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이웃 블로그에서 새댁 시절에 시부모 모시고 살았던...
시부모 모시고 살면서 겪은 어려운 일과
한 번씩 다니러 와서 편하게 있다가 가는 아랫동서들이 부러웠다는 글을 읽었다.
우리들 대부분 그렇게 살았으니
맏며느리의 힘들었던 삶에 공감이 되더라.
1974년 결혼한 그 해부터 2012년 11월 시어머니 돌아가신 해까지
만 38년을...구구절절 기막힌 사연이 쏟아져 나올까 봐
블로그에는 시댁 이야기를 거의 안했다
꾹꾹 눌러서 가슴에 묻어 뒀으나
가끔은 다른 내용에 한 두 줄씩 묻어 나올 때도 있다
10년 전에 썼던
엄마와 아버지를 회상하는 글 말미에
시어머니가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내용으로 봐서 남편도 10년 전에는 지금과는 달리 내가 원하는 이상형에 가깝게 행동했구나)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로 대문에 들어서는 남자.
두리번거리다 안내를 받아서 사랑채쪽으로 사라지는 뒷모습까지
부엌문 뒷쪽에 숨어서 내다보고는 가슴이 철렁 했단다
학생복을 입은 19세 그 청년에게 첫눈에 반해서,
혹시나 저남자와 혼인이 안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는 엄마의 솔직한 고백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엄마에게 들었다
아버지의 첫인상 이야기를 나에게 했던 이유는,
그 해에 교장으로 발령받은 아버지가 거창군으로 가시면서
엄마는 우리들 때문에 같이 가지 못하고 할머니가 대신 가셨다.
처음으로 남편과 떨어져서 살게 된 엄마는,
긴긴 겨울밤 어느 날
고등학생 큰딸에게 아버지의 첫인상을 옛 이야기 삼아 들려주셨다.
180의 키,
우리 6남매 아무도 아버지 만큼의 인물이 없는( 잘생긴 아버지와 보통의 엄마를 반반씩 닮아서) 미남에
일본에서 공부하다 몇 달 전에 귀국한 청년.
외모 만으로도 반할 만 했겠다.
작은 집에 단출한 살림살이,
외갓집과 비교하면 엄청 초라하지만 신혼생활이 날마다 꿈인가 했다는...
그 말을 하는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엄마는,
고등학생 딸에게 "너거 아버지 인품 때문에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참아지더라" 하셨다.
아마도 엄마의 그 말이 내가 남편을 고르는 기준이 되지 않았을까?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수준의 남자를 택하자'
남편에게 우리 부모님 얘기도 자주 했었고...
어쩌면~ 내 남편은 나의 그런 성향으로 자기도 모르게 길들여졌는지도 모르겠다.
크게 화를 내거나 속상해할 때,
"당신은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이니 그만한 일로 속상해하지 마세요"
남편을 달래며 내가 자주 했던 말이다.
겨우 스무몇 살의 어린 새댁이 뭘 안다고??
남편은...
살아오면서 무의식 중에 아내가 바라는 이상형에 가까워 지려고 절제하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문득 지난날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언젠가 모임에서 물었었지.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언제가 좋겠냐?
몇 살 때로 되돌아 가고 싶으냐?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다시 한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누구는, 청춘으로 돌아가서 멋진 연애를 해보고 싶다고도 하고,
누구는, 아이들 키우는 것을 다시 하면 잘하겠다고 하고,
그런데 나는,
다시 20대, 30,40대 어느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때보다 더 잘 살아낼 자신이 없다.
남편에게도, 아들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그래도 혹시나~ 새댁으로 돌아간다면?
놀고먹는 시동생을 대신해서 조카들 공부시키고 생활비를 책임지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거절했을까?
그랬다면 30년이 넘는 이 어이없는 희생은 안 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내 운명의 그릇 안에 내 몫은 정해져 있어서,
그게 아니었다면 다른 무엇으로 걱정하고, 또 많은 희생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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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위안을 삼는 거죠. 헛된 세월이 안 되기 위해서..
사실은 누구도 그렇게 희생양 삼을 권리는 없는 겁니다.
그레이스님의 운명의 그릇은 단단하고, 커서
그때로 만약 돌아간다고 해도 또 그렇게 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시댁도 꼭 그렇게 변하지 않고 똑 같다면 글쎄요.
그건 좀 생각을 해봐야되지 않을까요?
