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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남편과 대화

by 그레이스 ~ 2020. 3. 30.

 

 

신혼시절부터 오랜 습관이라서 이제는 고쳐 볼 수도 없겠다.

아주 속상하거나 억울한 일이 있어도 대놓고 따지거나 화를 내지 않고

일단 내 감정을 속으로 삭힌 후에 말을 하는 방법으로 살아 왔기에,

내가 화가 난 상태로 2~3일 지나는 것을,

남편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다.

잘못한 사람이 더 큰소리로 크게 화를 낸다.

 

옛날에는 남편이 큰소리로 성질 팍팍 부리면,

나까지 큰소리 내면 싸움이 되겠다 싶어서 감정을 죽이고 고분고분 비위를 맞췄다.

4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왔으나,

이제는 그렇게 나를 죽이면서 사는 게 참 싫다.

그게 아니라고 당신이 틀렸다고 대꾸를 하게 된다.

 

 

지난 금요일,

온수난방용 배관이 터진 부분을 찾아 내어

새로 이어서 시멘트 작업을 한 것이 아래 사진이다.

오전 8시 전에 작업자들이 와서 12시가 되기 전에 타일 작업을 끝내고 갔다.

 

신차 구입 비용을 송금하기 위해서 은행에 가는 게 급선무라서

더러워진 안방과 거실 청소는 미루어 놓고 은행에 먼저 다녀왔다.

 

무척 속이 상해서 심사가 뒤틀려 있었지만

우선 청소부터 해야 하니까,

진공소제기를 사용하면 먼지가 더 날릴 것 같아서 빗자루로 쓸어내고

스팀청소기로 닦으려고 하는데,

왜 그것부터 하냐고 큰소리로 야단이시다.

 

허리 아픈사람이 그 걸 왜 하냐는 염려가 섞인 꾸중인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인부들이 신발을 신고 다녔으니

펄펄 날린 시멘트가루에 발자국이 무수히 찍혀서 

거실이 아니라 공사장 바닥 같은데

그 먼지를 남편과 내가 부엌으로 이층으로 밟아 나르게 생겼는데 어떻게 보고 있겠나?  

자기가 당장 해줄게 아니라면 간섭도 하지 말아야지

나중에 내가 다 할테니까 그냥 두라고 말만 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잔소리 들으면서 기어이 거실을 다 닦았다.

 

저녁 늦은 시간에,

맥주를 한잔씩 마시면서 조용히 얘기했다.

내가 잘못한 게 있더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당신 화를 내면 안된다고

원치않는 계약을 하고,

은행 가서 차값을 송금 하고 왔는데 내가 얼마나 속이 상하겠냐?

그 걸 안다면, 당신이 그렇게나 화를 내면 안된다.

나는 싸우는 성격이 아니니까, 그냥 참을 수 밖에 없는데

그냥 견뎌 내는 게 이제는 너무 지치고 버겁다.

그래서 세상을 그만 살고싶은 마음이 순간적으로 생기더라

 

내 인생을 되돌아 보면,

지금까지 충분히 만족스럽게 잘 살아왔고,

해보고싶은 거 다 해봤고,가고싶은 곳 다 가봤다.

자식들은 내가 기대한 이상으로 잘 되어 있으니 더 바라는 것도 미련도 없다.

나이 칠십이면 아쉽지 않을 만큼 살았다.

지금 내 상태가

몸이 아픈 걸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도 지치는데

남편 성질까지 받아주는 건

내가 감당할 범위를 넘은 것 같다.

 

그러니,잘 들어라.

나는 맞서서 싸우지도 않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자살할 거다.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 데이지2020.03.30 18:23 신고

    존경하는 그레이스님! 오죽 속상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나셨겠어요! 우리집도 비슷하기에 그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잘 압니다.
    어떤 때는 머리를 한 대 쥐어패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남편 한 명씩 집집마다 마크해 줘서 사회가 이만큼이지 남편들 다 놓아버리면 세상은 정말 난장판이 되고 말 거예요.

    답글
    • 그레이스2020.03.30 20:52

      저는 예절과 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집안에서 자랐어요.
      결혼하고 보니까 남편은 고등학생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그런 부분에서는 좀 부족한 듯이 보입디다.
      그당시 나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남편에게 모범을 보여야 겠다, 그런 결심을 했어요.
      말하기 전에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말 할지 먼저 생각해보고 말하니까 실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수십년을 살았더니,
      나혼자 너그럽고 교양있는 여자인 척 되어버렸습니다.
      남편은 평소에는 자상하고 헌신적인 사람인데,
      고집이 나오면 막무가내이고
      뜻대로 안되면 있는대로 성질을 부려서 나를 힘들게 하네요.
      그래놓고 마음은 여려서 지금 내 눈치를 봅니다.

  • 달진맘2020.03.30 21:17 신고

    많이 속상하시네요
    결연한 모습에 하윤이 조부께서
    굳어 지실만하시네요

    왜 그러셨을지
    분명 아내 소유의차면
    아내의뜻을 존중해주섰서야 하는데
    왜그러섰을지

    • 그레이스2020.03.30 22:22

      자동차를 남편 맘대로 결정했다는 것 하나만이 아니예요.
      내가 화를 내야 할 일에 자기가 나한테 화를 냈다는 게 더 큰 문제였어요.
      남편 뜻대로 차를 결정했으면,
      내가 짜증을 냈더라도 받아줬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누구라도 투덜대거나 짜증을 낼 수도 있는 거니까요.
      남편이 미안해 했으면
      나도 이미 끝난 일이니까 괜찮다고 했을텐데요.

