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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나는 싫다 (2015 년 10 월 8 일)

by 그레이스 ~ 2022. 7. 21.

보내주신 곰국을 먹을 때마다 어떻게 이런 맛이 날까~,

감탄하면서 먹는다는 작은며느리의 문자를 받고,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 게 했었다.

살아가는데 지침이 될만한 내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고

 

아침에 남편에게,

어제 며느리와 통화한 내용을 얘기하고는,

사골과 꼬리를 사다가 곰국을 만들어서 또 보낼 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당신 것도 만들어야겠다고 했더니,

곧바로, 나는 싫다~ 내꺼는 안 해도 된다, 나는 아무것이나 잘 먹는다~라는.

 

남편이 "나는 싫다~"라고 하는 말은,

먹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아까운 것을 자식에게 보내야지 내가 왜 먹냐는 뜻이다.

사장으로 10년 지내는 동안, 최고급 음식도, 외국의 진기한 음식도,

접대를 하면서 또 접대를 받느라 다 먹어봤다면서,

이제는 비싼 음식 맛있는 음식에 관심이 없고, 아무거나 감사하게 먹는다고 하신다

 

지난번 큰며느리 친정 별장에 놀러 갔을 때

(평소의 남편 행동 때문에) 뜻밖의 일이 벌어졌었다.

사부인께서 준비를 하신 음식들이,

연어 스테이크, 전복과 문어, 보리굴비, 게장 등등...

선영이가, 시부모님께서 육고기를 싫어하신다고 해서 해산물 위주로 마련했습니다~ 하시길래,

아니에요, 저희 둘 다 고기를 좋아합니다. 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아들 부부가 밥을 사줄 때마다,

숯불갈비도 싫다~ 꽃등심도 싫다~, 비싼 음식은 무조건 싫다고 하신 시아버지를 보고,

며느리는 시아버지께서 고기를 싫어하시구나라고, 짐작을 했던 모양이다.

 

아들이 돈을 많이 쓸까 봐,

돈이 아까워서 거절했던 거라고...

젊은 시절에 고생하면서 살아서, 절약이 몸에 베여 그렇다고

신혼초의 에피소드를 털어놨었다.

 

월급의 절반을 시어머니께 보내고 나니,

고기와 생선은 사 먹을 형편이 안되어,

계란을 하루에 하나씩 아침에 남편만 프라이해줬는데,

어느 날은 숭늉을 가져오라고 나를 부엌에 보내 놓고, 그사이에 계란을 내 밥에 비벼놨더라고

그걸 보고 울어버렸다는... 가난했던 시절과,

남편이 결핵 걸려서 고생했던 시기의 어려움을

 

그 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몇 번의 위기에 대해서도

시부모의,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고생에, 큰며느리도 무척 놀랐던 모양이었다.

 

사돈께서도 우리 부부가 살아온 이야기에,

고난을 극복하고 잘 살아오심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 말씀도 해주시고, 따뜻한 인사 말씀을 거듭해주셨다.

 

예전 어른들 말씀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어머니는 생선 대가리만 잡수신다, 리 엄마는 과일을 안 좋아하신다,

우리 엄마는 짜장면을 싫어하신다

자식 먹이려고 양보하신 엄마의 모습을, 자식들은 엄마가 싫어하시는 걸로 기억하는...

그런 상황이 우리 집에서도 생길 줄이야~

 

다음에는 맛있는 꽃등심도 사주고, 숯불갈비도 사달라고 했더니,

예~ 어머님~ 많이 많이 사드릴게요~~~ 큰며느리가 다짐을 했다.

(시부모에 대해서 어찌 그렇게 모를 수가 있냐고, 친정부모님께 꾸중을 들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오늘 아침, "나는 안 먹어도 된다"라는 남편에게,

우리도 먹고 싶다는 말도 하면서 살자고...

지난번 일을 들먹였다.

