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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마시는시간

시골의 노 부모가 자식을 기다리는 까닭은

by 그레이스 ~ 2022. 2. 1.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과거의 기억이 희미해졌거나

시골에서 살아 본 경험이 전혀 없거나 둘 중에 하나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시골에 사는 나이 많으신 부모들은

왜 명절에 자식들이 찾아오기를 그렇게나 강요하시는 지 모르겠다고 

부모가 먼저 내려오지 마라고 말해주면 자식들이 편할텐데

몇 시간씩 교통체증에 시달리면서 굳이 명절에 내려가야 하냐고... 안타깝다는 글을 읽었다

 

명절에 자식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는 

아들과 손주들이 보고 싶다는 그 한 가지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이유는,

시골은 수십 년을 한곳에서 살아왔으니 동네 사람들 모두 서로를 잘 아는 사이라서 

명절이라고 남의 집에는 자식들이 왔는데

우리 집에만 안 왔다는 그 자체가 남부끄럽고 자존심 상하고 

동네 사람들 보기에 나만 자식에게 무시당하는 아버지 같아서 

그 자체가 더 두려운 거다 

 

지금에야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명절에 자식이 안 오는 것도 예사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아들에게 대우 못 받는 부모이거나

아니면 그 집 아들이 사는 게 어려워서 고향에 올 형편이 못되거나...

남에게 그런 시선을 받는 게 부모에게는 못 견딜 노릇이어서 

(그 속마음은 숨긴 채) 보고 싶으니 명절에 꼭 와야 한다고 강요를 하셨던 거다

 

나는 남의 시선이나 그런 반응에 당당하고

상처를 안 받는 성격인데도  

명절인데 왜 아들들이 안 오냐고 삐딱하게 물어보면 좀 난감했었다 

그러니 시골에 계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부모라면

명절에 자식이 안 오면 어떤 심정일지 짐작이 되어 

일방적인 비난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시골에 계시는 연세 많으신 부모라도 

평소에 안부전화라도 자주 하는 아들이라면

명절에 못 오더라도 서운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 눈이 많이 와서 대구 다녀오는데 혼났습니다.
양가의 부모님들이 다 소천하시니 사실은 좀 편안해졌습니다만
명절 당일은 아무래도 친정에 못가게 되어서 서운했었죠.
지금도 사실 코로나만 아니면 큰댁을 가야하는데, 올해는 대구를 다녀왔습니다.
큰댁도 식구가 여섯이니 우리 내외가 가면 신경이 쓰이고..
동생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명절 음식도 먹고 덕담도 하고, 세배도 했습니다.
새벽에 눈이 많이 와서 사실 망설이긴 했는데, 안동 쯤 되니 말짱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죽령터널 지나니 설국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눈부터 열심히 쓸었습니다.
자식 입장에서는 요즘 편하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은 섭섭하시겠죠.

  • 그레이스2022.02.02 08:58

    부산은 눈이 안 오는 곳이라서 눈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젊은시절에 가 본 해인사의 눈덮힌 풍경이 떠올랐는데
    죽령터널 지나니 설국이라는 글에 또 그 때의 장면이 오버랩 되는군요

    젊은시절의 나는 울산에서 살았고
    시어머니는 일년만 사택에서 같이 살다가
    결혼 안한 아들과 산다고 인천으로 가셔서 ...
    명절에는 시어머니 계시는 곳으로 가고 그다음 일요일에 친정 갔어요
    시댁과 친정이 가깝지 않으면 어느집이나 비슷했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시댁에 당직이라서 못 간다 하고,여행가는 자식들도 종종 있었지요
    어쨌거나 가고싶지 않은 곳이니...
    시류에 따라 안 갈 수는 있어도
    자식을 기다리는 노부모를 비난하는 말은 안했으면 ... 하는 마음입니다
    70대 중반의 어머니가
    아들이 일년에 두세번 전화한다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이제는 덤덤해졌다고 하는데
    그 쓸쓸함이 어찌나 처연하게 느껴지는지 맘이 아팠어요

     

아들이 일 년에 두 번의 방문뿐이라니 듣기만 해도 너무하다 싶네요. 부디 그분 어머니의 마음이 단단해져서 그런 일에도 초연할 수 있기를 쓸쓸한 마음으로 빌어 봅니다.

  • 그레이스2022.02.03 00:21

    그 댁의 사정을 상세하게 썼다가 지웠습니다
    이제는 기대도 안한다며 ... 아들과 며느리가 잘 살기만 바란다고 합디다
    자기는 키우는 개에게 정을 쏟는다 하고요

     

    부산에 사는 후배가 명절인사로 전화와서 들었는데
    요즘도 마을 전체가 친척들로 이루어진 집성촌에서는 명절에 자식들이 안 오는 가정이 없을 정도로 다 온다고 합디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은 명절 전에 아들이 내려와서 모시고 가고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도시와 시골은 다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자식들 손주들이 와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해지는 건
    기분으로는 흐뭇하고 유쾌한 피곤이어서 ... 이게 행복이구나 싶은 만족감이 있어요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의 친구나 지인들은
    자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 이야기하고 카톡으로 손주들 사진도 보여주고 해서
    코로나 시기라서 모임이 없어도
    자식들 소식도 공유하고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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