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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

닮았다

by 그레이스 ~ 2019. 4. 4.

우리가 온 이후로

아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일곱시쯤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한시간 후에 다시 회사 갔다가

밤 12시 이후에(혹은 2~3시에)집에 온다.

그래서 마주 앉아서 여유롭게 이야기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밥먹는 옆에서 그날 있었던 일,

아이들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함께 웃는 정도이다.

밥을 먹고나면 윤호 유라와 잠시 놀아주고 아기 안고 눈맞추고 그러고는 나가니까

아빠는 왜 맨날 회사 가냐고...?

(하기사 아침에도 다녀오세요~ 인사하고, 저녁에도 다녀오세요~ 인사하니 아이들 시각에서는 이상하겠다)

 

며칠만에 어제 처음으로 12시가 되기전에 집에 왔더라.

며느리도 아이들도 아줌마도 모두 잠든 시간에,

큰아들과 남편과 나 셋이서 식탁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잠시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언급하고,

윤호와 유라의 성격에 대해서,

속깊음과 참을성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윤호가 잘못해서 아빠에게 혼날때 유라는 겁을 먹은 듯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유라가 혼날때 윤호는 옷방에 가두겠다는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린단다

 

아빠~~~유라가 이제 안그런대요~ 유라가 안하겠다고 했어요 하면서.

그런 걸 보믄 윤호가 더 여린 성격 같다고 하길래,

다른사람을 이해하고 보호하려는... 속깊은 정이라고 했다.

 

세훈이가 두 돌쯤 되었을 때,

세훈이는 집에 재워놓고 명훈이만 데리고

남편의 선배이면서 상관이었던 상무님댁에 잠시 들렀더니

사모님이 현관에서 그냥 가지말고 들어와서 차한잔만 하고 가라고 권하셔서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

명훈이에게는  m&m 새알초코렛을 손에 주셨다.

얼른 커피를 마시고 나오면서 명훈이 손을 잡으려고 보니,

아이 손에 초코렛이 녹아 있네

사모님이 명훈아 왜 초코렛 안먹었냐고 물었더니

집에 아가 줄려고...남겼단다.

나도 놀라고 사모님도 놀라고.

아이 손을 씻기고 사모님은 초코렛을  비닐봉지에 두봉지 담아주셨다.

하나는 명훈이 꺼 하나는 아가 꺼~하시면서

명훈이는 3월생이니 지금의 윤호보다 어린 만 3세 아이가 자기 안먹고 동생을 챙기다니~!!

그 때의 일을 큰아들에게 들려주면서,

몇가지 더 옛이야기를 했다.

 

엊그제 유라가 징징거리다가 옷에 오줌싸고 울었을 때

다 씻고 나오도록 엄마가 준 초코렛을 안먹고 기다린 사건과 비슷한...

 

아마도 휴일이었을텐데 식탁에 앉아 밥을 안먹고 징징거리는 세훈이를 달래다가 화가난 남편이

세훈이를 달랑 들어서 현관문 밖에 세워두고 문을  닫아버렸다.

아이는 죽겠다고 큰소리로 울고...

 

식탁에 와서 명훈이도 밥을 안먹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보더니,

너도 쫓겨날라고 그러냐고 야단치니까,

울먹울먹하며 아가가 쫓겨났는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을수가 있겠어 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명훈이의 그 말에 남편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얼른 밖에 가서 세훈이를 안고 오셨다.

 

역시 그 즈음의 다른 이야기.

만 3세즈음부터 레고 만들기를 무척 좋아했으나 아직 어려서 손이 정확하지 않아서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끼워달라 다시 분리 시켜달라 수시로 달려왔다.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가 편하게 커피 마시는 여유가 어디 있겠냐?

 

일하다가, 씽크대 앞에서 세탁기 옆에서 마셨는데,

그 즈음에 명훈이에게 부탁을 했었다.

엄마가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때는 부엌에 들어오지 말고 부엌 앞에서 기다리라고

커피 다 마시고 도와주겠다고.

