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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형제자매들.

귀락당 췌언 - 8.

by 그레이스 ~ 2017. 11. 2.

 


8.나의 멘토 할머니.


할머니는 시장에서 물건 살 때,

지나치게 물건값을 깎거나 덤을 더달라고 빼앗아 오는 것을 무척 싫어하셨다.

내가 열 몇살이었으니 50년 전 그때는 정찰가라는 게 없었고,흥정으로 물건을 사던 시절이다.


난전에서 채소,과일을 살 때 조금 더달라고 떼쓰는 일이 없으셨는데,

짐꾼으로 따라 간 나에게,난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야박하게 굴지마라고,

장사도 남아야 먹고살게 아니냐,억지로 뺏어오는 건 

저 사람들 이문에서 니가 빼앗는 게 된다고,

장사는 파장시간이 되고 어두워지면 밑지고 파는 수도 있는데... 그냥 하나 덜 먹으면 되지.

남을 서운하게 하고 가져온 그만큼,

하나 더 먹어서 이득이 아니라 나중에 니 재물에서 나간다고 하셨다.

기분좋게 주는 덤만 받아야 한다고.


그게 내 마음에 꼭 박혀서

콩나물 30원어치 살 때도(가계부에 75년도 콩나물값이 30원으로 적혀있다),

사과 한무더기를 살 때도,야채 한단을 절반으로 나눠서 살 때도 더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노력했으나,부끄러움으로 남아있는,

야박한 내 행동에 대한 오래된 기억 하나가 있다.

74년도에 결혼했고,75년도 가을이었을 게다.

그때는 과일장수가 하루에 한번 리어카에 과일을 싣고 사택안에 들어와 팔았었다.

이웃들이 줄줄이 나가서 사과 한봉지씩 사서는,그 자리에서 수다가 이어졌는데,

점점 이야기에 빠져서  다들 자리잡고 앉았다.

그 게 마침 우리집 앞이어서 나는 이야기 내용보다,

우리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해야하나~

차 한잔을 대접하고, 지금 산 사과를 깎아서 내야하나~ 갈등하느라 머리가 복잡했다.


월급의 반을 시어머니께 보내던 시절이어서,

한달에 한번 사과를 사는 것도 벅찰 정도로 우리집은 가난했는데,

내가 아무런 내색을 안했기에 이웃에서는 우리집 사정이 그정도인줄 아무도 몰랐다. 

사과 다섯알 든 봉지를 들고 손에 땀이 날 지경이었는데,

나보다 두살 많은 한 부인이 자기 사과를 먹자고 내놓았고,

내가 우리집에 들어가서 칼과 접시를 가져나와 깎아서 나눠주었다.

가난하다보니 이렇게도 치사해지는구나~  

그날 저녁,못난 내 행동에 눈물이 쏟아졌다.

앞으로는 밥을 굶는 지경이 되어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20년 쯤 후에 차대희씨 부인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냐고 웃었더랬다.

 

혼사를 앞두고,

엄마없이 결혼준비를 하는 손녀를 보는 할머니는,

오만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셨을테고...

엄마를 대신해서 덕담과 조언을 해주시기로 마음먹었는지,

니가 덕을 쌓아야 남편이 잘되고 자식이 잘된다고~ 선한 마음으로 순리대로 살아라고 당부하셨다.

덕을 쌓으려면 좋은 일을 해야 하는데...갓 결혼한 새댁이 무엇을 할 수가 있나?

기껏 대중목욕탕에 간 날 나이 많으신 분 등 밀어드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더라.

아침 일찍 일어나,

큰 대빗자루로 집옆 골목과 큰길을 쓸었다.

그러고나서 아침밥을 했다.

이른 아침이어서,어쩌다 출근하는 사람 한두명 지나가는 날도 있었는데,

일찍 출근하던 높은분이 눈여겨 보시고 추천을 하셔서,

사장님(그때는 정주영 사장님)의 표창장을 받는 일이 생겼고,

좀 더 열심히 사는 계기가 되었다.

 

봉사정신이 아니라,남편이 잘되고 앞으로 자식이 잘되게 해달라고...

지극히 사심에서 시작한 일인데,1년 2년 지나다보니,나도 모르게 마음까지 착해지더라.


그시절에는,

과일장수 야채장수 계란장수...

사택에 들어와서 물건을 파는 아줌마들에게 뜨거운 보리차나 커피도 권하고,

한여름에는 얼음물에 미숫가루도 타주고,배고프다 하면 남은 밥에 있는 반찬 챙겨주고...

할머니 처럼 살려고 노력했었다.

 

남에게 고맙다는 찬사를 듣는 그 공덕으로,

자식이 잘되고,손주들에게 좋은 운을 물려준다고 하신,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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