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계속 경상도식 김치 콩나물국을 끓여 낸다.
어제도 두시 귀가.
기다리지 말라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방에 들어가 잠들지 못하고 소파에서 졸고 있었는데,
늦어서 못 들은 얘기는 아침 밥상머리에서 진행상황을 듣는다.
기이한 인연 하나;
외국 회사 협상대표를 따라온 보험회사 기술담당 책임자가,
말하자면 올림픽 출전 종목도, 국적도, 소속도 다른 곳에서 또 경쟁팀으로 마주쳤다고 할까?
20년 전쯤 대기업의 기술 책임자로 있을 때 (그 사람도 국제 보험회사의 기술담당으로) 분쟁의 해결 당사자로 크게 한판 했었던 것.
"당신의 대응방법, 일을 풀어가는 스타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랬었다고.
40대에 만났다가, 서로 육십이 넘은 나이에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으로 또 만나다니!
(남편은 또 다른 일로 외국변호사들 대동하고 국제 제판소에 증인으로 참석한 적도)
외국회사는 대형 프로젝트일 경우 손해보험뿐 아니라, 프로젝트 완성 보험이라는 걸 들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보험회사가 돈을 더 들여서... 혹은 다른 나라로 끌고 가서라도 완성시켜야 하는) 안전장치를 해뒀더라네.
얼마나 풀어야 할 난제가 많은지...
나는 매일 - 전쟁 드라마 다음 편을 기다리듯이 -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은행 창구 직원이 수억의 돈에 아무렇지도 않듯이,
천억이 넘는 액수의 단위에도 나도 단련이 되었다.(반찬값 만원을 따져보는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돈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내조는,
해장국을 끓여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깔끔한 와이셔츠를 준비해놓는 것 - 내 나름대로 적절하게.
(이럴 땐 온화한 느낌이 아닌 샤프하고 철저한 느낌이 나는 종류로 - 흰 바탕에 선명한 줄무늬 타입 등)
내가 보는 남편이,
사냥의 기술을 다 터득한 노회 한 맹수라면,
아들은,
덩치는 다 자란 맹수이지만 정글의 위험을 배워가는 초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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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suk2008.09.17 15:27 신고
저도 남편의 회사 이야기 들어주는거 좋아해요..
답글
여긴 터놓고 지내는 친구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제가 친구 역할도 대신해줘야 하거든요..
저한테까지 자문을 구할때는 더 즐거워요..
ㅎㅎ-
그레이스2008.09.17 21:32
남편의 일은 (작전내용을) 비밀을 지켜야하는 일들이 많아서,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가없고,
수시로 계획이 바뀌기도하고...
예전에 사택에 살때 (같은회사 가족임에도 불구하고)출장지를 이웃들에게 비밀로 하라고 시키기도 했어요.
그러니,
말할수있는 대상이 나 뿐이지 뭐!
설명하는 식으로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도움이 되나봐요.
나도 오랜 시간 듣다보니 판단력이 조금 생겨서 의견을 내색할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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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표니의 이야기까정 들으면 오버플로우가 될때가 많아서
답글
제 직장이야기나 남편 직장이야기는 서로 잘 않해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집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죠
가능하면 아이나 우리들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내곤 하죠
다만 경제적인 이야기는 가정경제와 연관이 있기에 가끔 화재거리가 되곤하지만
신랑 일이야기 들으면 지 머리는 오버플로우예요 ㅎㅎㅎ-
그레이스2008.09.17 21:38
희망님은 직장을 다니니까 나하고는 입장이 다르겠지?
나는 다른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남편의 일은 첩보원 경쟁처럼 두뇌싸움이라고 표현할 만한 일들이 많아서...
내가 더 궁금해서 기다려지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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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 수 있는 일...
답글
요즘은 집에서 한 끼만 먹는 일식님..
오로지 아침..
어떤 국이든 준비해 주는 일..
식후 커피 한 잔과 과일..
깨끗하게 다림질 된 셔츠..
한마디씩 거들어 주는 대답..
그러고 보니 별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전쟁에 나가는 남편에게..-
그레이스2008.09.18 07:27
요즘 우리집이 정말 그래요.- 아침 한끼.
평소엔 일주일에 하루,이틀만 근무하는 - 그래서 집에서 세끼 식사를 다 하는 정도인데...
워낙 일에 몰두하는 성격이라,
하룻밤사이 2 kg가 빠지기도 하고...
밤참을 먹어도 살로 안가요.
곁에서 먹는 시늉만 해도 나는 표가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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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2008.09.18 15:01
나도 다리올려놓는거 좋아하고 엉겨 붙는 타입인데,
숙면이 안된다고 하소연을 하셔서
작년부터 침대를 따로 사용중이에요.
