 없잖아요
저는 집을 사고파는 정도의 큰일이 아니라면
제가 지는 쪽을 택해서 남편과 논쟁을 안 하고 평화롭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작은아들이 저를
보살님이라고 하는가봐요)

 

지나간 과거가 줄줄이 사탕처럼 떠오른다 

 

작년에 이사 결심을 하고 서울에서 가까운 곳 집을 알아보는 중에 

남편이 관심이 있는지역을 정해서 

하루에도 열 곳이 넘는 부동산 사무실에 적당한 매물이 있는 지 전화하고 집을 소개받았었다 

지금 이 나이에 더구나 사고로 나는 몸도 성치 않은데 

전원주택은 안된다고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자기 고집대로 하겠다고 

두 아들을 집 보러 가라고 날짜를 정해서 당부했었다 

아버지~ 무리한 결정이십니다라고, 두 아들도 오죽 말렸겠냐 

 

전원주택에 살아보는 게 남편의 소원이라는데 어쩌겠냐고.

언니 몸이 안 좋아서 걱정하는 여동생에게

내가 포기하고 지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도 내 운명이고 팔자인가 보다 하고 웃었다 

 

살던 집을 팔기 전에 집을 사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 법이 더 강화되어 손해를 보게 되니까 

등기를 일 년간 안 하는 다른 편법을 알아보다가  그마저도 뜻대로 안 되어 포기를 했었다 

 

집 사는 과정의 에피소드는 블로그에 공개했으니

남편이 자기 원하는 데로 하겠다고

그러니 반대하지 말라면서 얼마나 나를 닦달했는지 상세하게 나와 있을 거다 

남편의 생각이 바뀌어 동네가 달라지고 집의 규모가 달라지고...

그때마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면서, 이사도 안 간 새로운 집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결국에는 전세로 이사를 오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가장 최근의 일로는

토요일 아침 지난주보다 일찍 8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가다가 

액상담배를 피우다가 남아있는 게 충분하지 않다고 중간에 되돌아왔다 

아파트로 와서 나는 차에서 기다리고... 가지고 나와 다시 출발하니 9시가 되어버렸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고를 친 본인이 화를 내고 투덜거려서 듣기에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야 정상 아니냐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왜 당신이 화를 내고 계속 투덜거리냐" 고 하니,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서 그러는 거란다 

 

이미 일어나버린 일에 말하면 무엇하냐 싶어서 나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다 

그럴 때는 당신도 내 실수다 인정하고 더 이상 말을 안하는 게 옳다  

이렇게나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면서 운전하면

듣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불안하고 기분이 어떻겠냐? 

왜 점점 갈수록 감정조절이 안되냐고... 덧붙였다 

한 참을 지난 후 

50년을 만나 온 친구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감정을 절제하고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친구라고 기억할 것이다 

당신은 아마도... 하고 싶은데로 하는 사람이라고 기억하겠다 했더니 

부부는 반대로 만나는 거라고, 그래야 잘 산다고 

엉뚱한 대답을 하네 

그 건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한 것을.

 

  • "그 건 한 사람의 희생이 필요한 것을..."
    대개의 남자들은 결코 자기 희생이 필요한 일은 거의 안하려고 하지요!
    마지 못해 꼭 자기가 해야할 일도 온갖 아전인수격의 핑게를 만들어 합리화 하고요.
    우리나라 조선 후기에 들여온 중국 송나라의 신유교주의 (New-Confucianism),
    직계혈연 중심의 가부장제하, 남존여비 사상의 가장 중요한 덕목, 공동체를 위한 희생은
    오직 여성에게만 강요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을 나아야 그 희생의 일부라도 노년에 보상 받을 수 있었고,
    모성의 남아를 위한 교육열, 남아만을 위한 가족 이기주의등의 병폐는
    희생자인 여성이 아들을 나은 후에는 노년에 가해자가 되어
    우리나라 가족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예전의 고부관계의 유형에 잘 나타나지요!

