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전날' 제목의 글에
결혼한 지 한 달 지나고 배추 50 포기 김장을 했다는 댓글을 썼었는데
그 게 가능했던 과거의 사연을 풀어 본다
초등학교 6 학년이 되기 직전에 조부모님은 아들 며느리의 요청으로
시골집과 논 밭을 팔아서 마산에 집을 마련하여 아들과 합가를 하셨다
(부모님이 결혼 이후 그때까지 불려 왔던 돈은 급하게 외할아버지께 빌려드린 후 못 받고 있어서)
그러니까 내 나이 12 살이었던 그 해부터
기제사에 상 차리는 법과 제사 모시는 법을 할아버지께서 장손녀를 심부름꾼 삼아서 해마다 가르치셨다
아버지와 오빠 남동생은 제사에 참례하는 사람들이니 꿇어앉아 있었고
엄마는 일찍부터 딸에게 집안일을 시키셨는데
중학교 다닐때 이미 저녁 설거지는 내 담당이었다
여동생에게도 가끔 설거지를 시키셨는데, 그런 날은 여지없이 내가 꾸중을 들었다
동생은 부뚜막은 물론이고 찬장 안 구석도 다 닦고 양념단지도 깨끗이 닦아 놓는데
니는 언니가 되어가지고 어째 밥솥하고 그릇만 씻어놓고 나오냐고
엄마의 지론은
부잣집에 시집 가서 하인을 두고 살아도 주인이 할 줄 알아야 제대로 시킬 수가 있다고
주부가 해야하는 집안일들을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해마다 동참시키셨다
내가 고등학교 3 학년 때
그러니까 1968 년 봄에 아버지는 교장 첫 발령을 받아 거창으로 가셨다
줄줄이 학교 다니는 아이가 많아서 엄마는 마산 본가에 계셨고
엄마 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아버지 따라가셨다
오빠는 대학생이 되어 1967 년에 집을 떠났고 세 어른도 안 계시니
자연스레 내가 엄마를 도와 집안일에 참여하게 되었을 거다
다음 해 1969 년 추석 전에, 엄마 나이 42 세에 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엄마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딸에게 일찍부터 집안일을 가르치셨나
결혼을 하고,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했다
김장을 할 줄 아는 것도, 메주 씻어 말려서 장 담는 법을 아는 것도
시아버지 기제사를 제례에 맞게 모시는 것도
새댁이 어찌 했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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