다리 올려놓기,다리사이에 다리끼우기...
내가 생각해도 귀찮게하는거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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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2008.09.18 15:04
아들이 시험공부할때 아무것도 도와줄수없는 그 마음하고 똑같아요.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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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남편도 운전하면서도 졸릴때 회사 얘기 물어보면 잠을 확 깨면서 신나서 얘기하는 정도고
답글
저도 모르고 지나가면 답답해 하는 스탈이라 그게 일과인데
적당한 맞장구와 다른 사람 시야에서의 이견 제시..대화의 그 적정선이 어렵더라고요.
어느쪽으로 기울면 재미없어 하고 서운해해서..
언니야 이제 들어주는 내조자의 고수시겠죠?-
그레이스2008.09.18 21:39
그림전 초대를 받고 주연씨 생각했는데...
토요일 오후 6시 저녁식사를 포함한 작품감상 파티.
나야 뭐~참석이나 하는거지.
안목도 없고,작품을 살 의향도 없고...
주연씨 표현이 맞아요~ 적정선 유지...
요정마담 역활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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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진진한 전쟁 이야기이겠는데요...
답글
물론...
당사자는 힘 드시겠지만두요...^^;;
몇십년이 지나 그런곳에서 또 만나다니...
반갑지만은 않은 인연일려나?-
그레이스2008.09.19 20:04
사십대였으니 혈기왕성하던 때.
기술책임 중역인 시절이었지요.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일하다보니까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다시만나는 일이 종종 생기기도하지요.
좋은 인연으로 혹은 껄끄러운 인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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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 of Troy2008.09.19 18:11 신고
님의 든든하 내조덕에
답글
남편분이 씩씩하게 전쟁터에 나가서
개선을 하고 오시나 봅니다.
제가 예전에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소송까지 간 여러 프로젝트일들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여전사처럼 무장을 단단히 하고
출근할 기억이 있어서
남편분의 기분을 잘 이해할 것 같아요.
그당시 제 남편은 박사 논문 쓴다고
저보다 저 신경이 날카로와서
제가 오히려 남편의 눈치보면서 지냈는데
저도 누가 외조만 잘해주길
많이 기대했겄만....-
그레이스2008.09.19 20:21
자랑을 쬐끔 공개하자면 그 분야 최고라는 기술상을 받았던 적도 있어요~^^
덕분에 이 나이에도 진두지휘를 할수있는 권한을 맡기지않았을까요?
대기업에 있을때 국제입찰에 나갈때마다
기술팀(베테랑 부장 5~10명씩)꾸려서 영업팀과 동행으로 전쟁에 나선다고 했더랬어요.
국제재판으로 가면 2~3년 걸리기 때문에 왠만하면 그렇게 가지않게 중재를 잘~ 해야죠.
이해가 엇갈리는 당사자가 여럿이어서...
또 진행방향을 정하기도 쉽지않아서...
어제,오늘의 스토리를 들어봐야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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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님과 남편 분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답글
저희집은 그레이스님 댁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예요.
무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고
현관문을 들어 서는 순간 무장 해제를 하고 맘껏 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 ,,,
제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것 ,,,
그래도 고마워하는 남편을 보면서 전 더 감사하게 되고 ,,,
서로에 대한 작은 배려들이 결국은 부부의 깊은 신뢰가 되는 것 같아요.
보통 남편들 회사일 집에 와서 잘 안한다고 하는데
저희 남편도 집에 오면 친구에게 하는 제게 얘기 잘 해주거든요.
그래서 이젠 남편의 전화 말투, 표정만 봐도 지금 회사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짐작을 할 수도 있답니다.
오늘도 빠리 출장 중인데
미팅 마치고 잠시 쉬는 중에 전화 했더라구요.
남편에게 영양제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제게 참으로 커다란 행복이랍니다.
그레이스님을 보면서 저도 나이가 들어
그레이스님처럼 현명하게 살 수 있게 되길 기원하면서 ,,, 하루 하루 더 노력하며 살려고 합니다 ^0^-
그레이스2008.09.25 11:16
아직도 진행중...
이번주말까지 방향이 정해질듯??
남자들은 좀 특이한 존재인가봐?
어려운 일을 맡을수록 열정이 불타오르는...
두시간만 잠잤던 날도 피곤도 잊어버리고 몰입해서
나를 걱정에 빠지게 만들고 그러네요.
수진씨도, 주연씨도, 혜숙씨도, 나도...
남편의 신뢰를 받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여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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