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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일기)

지팡이

by 그레이스 ~ 2023. 10. 31.

묵은쌀을 다 먹고 햅쌀을 사려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어제 마트에 갔다

남편도 동행해서 과일이랑 채소 무거운 것들도 제법 담았다 

돌아오는 길에, 집으로 가는 게 아니고 방향이 다르다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지팡이 사러 간단다 

 

내가 싫다고 했는데 왜 그러냐고 했는데도 계속 가는... 전혀 되돌릴 마음이 없는 거다 

(일본 카마쿠라에서 점심 먹으러 가서 지팡이를 두고 왔다)

내 의사는 도무지 들으려고 안 하는 남편을 보니 화가 치밀어서 

"병신이라고 무시하는 재미에 신이 났구나"

"싫다 하면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지 왜 왜 내 의사는 무시하냐고"했더니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바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왔다 

 

일요일 밤, 어느 카페에서 걷는 게 불편하다는 나에게,

65년생 회원이 자기는 펄펄 날아다닌다는... 그 글에서 상대적인 우월감이 섞인 뉘앙스를 느꼈다.

그래서 하루종일 속으로는 울적하던 중에 

남편이 장애인 지팡이 사 주겠다고 불을 질렀던 거다 

 

용인으로 이사 와서 처음 장애인 지팡이를 사러 갔을 때도 나는 사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었다

몇 번이나 싫다고 했으나 내 의견을 묵살하고 기어이 사러 갔었지

나는 이성적으로는 지팡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장애인 지팡이를 거절했던 거다 

그 후에 발가락이 골절되어 기브스를 했을 때 요긴하게 썼었다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사용할 사람이 싫다 하면 그 의견도 존중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왜 당신은 내 의견은 무시하고 자기 결정에 따르라고만 하냐?"

"나는 정말 무시당하는 이 기분이 너무 싫다" 

작심하고 불만을 쏟았더니 

남편은 예상치 못한 나의 반격에 충격을 받은 듯 계속 내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재작년에 샀던 장애인용 지팡이 

작년 가을, 유라가 발에 기브스한 할머니 흉내를 내느라 지팡이를 짚고 있다

어두워지면 다른사람에게 보행이 불편한 사람이라는 걸 알리는 불빛이 4 방향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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