  • 여름하늘2020.03.30 22:39 신고

    그레이스님
    아직 몸도 아프시니 잘 쉬셔야하는데
    건강한 사람도 집공사 한번 벌려놓으면 생몸살이 나는데...
    마음편하게 잘 쉬셔야하는데 하며
    걱정스러웠는데요
    마음도 이렇게 아프셔서 어떻게 하지요
    이젠 기분이 좀 풀리셨는지요
    정말 기분 많이 상하셨을것 같습니다

    답글
    • 그레이스2020.03.30 23:21

      안방 거실 식당이 엉망으로 더럽혀져서
      치워야 할 일이 막막하고 한숨이 나옵디다
      그래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남편과 내가 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힘들게 청소를 하는데
      야단을 치고 잔소리를 하니...
      감정이 격해져서 아 살기싫다 싶더라구요
      내성격은 어린 사람에게도 예의를 지킵니다
      또한 남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원해요
      마찬가지로 남편도 나를 존중해주기를 바라고요
      자동차보다 그때문에 화났다고
      분명하게 말했어요
      남편은 어제도 오늘도 내 기분을 살피는 듯
      잘하려고 노력 합니다
      나는 마음이 상했던 건 다 풀어져서
      남편과 이야기도 잘 하는데
      기분은 좀 쳐져 있어요

  • 생강차2020.03.31 08:20 신고

    많이 힘드시지요?
    몸도 불편한데 남편분까지 그러시니 울고 싶으시겠어요.
    주위에서 보면 남자도 나이가 들면 노년기우울증인지
    소리를 지르고 공격적으로 되더군요.
    남자들은 우울함을 공격성으로 표현한다고 해요.
    하긴 아저씨도 아내가 몸이 안좋으니 속으로 울적하실거예요.
    나이가 들면 감정의 폭이 커져서 젊어서 3정도로 화가 나는 것을
    노인은 8,9로 된다고 하더군요.
    노인의 자살율이 높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요.
    작년에 같이 수영하던 할머니가 딸과 싸우고 나서 자살했어요.


    답글
    • 그레이스2020.03.31 08:55

      나이가 많아지면 감정 절제력이 떨어지는 건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요.
      성격적으로 얼마나 잘 참아내느냐 차이 겠지요.
      우리 남편을 봐도
      70세 가까워 지면서 쉽게 화를 내고 목소리가 커 져서 당황할 때가 자주 있었어요.
      노년기 우울증 맞아요.
      이제 75세이니...

      자기 잘못이나 단점을 지적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칠 마음이 전혀 없으니 지적해서 서로 기분 나빠지지 말자고요.
      나 역시 남편이 보기에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실 꺼예요.
      사십년을 남편에게 맞춰 살 던 여자가
      남편에게 잔소리하고 잘못했다고 지적을 하니까요.
      세면대 수도꼭지를 꽉 안잠그는 버릇 처럼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지적 당하는 게 싫은 거예요.

      이렇게 말다툼이 있고나면 꽤 오랫동안 서로 상대방 배려하고 조심합니다.
      아마도 한달은 평온할 거에요.

  • 키미2020.03.31 12:43 신고

    평소면 그냥 참으셨죠. 그레이스님 성격에..
    몸이 안 좋은데다, 청소하는 분 팔 부러져서 못 온다지..발자국은 보이지..먼지는 산더미지..
    부군은 그냥 놔둬라면서 은행 가셨지...다녀오면 그것부터 해야하는데, 또 무신경이지..
    사고 이후로 컨디션이 안 좋으시니..참는 정도도 한계에 다다르셨죠.

    답글
    • 그레이스2020.03.31 13:27

      아줌마가 팔꿈치를 다쳐서 한달 지나도 못온다고
      다른 사람을 구하라면서 어제 전화왔어요
      일도 잘하고 성격이 좋았는데요
      낯선 사람 또 알아보려 하니 ...심란합니다

      금요일 오후에 남편과 같이 은행 다녀왔어요
      내 명의의 통장이라서요
      자동차가 내 명의이니까 보상금도 내 계좌로 왔어요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데
      서둘러 일을 하는 나를 보고 짜증이 났겠지요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자기가 심했다거나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사과를 하지않고 오히려 화를 냅디다
      여동생이 그래요
      미안해서 어찌할바를 모르겠는 상황에는
      지가 더 성질을 내고 화풀이를 하더라구요
      나중에 대관절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미안하다는 말은 목구멍에 걸려서 안나오고
      상황은 못견디게 불편할 때 화가 난다고 하더군요
      남편도 여동생 비슷해서
      잘못하고도 미안하다는 말 못하고
      자기가 화를 내는 타입입니다
      자둥차를 자기 맘대로 결정했으면
      최소한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생각이고
      남편은 이미 결정되어 끝난 일인데
      기분좋게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못마땅한 차에
      청소 문제로
      왜 말을 안듣냐고 터진 겁니다
      평소 같았으면 얼른 스톱하고 남편 눈치를 살폈겠지요
      하지만 나도 열받아서 잔소리 하든가 말든가
      기어이 거실을 다 닦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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