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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들

똑같다 (2015년 3월 26일 글)

by 그레이스 ~ 2022. 7. 15.

다음 블로그가 없어진다는 공지에 

많은 글 중에 남길 것과 삭제할 것을 구분하느라

매일 예전 글을 읽어보고 표시하는 중이다 

그 중에 하나.

 

똑같다.(2015년 3월 26일)

 

감기 들어 맥을 못 추는 마누라 대신 부엌일을 하시더니, 아예 모든 집안일을 돕자고 작정을 하신 모양이다.

청소를 시작하면 진공소제기는 내가 할게~ 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도  수시로 오늘 점심은 내가 만들게~

하고는, 재료 준비에서 나중에 치우는 것까지 모든 걸 혼자서 척척이다.

 

어제 점심은 지난 추석선물로 받은 국수 한 박스가 쌓여있는 걸 보고, 삶아 짜장면을 만들겠다고 하더니,

돼지고기 안심 덩어리 사다 놓은 것과 각종 재료를 볶아서 제법 그럴싸~ 하게 만들었다.

 

요즘은 돼지고기를 살 때,

기름기가 없는 등심이나 안심을 덩어리째 사서,마파두부와 찹 수이를 만들거나,

각종 야채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일본식 쇠고기 전골과 생선조림은 남편도 잘 만드는 품목이다.

 

이제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날마다 계속해주니까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더니,

매일 출근하거나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란다.

허리랑 관절도 안 좋은데 혼자서는 넓은 집 청소하고 관리하기 힘들다면서,

나 죽고 나면 작은 집으로 이사하라고 당부도 하시네.

 

이틀 전인가~ 낮시간에 세훈이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전날 밤에 사고당한 친구의 영안실에 조문을 다녀왔다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목이 메는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고는,

막내 숙모 요즘도 삼성생명 다니냐고~ 묻는다.

왜 무슨 일로?

갑자기 내가 죽고 나면 남은 가족은 어떡하냐~는 생각에  더럭 겁이 나서,

사고가 나면 배당이 높고 사고가 안 나면 낸 돈은 없어지는 생명보험을

10년 정도 들고 싶다는  말을 한다. 

 

연말에 퇴직했다더라는 내 말에,

딴 곳에 알아보겠다고 하고는, 곧 진료를 해야 한다며 바쁘게 끊는다.

 

40대 어느 날,

남편이 회사 설합에 두고 있었던 월급 명세서를 다른 서류들과 한꺼번에 집에 가져왔는데,

해마다 1월에 이해가 안 되는 수상한 지출이 있어서 궁금해서 물었더니,

남편이 생명보험에 들어서 1년에 한 번, 일 년 치 금액을 한꺼번에 내는 것이었는데,

나한테는 비밀로 해서 거의 10년간 나는 모르고 있었던 일이었다.

 

남편은 외국 출장이 많으니... 비행기 사고나 교통사고 등등...

갑자기 사고로 죽고 나면 어린 두 아들과 아내는 어떻게 살아가나~ 그게 큰 걱정이었다고...

 

친가나 처가 어디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겠고... 보험금 받아서 애들 공부시키고 최소한의 생활은 해라고...

그래서, 사고가 안 나면 보험금 낸 것은 무효가 되고

만약에 사고가 나면 보상금이 큰 보험을 들었단다.

그 당시에는 국내 보험회사에는 그런 상품이 없어서 외국 보험회사에 가입했다는.

 

사고가 나서 죽는 건 두렵지 않은데, 남은 가족이 어찌살꼬~ 라는 걱정을,

장거리 출장을 갈 때마다 했다는 말에,

가족 걱정하는 남편의 심정이 그대로 전달이 되어 눈물이 쏟아졌었다.

 

길거리에서 고구마 장사를 해서라도 애들 공부를 시킬 테니까 그런 보험은 당장 그만두라고 했지만,

집안 형편이 나아지고, 여유가 생기고는 그 보험을 그만뒀나 보다.

 

젊은 시절에는, 섬세하고, 걱정 많고, 잔소리도 많고... 집안이 어질러졌거나, 눈에 거슬리는 게 보이면,

불같이 화를 내어, 나는 대꾸 한마디 못하고 야단을 맞는...

남편 시집살이가 많이 고달팠는데,

한편으로는 끔찍이도 가족을 챙기고 위하는 그 마음을 알기에,

남편의 유난한 성격을 참아내고 받아줬었다.

 

세훈이의 전화를 받고 보니, 어쩜 그리도 아버지를 꼭 닮았나~ 싶어서, 할 말을 잃었다.

다정다감해서, 

집안의 불편한 부분을 편리하게 고치거나, 퇴근 후 아기들 돌보고 집안일 돕거나, 

아내를 위해서라면,

한밤중에 소화제 사러 약국에 가는 수고라도, 얼마든지 하는 건 아버지랑 똑같다.

더불어, 소심하고 예민해서 상처도 잘 받고,

안 해도 될 걱정까지 미리 하느라, 아내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아버지랑 똑같다.

 

며느리가  나한테 상세한 말을 안 해도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한 곳이나 어려운 일도 감수할 남자.

세훈이를 보면 남편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고,

지금 남편을 보고 있으면 세훈이의 미래가 짐작이 된다.

 

..................................................................

 

  • 키미2022.07.15 10:27 신고

    아침에 논문 하나 정리하고, 방문했더니 눈물나는 글이 있네요.
    부군의 세심하고 배려 가득한 모습이 아드님께도 그대로 있군요.
    제 남편도 자기 가고 나면 시골에 있지 말고, 여동생이 있는 대구로 가라고 합니다.
    시댁은 더이상 연관하지 말고, 다 정리해서 가라고.
    결혼 후 많은 일들을 시댁을 위해 했는데, 자기가 없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네요.
    우리는 자식이 없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은 편입니다.

    답글
    • 그레이스2022.07.15 16:37

      오늘은 2시 30분에 들어가서 4시에 만나기로 하고... 수영 다녀왔어요
      1시간 반이면 적당합니다
      지금 세탁기에 빨래꺼리 넣어놓고 저녁 준비하기 전 잠시 쉬는 중이에요

      예전 글을 보니
      몇 년 전에는 고집불통에 버럭 성질부리는 남편이 아니었네요
      내가 자주 하는 말... 감사한 게 많아서 남편을 이해하고 성질을 참아준다는 ... 그 중에 포함되는 사연이에요

  • 눈꽃2022.07.15 16:00 신고

    그레이스님 안녕하셨어요~
    하윤할아버님의 마음 씀씀이에,저도 가슴한편이 저려옵니다.
    작은아드님이 아버지를 꼭 닮았네요.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몸에 밴것일까요,아니면 타고난 성정이 그런걸까요.
    참 닮아가는것이 신기하지요.

    답글
    • 그레이스2022.07.15 16:42

      가족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그 마음가짐과 실천은 아버지를 닮는 게 좋은데
      자기 뜻대로 하겠다고 버럭 화 내는 건 절대로 닮으면 안 됩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걸 보고 참아 낼 아내도 없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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