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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내 생일

by 그레이스 ~ 2019. 2. 13.

 

생일에 대한 추억들이 나만큼 화려한 사람도 드물 것 같다.

어린시절에는 아버지 생신 다음날 태어난 덕분에

생일상도 잡채랑 생선이랑 풍성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생일 전날 남자친구가 사 주는 케잌을 들고 집에 가는 아가씨였다.

남자가 호감을 가지게 만들어놓고

모른척 시치미를 떼는 타입이어서 남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단수의 내숭쟁이였네.

집에 들고 온 케잌은

(밤새 오줌누러 일어난 동생들이 크림으로 만들어 놓은 장미를 하나씩 먹어버려서)

다음날 아침에 보니,데코레이션이 다 없어지고 한쪽 귀퉁이가 없어진 모양이었다.

생일날에는 다른 남자친구에게 또 케잌을 받았었다

20대 초반의 화려했던 시절에.

 

결혼한 이후에는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고,내 생일을 강조했었다.

일곱살 여섯살 두 아들에게,

용돈 모아서 선물 사달라고 부탁해서 받기 시작한 생일선물을

초등학생,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받았으니

생일선물에 얽힌 여러가지 스토리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물과 에피소드도 있다.

 

남편은 한겨울에 장미를 사려고 두시간을 헤매고 다닌 사연도 있고, 

(1970년대에는 겨울에는 꽃이 귀했다)

덴마크 출장중에 생일축하 문구를 전보로 보낸 해도 있었다.

몇백만원 명품백도, 비싼 옷도 선물 받았었고,

회갑이었던 해는 두 아들에게 250만원씩 강제 할당을 해서 500만원을,

남편에게 500만원을 내라고 해서 천만원을 축하금으로 받았었다.

당연히 저축 안하고 그 돈을 다 썼지.

하고싶은 거 다 하고 살아서인지 이제는 원하는 게 없네.

 

내일 내 생일을 앞두고,

오늘 호텔 제과점에 들러 빵을 사왔다.

호텔 회원들은 1월에 일년치 연회비를 낸다.

연회비를 내면 사은품으로 티켓을 주는데 그 봉투를 어제 받았다.

사우나 수영장 씨메르 이용권 5장

호텔 뷔페 식사권 2장

베이커리 5만원 이용권 2장.

 

베이커리 이용권 한장으로 한꺼번에 5만원어치를 다 사야 된단다.

치즈케잌이나 생크림케잌을 살까~ 하다가,

오래 먹을 수 있는 파운드케잌과 롤케익을 하고,

남은 6000원을 쓸려고 빵 두개를 넣었다.

 

 

 

 

 

 

 

 

요가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집에 와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밥반공기 얼른 먹고,

커피와 부드러운 빵 하나를 꺼냈다.

 

내일 아침에 파운드케잌에 촛불을 켜야겠다.

내년에는 칠순이니 서울 가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에게

제대로 축하를 받아야지.

 

  • 2019.02.13 18:16 신고

    생신 축하드립니다~
    전 기념일을 잘 챙기지옷해서 작년부터 강제징수를
    하기시작했어요 ㅎㅎ
    대학생 아들에겐 작은 화장품, 남편에겐 평생 처음 비싼가방 사고 선물고맙다고 통보했지요~근데 그 선물 1년동안 바깥바람을 한번 쐬었어요
    전 편한게 좋더라구요~
    내일 행복한 생일 되세요~^^

    • 그레이스2019.02.13 19:53

      고맙습니다~ 꿈님.
      나는 아예 처음부터
      엄마생일에 선물을 사라고 한달 전부터 이야기를 했어요.
      아들이 일곱살 때 처음으로 받은 물건은
      2파운드(약 2400원)를 준비했다면서 선물을 사겠다고 백화점에 데려다 달라고 합디다.
      속으로는 우스웠지만,백화점에 데려다 줬지요.
      처음에는 보석코너로 갑디다.
      판매원에게 목걸이 브롯치 반지 가격을 물어보더니 안되겠다고 나와서
      옷 매장으로 가자고 해요.
      나는 아무말도 안하고 아이들이 하자는데로 다른 층으로 갑니다.
      옷 매장에서 팬티 하나도 살 수가 없다는 걸 알고 낙심하길래,
      그때서야
      6층의 잡화코너로 가자고 아이들을 달래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향기가 좋은 장미모양의 비누로 결정했어요.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렸는지요.
      집에 와서 아이들이 가지고 있다가 생일날 받았는데,
      그 비누를 도저히 쓸 수가 없어서 거의 10년을 화장대위에 장식품으로 올려놨더랬어요.