알았다고 하더니,

엄마~~~ 레고 끼워줘~하며 작은방에서 달려오다가

커피 마시는 나를 보더니,

앗~ 커피 마시네~ 기다릴게~~ 하고는,

부엌과 거실 경계선에 두 발을 가지런히... 운동선수가 출발전에 신호 기다리는 포즈로 서 있었다

어젯밤에 그 포즈를 흉내내어 보였더니 아들이 웃는다.

윤호가 어릴때의 너랑 똑같다.

 

런던 지사 발령 받기 1년 전. 

사택에 구비된 조립침대 말고 처음으로 브랜드의 침대를 샀었다.

(런던으로 떠나면서 1년밖에 안 쓴 침대가 아까워서 창고에 보관 부탁하고 갔는데

3년후에 와서 보니 곰팡이 냄새가 나서 쓸수가 없었다 )

스프링이 좋아서 침대에서 굴리면 반동으로 튕기는 재미에

하지말라고 주의를 줬는데도,

내가 방에 없는 사이에 세게 굴려서 아이가 붕~ 떠서 화장대 모서리에 떨어져

입술안쪽과 잇몸을 13바늘 꿰맸다

 

얼굴 한쪽이 퉁퉁 부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스트로우로 우유를 마시는 지경인데

아파서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울지를 않더라.

내가 잘못해서 다쳤으니까 소리내서 울 수가 없다고 하네

괜찮다고 울어도 된다고...

아프면 누구나 우는 거라고, 어른도 소리내서 운다고...

아이도 나도 울었다.

 

아들이 기억 못하는(들어서 어렴풋이 아는) 옛 일들을 풀어내다보니,

닮는다는 건

교육이 아니라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고,

그 게 어떻게 시켜서 되겠냐고 했다.

 

 

 

  • 하늘2019.04.04 18:21 신고

    윤호나 그아빠 이야기를 들으면
    맘이 애틋해져요
    그 섬세함과 배려함은 아무나 갖기 힘든 거거든요
    주위 사람들이 축복 받은거지요 ㅎ

    저희 집은 막내가 그 경향이 많아요
    그래서 그러죠. 애들이 다 저애 같기만 하면 내 세상 살이가 얼마나 편할까.. 라고요. ㅎ

    답글
    • 그레이스2019.04.04 21:41

      입주 이모님이 그래요.
      일하는 아줌마들에게 공손하고 밥차려주는 것도 감사하다 인사해서
      월급주는 사람에게 어찌 저렇게 잘하는지 놀랍다고 합디다.
      아들을 훌륭하게 잘 키우셨다고... 이나이에 인사를 들었습니다.

      연년생 아들을 키웠는데 형제간에 싸움없이 컸어요
      어른이 되어서 서로 말하기를,
      형은 자기가 많이 참아서 안싸웠다 하고,
      동생은 좋은 것은 항상 형에게 양보하고 대드는 건 생각도 안했다고 합디다.

  • 달진맘2019.04.04 20:27 신고

    대물림
    유전자가 있다구 믿어요
    아드님 유전자를 손주들이
    물려 받은거지요
    반듯한 인성 가정교육
    유전자 가합쳐서 사람이 키워져 간다고
    믿습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9.04.04 21:51

      쌍둥이인데 손자 손녀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어느 편이 더 좋다는 뜻이 아니라 기질이 달라요.
      손녀는 상황판단이 빠르고 애교 많고,
      두가지 중에 (안면몰수하고)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합니다.
      손자는 손해가 되더라도(과자를 못먹더라도) 의리를 지키는 쪽을 택하더라구요.
      앞으로
      유라는 참을성을 가르쳐야겠고,
      윤호는 융통성을 가르쳐야 되겠어요.

  • 키미2019.04.05 11:43 신고

    자기가 잘못해서 울면 안된다고 했다니...순간 울컥했네요.
    아드님의 심성을 윤호가 딱 닮았습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9.04.05 12:13

      자기가 잘못해서 다쳤으니
      아파도 울면 안된다고 합디다
      이렇게나 어린애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하나 싶고
      어찌나 속이 아리던지...
      사택사람들이
      명훈이가 지나치게 똑똑해서 겁난다는 말도 했어요
      사람들이 놀랄만한 일들이
      밖에서도 다른집에서도 여러가지 있었어요