    물론 시대가 바뀌고, 다양한 부분에서 민주화와 합리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과정이자
    사회체제도 Digitalization 에 힙입어 상상하기 조차 힘든 차원으로 변화하는 중에도
    사회적 공간에서의 아직도 귿건한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마당에, 사적 공간인 가족내 에서야 닐러 무삼하리오!
    반면, 우리 자식들 세대에서는 대학 교양과목에 "여성학 개론"이 선택, 혹은 필수교양으로 존재했고,
    당시 선구적으로 그 과목 강의를 진행했던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성학, 여성주의를 수강한 남학생들은
    확실히 좀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한다는 믿음이 생겼고, 세월이 가면 점점 향상되리라는낙관에 기대 봅니다.

    • 그레이스2021.05.17 20:42

      시대에 앞서서 여성학을 강의하셨던 실키님 입장에서는
      아직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한마디로 아내에게 군림하려는... 남편들에게
      깊은 탄식을 할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결혼생활의 연차가 많아 질수록 점점 더
      직접 싸우지 않는 것이 이기는 방법이다 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성질 급해서 버럭했던 사람은 직접 표현은 안하지만
      자기의 행동을 미안해 하고 후회하는 게 느껴지거던요
      하루나 이틀이 지난후에 그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순순히 받아들이더라구요
      내가 순종적으로 계속 지고 사는 게 아니라
      하루 이틀이 지난 후에는 옳고 그름을 따져서 반격을 하니까
      항상 마지막 승자는 제가 됩니다

      아버지세대와는 달리 요즘 40대 남편들은
      부부가 의논해야 할 일에 합리적이고 아내가 우선인 사고방식이어서
      의견충돌이 생기는 경우에는 남편이 양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래요

  • 하늘2021.05.17 21:27 신고

    이 글을 읽고 너무 공감되어 할말이 많지만 그냥 침 한번 삼키고 꾹 참습니다
    그게 몇십년동안 습관이 되어 이젠 포기랄까... 뭐 그런 기분이네요

    몇년전 한국어 가르칠때 학생이랑 같이 전철을 타고 귀가하는데 한국남자들은 드라마에서 나오듯 그렇게 여자를 존중하고 자상하게 사랑하냐고 ....선생님 남편도 그러냐고 물어보는데... 제가 순간 말문이 막혔드랬어요.. 조선말 양반가문서 자라 여자는 종처럼 부리는 그런 집안 남자인데다 젊을적 일본으로 유학온 탓에 한국이 변할때 따라가질 못해 완전 옛시대 남자라 했어요
    그랬더니 자신도 60평생 살아오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스럽게 사는 부부는 딱 한번 봤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이 왜그리 위로가 되던지.. ㅎㅎ

    • Silky2021.05.17 22:55 신고

      실은 결혼당시 제 남편도 일년에 설과 추석의 차레와 더불어 기제사가 7번인 집안의 장남으로, 대학원 졸업을 위한 석사논문 준비 중에 학교 교수님의 소개로 특수부대에 차출되 군복무 중 이었지요? 그런데 결혼 1년전에 오랜동안 교직생활하시던 시아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시어머님은 채 50이 안되셔서, 남편의 의가사 제대도 안되는현역 육군 병장이었구요.
      그러니 시어머님께서 약혼 중이던 우리 부부의 혼인을 서두르셔서, 신혼 살림도 못 차리고 그냥 저는 친정에서 직장에 다니고, 남편은 주말에 외출나와, 논문도 쓰고 군에 돌아가는 생활을 8개월간 지속하다 드디어 제대를 하고 나서야 신접 살림을 차릴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 결혼 하자마자 시댁의 가계를 떠 맡았음에도, 같은 전공이라 여성 차별은 자기 사전엔 없는 것 처럼 주장하더니 막상 신접 살림을 시작하니 머리는 1세기를 앞서가나 몸은 여전히 19세기의 장남 우선인 모친의 대접에 익혀진 행동양식이라 제가 우스개 소리로 머리와 몸이 2세기의 간극인 사람과 살다보니 완전 카오스 상태라는 말을 하면, 그렇게 싫어 하더이다. 그러면서도 그 기본 습관은 참으로 고쳐지기 힘들어서 차라리 제 마음가짐을 달리 하려 노력 중이지만 잘 안되는 군요.