  • 2019.02.13 20:25 신고

    엄마 화장대에 놓인 직접 고른 선물을 볼때마다
    뿌듯했을것 같아요~
    늘 생일에 가족끼리 식사만해서 그런 추억이 깃든 선물이 없네요 ㅠㅠ
    이제부터라도 노력해야겠어요~^^

    • 그레이스2019.02.13 20:41

      작은애 여덟살 큰애 아홉살때는,
      한국으로 와서 울산 살때인데,
      둘이서 돈을 반반 부담해서
      현대중공업 회사 맞은편 쇼핑몰에서 아모레 화장품 립스틱을 샀습디다.
      판매원 아가씨에게 엄마의 모습과 성격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색깔을 추천 받아서 사고는 만약에 마음에 안들면 바꿔주기로 했다면서 교환권도 주더군요.
      그때의 선물도 오래 간직했어요.

  • 신순옥2019.02.15 12:57 신고

    그레이스님께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받아내시는 화통한 행동들에 감탄합니다. 특히 회갑건은 압권입니다. 저축도 안하고 다 쓰셨다는 말에 제가 통쾌함을 느낍니다. 저는 님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제가 생각해도 답답한 유형이거든요. 그렇게 당당하게 요구하실때는 상대에게 더 많이 주시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그레이스2019.02.15 14:34

      순옥씨 댓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생일선물은 결혼초부터 중요하게 생각했었네요.
      성장과정에서 좋은 대접을 받았다는 감정이 잠재적으로 있었어요.

      결혼후 첫생일에 아주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남편도 내 생일을 모르는척 넘기더라구요.
      친정할머니께서 생일상에 필요한 물품과 돈을 인편에 다 보내주셨어요.
      팥을 삶고 찰밥을 지어야 하는데,
      시어머니께서 그날따라 흰밥을 하라고 하셨어요.
      미역국도 못끓이고 찰밥도 없이 아침밥을 먹는데,눈물이 주루룩 흐릅디다.
      내가 우는 걸 보고서야 남편이 생일이구나 눈치를 챘고
      시어머니는 여자가 생일이 대수냐고 하시대요.
      아무말도 못하고 방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남편은 출근을 해서도 마음이 안편해서 점심시간에 집으로 와서 마음을 풀어줄려고 애썼고,
      저녁에는 매점에서 파는 작은 빵을 사와서 생일축하를 해줬어요.
      아마도 시어머니께서는 유난떤다고 뭐라고 하셨을텐데 그 기억은 안나네요.
      결혼후 첫생일을 그렇게 유난스럽게 보냈으니,
      다음해부터는 정신 빠짝 차리고 케잌과 장미꽃을 준비합니다.
      그 이후로 아이들 태어나서 여섯살 일곱살부터는 엄마생일에 그냥 지나는 거 아니라고 교육을 시켰고요.

      내가 남편에게 자식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싶은 마음에서
      계속 기억하라고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고 일주일 전부터 생일선물 달라고 했었나봐요.
      회갑때는,
      큰아들도, 작은아들도 결혼전이었고,또 충분히 능력이 되었어요.
      천만원 받아서 500짜리 명품백 하나 사고,아주 비싼 옷 사입었습니다.ㅎㅎ

      두 아들이 결혼을 하고나서는
      며느리에게 부담이 안될만큼 액수를 정해주고,생일선물을 사지말고 현금으로 달라고 했어요.
      명절 두번,어버니날, 아버지 어머니 생일
      일년에 다섯번 인사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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