 

 

  • 그레이스2015.10.08 20:51
    아들과 며느리가 뭘 드시고싶으냐고 물으면,아버지의 대답은 항상 1인당 2만원을 넘지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고깃집을 갈 수가 있나요.
    한번은 속상해서,
  • 큰아들 형편이 좋은데 왜 그러냐고 따지듯이 물었더니,
    아들이 친구들과 호텔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건 아들의 수준에 맞는 소비니까 괜찮고,
    나는 내 수준에 맞춰서 생활하는 게 합당하다고...
    자기는 이제 은퇴자라서 한끼 식사가 2만원이면 호사하는 거라며,
    낚시 갔다가 식사때가 되면(거의 대부분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가지만),
    김밥 한줄이나 6천원짜리 식당밥 먹는다고 합디다.

    우리부부가 외식을 해본 게 올해는 한번도 없는 것 같아요.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정도?
  • 키미2015.10.08 18:54 

    돌아가신 친정엄마 생각나서 가슴이 찡하네요.
    전화하면 절에 가야 하는데 택시 탈까? 하십니다. 그러면 제가 당연히 택시 타셔야지, 제가 돈 보낼게요.
    물론 돈이 있으셔도 저한테 일부러 물어보시는 줄 알죠. ㅎㅎ
    고기 먹고 싶은데 혼자 먹으러 갈까? 그럼요...드시러 가세요.
    아버지는 늘 나가셔서 좋은 거 드시는데 엄마는 걱정이 많으셨죠.
    돌아가시고 나니 그런게 다 마음에 남아서..
    맛있는 거 많이 많이 드세요~~~~~

    답글
    • 그레이스2015.10.08 20:58
      은퇴하고나니,
      나가서 식사할 일도 없고... 세끼 식사를 집에서 하셔요.
      오히려 여자들은 동창모임,친목모임에 가서 색다른 음식을 먹을 기회도 있지만,
      남편은 동창들이 다 서울에 있으니,그런 모임에도 안나가시고.
      가끔은 근사한 호텔식사도 하고 그러면 좋으련만...낭비라면서 손톱도 안들어 가네요
  • 여름하늘2015.10.08 21:23 신고

    아들이 돈을 많이 쓸까봐 거절 해오신 아버님의 마음이
    가슴이 짠해지네요
    우리 어머님께서 예전에 일본에 오셨을때
    일본은 물가도 비쌀텐데
    아들이 앞장 서서 돈 쓰고 다니는 모습이 안스러워서
    일본 아들집에 안오신다고 하셨는데....

    담에 서울가시면 꼭 갈비드시고 오세요

    답글
    • 그레이스2015.10.09 08:19

      어느 젊은주부가 정신과의사에게 상담하는 내용을 들었는데,
      결혼하기전에는 엄마와 동생을 위해서는 돈을 썼지만 자기를 위해서는 한푼도 못쓴...생활이었는데,
      결혼후 아기를 낳고 남편이 선물로 가방을 사주겠다며,백화점에 같이 갔으나 결국 아무것도 못사고 돌아왔고,
      남편이 화를 내면서 평생 헌옷 입고,남은 거 먹고,그렇게 살아라~ 며,심한 말을 했다는...
      소년가장(소녀가장)으로 가족을 책임지느라 희생하며 살았던 사람은
      결혼이후에도 가족이 우선이어서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못쓰는 강박관념이 있답니다.

      우리남편이 그래요.
      고등학생때 아버지 돌아가시고,
      대학 1학년때부터 가정교사 아르바이트해서 엄마와 동생들 책임지고 살았거던요.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 돌보면서 살았으니,자기에게 드는 돈이라도 아껴서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던 것 같네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충분히 쓸 형편이 되었을 때도,자신을 위해서는 별로 안씁디다.
      아들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까울 게 없는데,(아내에게도 잘 쓰는 편이었고)
      자기를 위해서는 먹는 것도,입는 것도,쓰는 것도 아까워서 못하는...소년가장 증후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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