      앞으로 윤호가 한살씩 나이 먹을 때마다
      명훈이의 여섯살 일곱살 에피소드가 줄줄이
      생각나면서 비교 될 것 같습니다

      한국나이로 여섯살에 영국으로 가서
      낯선 나라 낯선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더 빨리 큰애가 됩디다
      영국의 신사교육이
      안성맞춤으로 명훈이에게 잘 맞아서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 christine2019.04.05 12:29 신고

    될성싶은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아빠의 좋은 심성을 고대로물려받았네용~

    앞으로도 쭈욱 아빠모습되로 자라길바랍니당~

    • christine2019.04.05 15:06 신고
      Wawoo!! 방학이 12월중순쯤 했던것같은데
    • 방학숙제를 12월에 다 했다는건 성실함에 있어선 논할필요가 읍네용~ 

      본문 맨 마지막글에 100%동의함당~
    • 기본성격과 기질은 교육이 아니고 타고나는것같아용 전 엄마가 저희자랄때 공부하라는 소리 함도 못들었어용
    • 온니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잘했고 전 온니들과는 달랐지만 그걸 억지로 바꾸라고 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으셨고 태어나기를 저래 태어났는데 우짤끼냐고??? 이말만 수없이 들었네용~ 전 지금도 집안일을 몰아서 합니당^^ ㅎㅎ
      •  
    • 그레이스2019.04.05 15:43

      방학숙제를 12월 말까지 다 해놓고
      1월부터는 지가 정해놓은 계획표대로
      다음 학년 예습과 책읽기를 하고,
      주말에는 아버지와 실내수영장 가거나 경주 가는 게 대부분이었어.
      남편은 한꺼번에 몰아서 공부하는 타입이라고 하셨는데,
      명훈이는 외할아버지(친정 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
      그런 형 때문에 세훈이가 마음껏 놀지도 못하고 따라 하느라 고생이 많았지.

      원래 어느집이나 막내에게는 후하시더라
      집집마다 다 그런 것 같아.
      공부만이 아니라 생활도 용돈도 다 느슨하게 봐 주시더라구.
      우리 동생도 시동생도... 다 그래.

  • style esther2019.04.05 21:55 신고

    아직 그레이스님네를 잘 몰라서..
    그냥 그렇구나 참 뭔가 푸근하다. 좋디...하면서 읽었습니다.

    저는 가끔 제 아이들에게서
    뜻밖의 성질(저를 닮은..)을 발견하고 느낌이 팍 올때가 있어요.
    내딸이지, 내 유전자..ㅎㅎ

    답글
    • 그레이스2019.04.06 07:04

      큰아들이 성장과정에서 쭉 특별했는데,
      손자에게서 같은 점을 발견하고 놀라는 중입니다.
      앞으로 뛰어난 재능도 아빠 닮기를 기대 하면서요.

  • 여름하늘2019.04.06 10:28 신고

    윤호가 참으로 마음 씀씀이가 의젓하네요
    커서도 유라에게 든든한 오빠노릇을 잘 할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어느새 아이들이 이만큼이나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답글
    • 그레이스2019.04.06 11:22

      오늘은 토요일 어린이집 안가는 날이라서
      10시에 아이들 데리고
      동네에 있는 경희궁 바로 뒤 운동장과
      어린이 숲 놀이터 다녀왔어요
      11시에 왔으니 한시간 걸렸네요
      두 아이가 서로 1등으로 앞에 서겠다고 하길래
      윤호 귀에 살짝
      유라가 징징거리고 울텐데 어떡하지? 했더니
      그러면 일등 안해도 된다고
      유라가 앞에 가게 두라고 하대요
      지 생각에 중요하지 않다 싶으면 쉽게 양보합디다
      꼭 하고싶을 때는 절대로 양보 안하지만요

  • 파란무지개2019.04.06 11:03 신고

    한번씩 찾아보는 블로그입니다 그레이스님 가족들이 참 부럽습니다 저렇게 화목하고 손자 손녀들이 잘 성장하는 밑거름은 그레이스님의 며느리와 자식에 대한 배려와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그럴겁니다 한번씩 삶의 지혜를 배워갑니다

    답글
    • 그레이스2019.04.06 11:30

      파란무지개님~^^
      댓글 남겨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앞으로 자주 글 남겨주셔요
      좋은 인연이 되기를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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