  • 한나2021.05.18 08:31 신고

    그레이스님의 지혜로운 내조가 돋보입니다.
    저는 따라하지 못할것 같아요.
    그길이 틀린걸 알면서 남편이 하고싶은대로
    선택하는걸 지켜보는 인내심이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 그레이스2021.05.18 09:30

      서울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남편의 고집 때문에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어요
      두 아들이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설득하고
      엄마 의견을 지지해줘서
      (결국에는 남편 뜻대로 안될꺼라고 믿고) 처음부터는 잔소리를 안했어요
      기어이 고집을 못 꺾을 경우가 생기면 따라 가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어요

      아주 예전에
      아들이 초등학교 다니던 시기에
      여름휴가 가는 걸 단 한번도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는 못갔어요
      해마다 남편이 가고싶은 장소를 정하면
      두 아들과 나는 불만이 있어도 따르는 수 밖에 없었거던요
      남편이 모든 준비와 계획을 철저하게 해서
      나는 아무런 신경을 안써도 될 정도로 해주니까
      그런대로 만족도는 높아서 따르게 되었을 겁니다

  • 이카루스2021.05.18 11:02 신고

    늘 현명하고 지혜로움을 배웁니다 ~ 그런데 전 잘 않되는게 문제예요 ..ㅎ
    그래도 그레이스님 따라쟁이하고픈 맘이 충만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 그레이스2021.05.18 11:44

      화를 참는 것도 노력으로 점점 어렵지 않게 됩디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화를 안 내기 위해서
      감정 훈련을 했어요
      감정이 폭발할 것 같은 그 순간을 넘기고 나면
      비교하자면
      시야가 확 넓어지는 듯한
      내 속이 깊어지는 듯한 너그러움이 생깁디다
      그런식으로
      점점 더 화를 잘 다스리는 성격이 된 것 같아요

      화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화가 나는데도 억지로 참으면
      분하고 억울해서 홧병이 생기잖아요

  • 앤드류 엄마2021.05.19 01:17 신고

    제가 10년전에 그레이스님의 블로그를 만났더라면 제가 실패한 엄마가 되지 않았을텐데..
    엄마는 정말 자애롭고 품어주어야 하는데,
    제가 자랄때 집에서 딸이라고, 직장에선 여성이라고 차별을 받고 자란게 화로 남아있어서인지,
    화가 나면 못참아서 제가 어렵게 쌓은 공든탑을 화로 인해 순간에 무너뜨리며 어리석었습니다.
    남편도 성격이 급했고, 그럴때 자애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가까이 계셨으면 아들들이 한결 나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때면 제 아이들에게 미안하곤 합니다. 사과도 몇번씩이나 했지만.
    정말 현명하십니다. 마음 고생은 하셨지만, 아드님들도 다 아시고, 남편분께서도 아시니 잘 사셨어요.
    시간날때 지난 글들 읽겠지만, 전원주택으로 이사하시지 않으신것 정말 잘 되었습니다.

    • 그레이스2021.05.19 06:27

      경란씨의 댓글을 읽고
      나를 좋은 본보기로 평가해줘서 고맙고도 과한 칭찬에 민망하네요
      77년생 78년생이니
      그 당시에는 남보다 일찍 육아와 훈육에 관심이 많았던 편이었어요

      내 경우에는 집에서 딸이라고 차별 받는 게 없었어요
      삼촌도 없고 고모도 없고 오직 아버지 혼자뿐이었으니
      그런 가정에서 위로 아들을 낳고 내가 태어났으니 어른들께 귀한 대접을 받았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소중하게 대하고 육아와 훈육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자라면서 받은 영향이 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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