사람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뭐시라도 쬐끔은 변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ㅎ -
첫눈에 반한 잘생긴 남학생과 결혼해 꿈같은 신혼생활하셨고,
잘 생긴 남편이 인품도 멋있었다니 그레이스님의 어머님은 그 시절에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사셨네요.
30년간 일하지 않는 시동생을 대신해 조카들을 공부시키고, 생활비까지 제공하셨다니...
최선을 다하셨기에 과거에 대한 미련이 없는것 같습니다.
전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아 다시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 할수 있을것 같은데...-
그레이스2020.11.28 10:05
옛날의 부잣집 딸들이 다 그러하듯이
엄마는 마을의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거나
밭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게 허락되지 않아서
결혼때까지 친구가 한명도 없었대요
89세에 돌아가신 이모님은 국민학교 졸업하고 기차를 타고 진해 여학교에 다녔는데
엄마는 국민학교도 안가고 집으로 오는 가정교사에게 공부를 했다 합디다.
외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다가 첫눈에 반한 남자와 결혼했으니
얼마나 좋았을지... 상상이 됩디다
불행히도 42세에 사고로 돌아가셔서
70세가 된 딸의 기억에는 42세 젊은 모습으로 머물러 있어요. -
그레이스2020.11.28 11:13
시동생 이야기는
간략하게 정리를 하면...
시동생이 결혼한 후에 남편 돈으로 제과점을 차려 줬더니 2년만에 망해서...
다른 장사를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혼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시어머니 집으로 가서 함께 살게되어
내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살게 되었음
시동생은 자꾸 일을 벌려서 더 큰 손해를 보는 악순환이 계속됨
이혼하고 떠나는 동서가 나에게 전화해서
아이를 잘 돌봐주실꺼라고 큰형님만 믿고 떠납니다~ 인사를 받고,
염려 말라고 조카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함
중학교 졸업까지는 할머니와 살았고
고등학교부터는 학교 주변에 하숙을 시켰음
대학졸업후 취직이 되어 서울에 원룸을 구해 줌.
시어머니께는 생활비를 넉넉히 드려도
시동생이 뺏어가 다시 드려야 되는 일이 자주 생김.
대충 들어봐도 파란만장 스토리지요? -
그레이스2020.11.29 13:33
의지가 약한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술을 도피처 삼아 마시다가 점점 술에 빠져서
평소에는 소심하고 조용한 편이나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해서 이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술버릇 횡포 때문에 직장생활도 어렵게 되고...
트럭을 사 줘서 이삿짐센터도 했었고...
결국에는 우리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살 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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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마침 족발이 있어서 남편과 맥주 했습니다
저는 정량인 반잔을 마시구요
본문의 글과 바로위 그레이스님의 답글을 읽었어요
그야말로 파란만장 스토리 맞네요
동안 대략 시댁에 생활비 보내드리는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이렇게 소설같은 이야기, 드리마에서나 봄직한 스토리가 있으리라는것은 생각도 못해봤요.
화려함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한 어려움도 있으셨군요
그 어려움속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두아드님을 잘 성장시키셨으니
더 훌륭한 어머니! 그레이스님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레이스2020.11.29 08:09
나의 성격이 큰 도움이 되었던 시절이었지요.
영국으로 떠나기 전 그러니까
74년에서 81년까지는 월급을 반으로 나누어 보내야 했으니
경제적으로 무척 쪼들렸던 시기였어요.
런던에서는 해외수당과 주택수당이 따로 나와서 시어머니께 돈을 보내고도 괜찮았어요.
돌아오는 해에 중역으로 승진해서 부장까지의 퇴직금 받아서 시동생 줬고요.
예전에 썼던 글을 보면
한국으로 와서 두 아들에게
할머니께 생활비를 보내야 하니 너희들은 과외나 학원에 가는 거 없이
엄마가 도와줄테니 혼자서 공부해야 한다 고 말하고 서로 다짐했던 글이 나옵니다
여덟살이었던 작은애가
공부 하기싫다고 안하면 막내삼촌처럼 된다고
자기는 공부 잘 해서 아빠처럼 되겠다고 했어요.
그런 환경이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된 자극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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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2021.04.27 19:09
정미씨 반갑습니다~^^
며칠동안 과거의 글들을 읽었군요
정미씨처럼
예전 글을 읽는 많은 방문자들 덕분에 조회수가 4000 이상으로 올라가네요
내 글에 공감하고 이렇게 댓글을 남겨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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