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 간 해가 1999년 4월 30일이었으니
우리 집에 있는 가구들은 모두 26년이 되었다
(대학생이었던 두 아들은 미도 34평 전세 얻어서 자취생으로 살게 하고
어른만 부산으로 가면서 가구들은 여동생 집과 두 아들이 사는 집으로 옮기고
부산 집에는 전부 새로 구입했었다 )
부산으로 옮기는 이삿짐은 전부 컨테이너에 보관하고
나는 두 아들과 서울에서 생활하고 남편만 해운대 집의 리모델링을 감독하느라
싼 호텔에서 4개월 숙박했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모든 가구들을 남편이 선택해 놓고,
결정하는 날 내가 부산 내려가서 최종적으로 가구점을 방문했었는데
가구점 사장님과 직원들 그리고 남편까지 전부 나를 결제하러 오신 회장님 맞이하듯이 붕붕 띄워서
이 건 싫다고 다른 브랜드를 보고 싶다고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였다
너무 거창한 화장대까지도
나중에 이사를 하는 날 부산 가서 보니까
식탁은 물론이고 장식장, 화장대, 침대 사이드 테이블, 문갑 세트
모든 가구 위에 두꺼운 유리를 덮개로 깔아 놨더라고
처음에는 남편 취향대로 맞춰서 살았지만
식탁에 유리 덮는 건 1980년대 유행이었고 90년대가 되면서는
어느 집에서나 유리를 덮지 않는 유행으로 바뀌었는데도
남편은 요지부동으로 식탁 위의 나무 무늬가 장식으로 붙인 거라서 절대 안 된다고 하네
얼마 전에도 또 안 된다고 했었다
남편 취향에 맞춰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으나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내가 하고 싶은데로 못 살아보냐고
어제는 큰소리로 화를 내면서
식탁이 망가지면 4인용으로 새로 사면 될 꺼 아니냐고
죽는 날까지 나는 내마음대로 못 살아봐야 하냐고 항의를 하고는
당신 골프 가고 없을 때 망치를 가져와서 유리를 부숴 버릴 거라고 했다
그래도 오케이 안 하길래
두 사람이 들어도 무거운 유리를
혼자서 들어내려고 위험한 짓을 시작하는 걸 보고는
얼른 와서 겨우 옆으로 눕혀서 의자 두 개 위에 옮겼다가 우여곡절 끝에 벽에 새웠다
앞으로 진짜 큰 일은 본챠이나 그릇 포장하는 일이다
울산에서 서울로 이사했을 때 본차이나 그릇 때문에 포장이사 비용에 추가로 더 내고 맡겼는데
밤늦게 이삿짐을 풀고 중요한 것들만 확인하고는 인부들은 다 보냈고
커피잔 세트 중에 6인조 장미무늬 한 세트가 없어진 것을 나중에야 알았었다
그런 경험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할 때는 비용을 더 내고
사진을 찍어서 첨부하고 만약에 없어지거나 깨어지는 게 생기면
백화점에 가서 똑같은 것으로 변상하는 조항을 넣어서 계약했었다
부산에서 용인으로 올 때는 며칠 걸려서 전부 내가 포장을 했었고
그리고... 일본 찻잔들, 중국 찻잔들
남편이 오늘 아침에 그릇들에 대해서 한 소리 하길래
나에게 본차이나 그릇은
젊은 날의 멋진 추억이 동시에 떠오르는 존재이며,
화려함과 영광, 그리움, 낭만이 다 들어있다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나에게는 자랑스러움이었다.
그러니 죽는 날까지 간직하고 있을 거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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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님 댓글에 답글을 쓰다가
영국에 가서 주재원으로 먼저 살고 있던 부인들에게 조언을 듣고
접대용 식사 그릇이 급해서 처음으로 샀던 디너세트를
42년이 지난 지금도 매일 잘 쓰고 있다
8인용으로 디너 접시 두 종류 8개씩, 과일 접시 하나, 수프 볼 8개,
디저트 접시와 커피잔 그리고 찜기 하나
한국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아서
렌트한 집에 있던 오래된 냄비와 그릇으로 우리 가족은 밥을 먹을 수 있었으나
당장 코렐 한 세트라도 사야겠다 생각하고 주변에 물어봤더니
본차이나 중에 금테 은테가 없는 그릇은 비싸지 않다고 웨지우드 본차이나를 사서
접대용으로 또 가족용으로 두루 사용하라고 했었다
42년을 매일 아침 저녁 사용하는 중
커피잔은 이빨 빠지고 속에 커피 자국 닦다가 흠이 생겨서 이제는 다 버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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