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을 입고,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는 중에,
평소에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회원 한분이,
옆에 앉았다가 조금 전에 나간 다른 회원 이야기를 한다.
손자 사진을 보여주고, 흠뻑 빠져 있더라면서.
나: 첫 손주라면 그 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첫 데이트를 시작한 남자에게 마음이 빼앗겨서,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그 설레는 마음과 비슷하잖아요.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러니 손자 사진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고요.
회원님:
손주에게 정 줘봤자 다 부질없는 헛짓이에요.
나중에 배신당해서 상처만 받는다구요
그러니 당신도 너무 정 쏟지 말고 적당히 하세요~
(듣고 있으려니 열이 오른다)
아예 정색을 하고, 조목조목 반박하고 보충설명을 했다.
지난번에 유라가 할아버지께 했던 말을 소개하면서,
아기 낳고 조리원에 가 있는 며느리 대신,
잠들기 전에 책 읽어주고 옛날이야기해주다가,
졸음이 온 손녀가
하비 자고 싶어 안아줘~ 하고는,
할아버지 품에 안기더니,
"나중에 하비가 작아지면 내가 하비 꼭 안아줄게" 하더라.
(나이가 더 많아지면 허리가 고부라져서 작아진다고 낮에 말해줬더니 그게 생각 난 모양이더라고 설명했다)
세 살 반밖에 안된 어린 손녀가 "나중에 내가 커지면 할아버지를 안아주게~" 하는
그 예쁜 심성을 생각해봐라.
우리가 손녀에게 준 사랑의 대가를 이미 다 받은 거다.
만날 때마다 감동받고, 재롱을 보면서 즐겁고 흐뭇하고...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손자 손녀가
학교에 다니게 되면 아이가 변한다고 쌀쌀맞아지더라는 말씀을 하시네.
그 건 배신이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성장과정 아니냐?
유치원 가고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가 생기니, 관심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가는 거 아니냐
할머니보다 친구가 더 좋아야 정상이고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다.
흐뭇한 마음으로
아이의 정신세계가 자라는 걸 축하해줘야 한다.
그 걸 손자에게 배신당했다고 하시면 되느냐?
지금은, 연인처럼 보고 싶은 손주이지만
나는 그런 시기가 오면 기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이야기 마무리에,
그 회원님도 수긍을 하고 동의하셨다.(그분은 손자가 중학생이다)
아기가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맞춰서,
엄마도 똑같은 속도로 아들을 놓지 않으면,
아들 결혼시킨 후에 실연을 한 듯한 상실감과 배신감을 느낀다는 하소연을 하더라.
결혼 후에 아들이 변했다고 원망하고...
아들의 입장에서는 사랑이 자연스럽게 아내에게로 옮겨 간 것이고,
그다음에는 태어나는 아기에게로 옮겨가는 게 정상 아니냐고.
(시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예의도 모르고 눈치 없는 아들이 있기는 하더라.)
자식이 스무 살이 되면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접해주고 내 품에서 떠나보내는 연습을 시작하듯이,
손자 손녀가 학교에 입학하면,
할머니는,
그 아이의 사교생활이 먼저라고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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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항상 그레이스님 좋은글만 읽으면서 많이 배워가는일인입니다~ 오늘은 더욱더 그레이스님의 글귀하나하나가 감동스러워서 수년동안 글만 읽고 감사인사 못드렸는데... 학교 상담교사로 근무하다보니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한다고 자부하는데..저는 생각하지 못한부분까지 배워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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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2019.05.13 21:15
문정희님~
인사글 남겨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제 블로그 독자중에 학교선생님이 많습니다.
우연히 검색하다가 블로그 들어와서 다른 글도 읽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예전에는 교육에 관한 글을 자주 썼었어요.)
아마도 문정희님도 비슷한 경로로 오셨을 것 같군요.
도움이 된다고 해서 기쁘고 블로그 하는 보람을 느낍니다.
고마워요 정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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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e2019.05.14 13:30 신고
조부모와의관계는평소에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조부모를 어떻게 이야기해주느냐에 따라 달라질것같아용~ 집안분위기와 인성의 문제아닐까용?? 조부모들이야 어릴땐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긴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당연히 제갈길을 가야하고 잘 성장해주면 거기서 무한기쁨을 느끼시잖아용~
저희 친정아버지는 손주들 자주 못보고해도 대학생된 조카들 무지 대견해하시고 서로 관계도 좋아용~ 큰조카는 대학졸업반이라 저희들한테 쓸데없이 취업에관련된 스트레스 일절 주지말라고 하시더라구용
예전에 그레이스님 친정아버지께서도 명훈&세훈씨 자랄때 진짜 뿌듯해하셨을껏같아용~-
그레이스2019.05.14 14:31
윤정씨 의견에 100% 동의합니다
아이들 눈에 비치는 부모와 조부모의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친가쪽이라면
며느리와 시부모 사이가 서먹하면
할머니가 아무리 손주를 보고싶어 해도
잘해주는 잠시 그때뿐이고 멀어집디다
손자 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잊지 못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아이의 부모와 조부모의 원만한 관계가
큰 역활을 하기 때문이지요
명훈이가 영국에서 근무하고
세훈이가 의사가 된 이후에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자라는 모습을
쭉 지켜보시면서 많이 자랑스러워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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