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할머니와 첫 손자.
내가 결혼하기 전이었으니, 1974년 봄이나 1973년이었겠다.
그즈음에 마산집에는,
여호와의 증인 교인들이 두세 명씩 함께 다니면서 파수꾼이라는 책을 나눠주며 전도를 했었다.
할머니에게 날마다 찾아오는 부인들이 있었는데, 친절하고 다정했다고 들었다.
그냥 놀러 오는 건 좋은데, 종교를 가질 마음은 없다고 딱 자르면서,
나는 내가 잘 살았으면 천당 가고 잘못 살았으면 지옥 가겠다고,
종교 없이 당신께서 살아온 것으로 평가받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내가 잘못 살았으면 지옥 가야지, 잘못 살아놓고 지옥 안 가겠다는 건 무슨 심보냐고 하시면서.
나중에 나 혼자 있을 때 하시는 말씀이,
나는 저승 가면 꼭 만날 사람이 있어서 이대로 살아야지 종교를 바꾸면 안 된다고 하셨다.
죽어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
첫 손자 동찬이.
(첫돌 지나고 엄마는 둘째를 임신해서 할머니께서 데려다 키웠다.)
마산병원에 갔으나(디프테리아 걸린 아이를 치료약이 없어서) 아이는 죽어서 산에 묻고,
아이를 업고 갔던 포대기는 집에 가져간 이유가,
손자의 체취가 베인 물건이라서 가져가셨단다.
한 달 두 달 지나도 안정이 안되고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맘에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내 목숨 대가로 하루만 같이 살게 해 주면 단 하루만 같이 있다가 죽겠습니다.
간절히 애원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가슴속에 품고 있는 첫사랑 같은 아이를, 저승에 가서 보고 싶은데,
내가 예수교를 믿어서 죽어서 다른데 가면 동찬이를 못 만나게 된다고,
동찬이 말고는 천당도 극락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돌아가실 즈음,
교회에 열심이었던 연이도 기독교를 권했을 텐데, 같은 이유로 거절했을 것 같다.
할머니 돌아가신 날이 수능 이틀 전이어서,
전화를 받고 마산 내려갔다가 다음날 서울로 올라왔다.
상여가 나가는 날이 세훈이 수능날이었다.
아침에 아이를 시험 보는 학교 앞에 내려주고, 나는 능인선원(강남에 있는 절)에 갔다.
할머니를 위한 기도와 세훈이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절을 시작했는데,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오백번이 넘어가니 다리의 감각이 없어지는 듯했으나 쓰러지더라도 천배를 하고 싶었다.
마치고 나니,
걸음을 걸을 수 없어서 겨우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왔었다.
삼오날 산소에 가느라 마산 다녀왔더니,
그 사이 세훈이가 기흉이 터져서,
내가 서울 도착했을 때는 숨쉬기가 어려운 정도가 되어 한밤중에 응급실로 갔었다.
영국 출장 중인 남편에게 연락해 달라고 긴급으로 회사에 전화도 했었고.
할머니 가신지 49일 되는 날.
마지막 선물을 해드리고 싶어서 절에서 49제 제사를 지냈다.
금액이 꽤 비쌌으나 그렇게라도 해야, 할매가 동찬이 오빠를 만날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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