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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내 자식을 효자, 효부로 만들려면

by 그레이스 ~ 2022. 8. 12.

2011 년 12 월 23일에 쓴 글.

 

시어머니가 되고 보니,

앞선 선배들의 경험도 듣고 또 좋은 조언도 받고 싶어서

검색해서 시어머니 카페라는 곳을 찾아봤다.

 

많은 글들이 있었지만 카페에 가입을 안 하면 어떤 내용인지 읽을 수 없게 되어있어서

가입을 하고,

천천히 글을 읽어보는데,

 

"어떻게 하니까 좋더라"라는 내용보다,

구구절절 시어머니 때문에 고통받는 사연들, 못된 며느리 때문에 고통 받는 사연들...

내 마음이 아득~해진다.

나의 기대치와는 아주 다른 뜻밖의 상황이라고 해야겠다.

 

어쨌거나 나는 시어머니 입장이니까,

며느리를 고쳐라 하기보다 시어머니가 고쳐야 할 그 무엇을 먼저 생각해봐야겠지?

 

큰애와 둘째의 나이차는 14개월이다.

큰애가 8개월이었던 때 둘째는 임신 4개월.

 

그 8개월 어느 날.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혼자 몸으로, 입덧으로 더욱 힘들었던 나는

만사가 귀찮아서 큰애를 돌보는 게 좀 소홀했을 테고...

 

어떤 이유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순한 아기였던 큰애가 울면서 많이 칭얼거렸다.

아기를 달래다가... 나도 서러워져서,

말귀도 못 알아듣는 어린 아기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면서 애원을 했었다.

 

명훈아~ 엄마를 도와줘~

엄마 뱃속에 동생이 생겨서 엄마가 지금 너무나 힘들어,

그래서 너를 안아줄 수가 없구나~

울지 말고 잘 놀아줘~ 너만 믿는다 명훈아~

 

아기가 내 말을 알아들으라고 한 말이라기보다 그냥 나 혼자 하는 하소연이고 간절한 바람이었겠지.

눈물이 글썽해져서 8개월 아기에게 한 말이...

그 간절한 느낌이 통해졌는지, 아기는 조용해지면서 순한 표정이 되더라고.

 

내가 얼마나 놀랐던지!

그 이후로 엄마와 자식은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두 살, 세 살, 네 살 나이가 더해질수록...

눈높이를 마주하고, 진심을 담아서,

착하구나, 참 잘하는구나, 어쩜 그리도 침착하니?

내가 평소에 바라는 희망의 단어를 칭찬의 어휘로 사용하면서,

아무리 화가 나고 야단칠 일이 생겨도 잘못된 행동 그 자체를 꾸짖었지,

너 때문에 못살겠다, 말 안 들어서 내가 죽겠다,

등등... 나쁜 어휘를 써본 적이 없었다.

 

잘못했을 때도... 고의가 아니고 실수했구나~ 라며,

너를 이해하고 믿는다는 엄마의 마음 표현을 수시로 했었지.

 

미울 때가 왜 없었을까?

두 갈래 마음이 생길 때는 그때마다 바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었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두 아들은 정말 속 깊은 효자다.

 

 

며느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처음 며느리감을 보는 순간부터 어떤 장면 장면마다  미워할 수도 이뻐할 수도 있겠더라구.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나 말이 있을 수도 있고...

 

나는 며느리의 어떤 행동에서 두 개의 해석이 가능한 느낌이 들면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로 결심했다.

 

마찬가지로,

내 행동도 며느리에게 똑같이 두 개의 해석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예를 들어,

고기를 양념하면서 손을 씻고 맨손으로 양념을 했는데,

그리고 삶은 사태를 찢으면서 맨손으로 했는데,

 

그게 며느리의 눈에 어머니의 손맛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아이참~ 어머님은 왜 1회용 비닐장갑을 안 끼실까?라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않냐구.

목욕탕에 가서 비누로 손을 씻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강자의 입장이니까

싫은 게 있어도 며느리는 더욱 싫은 내색을 못할 테지.

며느리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일까 를 수시로 체크해보는 것도 시어머니의 자세이겠다.

 

자칫...

내가 고생해서 만들어서 이렇게 갖다 주는데 지가 왜 싫어해?"라는 생각이 앞선다면

그건 받는 사람 입장은 생각 안 하는 오만일 수도 있다.

입덧하는 입장에서는 고기 냄새가 싫을 수도 있고, 끈적끈적한 그릇들을 씻기 싫을 수도 있을 테니까.

 

 

30년 전 이웃집 사는 이가 몸살을 해서 아팠는데 시어머니가 장을 봐서 오셨더란다.

반찬을 만들어 먹어라며... 다듬지 않은 채소를 이것저것 사 오셨던 것.

 

아파 죽겠는데 남편 밥해주게 생겼냐며 화가 잔뜩 나서

시어머니 가신 후 몽땅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말을 들었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고부간에 사이좋게 지내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고기 썰었던 도마랑 그릇들을 씻으면서 옛날의 아랫집 지한이 엄마 생각이 나더라.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믿고 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

내가 며느리를 사랑스럽게 보면 그 애도 나를 믿음으로 대할 거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무수히 생길 두 마음의 갈래 길에서

그때마다 내가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며느리도 똑같이 닮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래서 효자, 효부는...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에서 만들어진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