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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코로나 바이러스와 옛 이야기.

by 그레이스 ~ 2020. 3. 3.

 

 

올해 학교에 가는 하영이는

입학식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맘이 유독 더 간절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유치원 졸업식도 부모 참석없이 아이들만 조용히 했고,

학원마다 다 문을 닫아서 2월 한달은 집에 갇혀 있다시피 보냈으니,

학교 가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겠나.

그제 통화할 때,

3월 9일 학교에 간다고 했는데,

어제 오후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개학일을 2주일 더 늦춘다는 뉴스가 나오네

하윤이도 하영이도 상심이 크겠다고...

아이 셋 데리고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생활을 2주일 더 해야 하니,

며느리는 또 얼마나 고생이겠냐고...남편에게 했더니, 

남편은,

요즘 온 나라가 소란스러운 상황을 보면서 옛생각이 많이 난단다.

 

 

 

전쟁이 나서 걸어서 피난 가던 그 해 다섯살이었다고,

어쩌다 군용트럭에 타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하셨으니

아이는 걷다가 다리가 아파도 버리고 간다고 할까봐 칭얼거릴 수도 없었고,

어두워지면 길에서도 자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먹은 날도 많았단다.

어린 아이가 배고픔을 참은 건 얼마나 큰 고통이겠냐고...

부산으로 피난 갔다가 1.4 후퇴때는 군함을 타고 제주도까지 갔었다.

1년 후에 다시 부산으로 나와서 판자집 방 한칸에서 생활하다가

3년만에 서울로 돌아가니 집은 폐허가 되어있더라는,

다섯살 여섯살 일곱살 때의 이야기다.

 

6학년 여름에는 뇌염이 창궐하여 9월까지 방학이 연장되어

강원도 시골에서 7월에 서울로 전학왔는데,

3개월을 집에서 쉬고 서울의 학교에는 10월에야 갔었다고 했다.

방 한칸에 한가족이 생활한 환경에서 얼마나 학교에 가고 싶었겠냐고...

여러번 들었던 이야기지만 잠자코 듣고 있었다.

 

요즘 젊은부모들은 어려움을 겪지 않은 세대라서

3개월을 아이들과 집에 있으면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겠지만

옛날에는 

하루 3끼 자식들 먹일 수만 있다면 

아무리 고생이 되어도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하셨단다.

 

    • 저는 고향이 진해에 가까운 창원이라서 부모님이 피난을 안가셨어요.
      전쟁 피해가 없었던 셈이지요.

      몇날 며칠을 걸어서 피난가던 사연에,
      공습을 피해 급하게 논두렁 밑으로 숨기도 했고,
      충청도에서는 마지막으로 강을 건너고 그 나룻배를 군인들이 폭파하는 아슬아슬한 일도 있었다고 합디다
      그러니 지금의 소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일이 지나면 잠잠해지고 이겨 낼꺼라고 합니다.

      사재기를 할 필요가 없는데,왜 그렇게나 불안해 할까요?
      나는 마스크를 한개도 안 샀어요.
      서울 병원에서 받은 것과 분당 요양병원에서 받은 거 10개 정도가 전부예요.
      이번에 남편이 감기를 심하게 해서
      병원 가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했더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서 기다리라고 하면서 마스크 5개를 줍디다.
      우리집에는 그 게 전부예요.
      다시 살 필요없이
      예전에 사 놨던 천으로 된 마스크가 여러개 있어서 소독하고 세탁해서 씁니다.
      손소독제 대신에 비누로 씻고요.

      손님이 없으니 영업을 하는 가게는 불안하고 걱정이 많겠지만,
      차분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어쩌겠어요?

  • 여름하늘2020.03.04 11:00 신고

    전쟁세대이시니 그당시가 생생하게
    생생한 피난이야기를 여기서 들어보네요
    마치 영화이야기를 듣는 기분입니다
    어려운 시대를 겪으셨으니
    정말 요즘일은 어려울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실것 같습니다

    답글
    • 그레이스2020.03.04 12:54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돈을 넉넉하게 주고 화물차 주인가족과 함께 떠났는데,
      며칠 지나서는 화물차에 사정이 생겨서
      최소한의 짐으로 줄여서 걷다가,지나가는 군용트럭에 타기도 하고,
      부산 도착하기까지 별별 일을 다 겪었더라구요.
      엄마가 업고 가던 세살짜리 여동생은 도중에 병이 나서 죽었다 하고요.
      열이 펄펄 나는 아기를 안고
      엄마는 우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칠십년 넘게 살아오면서,
      죽음의 문턱에서 아슬하게 비켜 간 경험이 몇 번 있어서,
      정말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하는 정도의 위기가 아니라면 걱정을 안합니다.
      어느 정도 피해를 각오하고 담담하게 대처하자고...우리는 그렇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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