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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형제자매들.

나에게 첫 연예인은

by 그레이스 ~ 2023. 6. 10.

지난 일요일 오후에 

풍선껌을 씹어서 입속에서 껌을 펼쳐 불어서 풍선을 만드는 윤호를 보고

윤지가 감탄을 하면서 쳐다보았다 

(유라도 열심히 연습을 하지만 아직 입술로 풍선 제작이 안 된다)

 

나중에

유준이 윤지 할아버지 나, 네 사람만 거실에 있을 때 

윤지야~ 오빠가 입으로 풍선 만드는 거 봤지? 했더니

으응~ 엄청 컸어 

우리 오빠는 뭐든지 잘해 

윤지가 오빠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 표정으로 설명이 되는 모습이었다

오빠는 똑똑하고, 물어보믄 뭐든지 다 알고, 피아노도 잘 치고, 운동도 잘 하고,

그리고 잘 생겼단다

 

그 걸 지켜보신 할아버지 말씀이

여동생에게 오빠는 저렇게 영웅이 되어 가는 거라고 

나를 찍어서 덧붙인다 

 

나에게 오빠는 오랜 기간 멋지고 자랑스러운 영웅이었다 

그 시작은 할머니댁에 맡겨져서 오빠와 함께 있었던 시기였을 텐데

그 이후 오빠가 1학년 입학하여 

글자를 알고 시계를 볼 줄 아는 시점이 

오빠를 연예인처럼 생각한 시작이었던 것 같다

 

윤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어린시절이 떠오르고... 풍성한 추억에 빠져서 즐겁고도 아련했다 

오빠가 뭐든지 잘하는 멋진 학생이라고 생각했으니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어쩌다 불만이 생겨도 따지거나 기분 나쁜 내색을 해 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니 오빠와 나는

어른이 될 때까지 한 번도 말다툼을 해 본 적이 없는 남매다 

 

오빠가 나의 우상이었던 시절의 에피소드 한 토막이

형제 카톡방에 올려 준 오빠의 글에도 나온다

 

2018년 8 월

오늘 아침,

형제 카톡방에 올라온 오빠의 글과 사진.

 

 

 

 

벽시계.

 

처박혀 있던

할머니가 쓰던 벽시계를 말끔하게 고쳐 왔습니다.

이런 걸 전문적으로 고치는 곳이 있어

부품을 구할 수 있으니 살려내는 모양입니다.

 

할머니가 여섯살 아들 손잡고,

일본에 있는 서방님 찾아 간 게 1932년인데 아마 이 시계도 그때쯤 샀을 것이니,

나이가 85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세이코샤(지금의 세이코) 제품.

 

어릴 적

기둥에 매달려 있는 시계 보고,

"봐라~ 이제 종이 두 번 칠끼다"

"딩 딩"

"우와~"

"오빠는 그 거 우째 아는데?"

순진하기 짝이 없던 동생은

손자 손녀가 다섯이나 되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이 시계를 보고

기차 타고 마산 가서 중학 입학시험 치고

통학생시절

아침마다 기차역에 내달렸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오래전에 떠나고

아버지도 가시고 안 계신데

그 노무 시계가 다시 똑딱거리니

너무 반갑습니다.

.........................................................................

 

오빠의 글이 경어체인 이유는,

똑같은 글을 형제카톡방과

과거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과 지인들에게도 보내기 때문이다.

 

8월 3일,

벽시계와 엄마가 결혼 때(1945년 1월) 혼수로 가져온 재봉틀을

전문가에게 가서 고쳐왔다고 사진을 올려 줬었다.

 

 

재봉틀에 알맞게 받침대도 제작했다고 상점에서 보내온 사진.

동생들은

벽시계와 재봉틀에 얽힌 이야기를 댓글로 풀어놨었다.

 

오빠가 학교에 다니고, 시계를 볼 줄 알게되어

정각이 되기 직전에  이번에는 몇 번 종소리가 날 꺼라고 알려줬었는데,

다섯 살짜리 나는 그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오빠가 천재인 줄 알았다.

 

......................................................................

 

서울 다녀 온 다음 날 오빠에게 전화해서 

윤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덧붙여서 

요즘 소녀들이 배우나 가수를 동경하는 것처럼 

오빠가 나의 첫 연예인이었다고

어른이 된 이후로도

좋은 성품으로 형제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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