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블로그를 열어서
밤사이에 조회수가 높았던 글을 확인해 보다가
2016 년 9 월에 쓴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이라는 제목의 글이
내용이 무엇인지 생각이 안 나서 다시 읽어봤다
앞 뒤의 글도 다시 읽어보니
큰아들과 며느리가 일본 다녀 올 일이 생겨서 집을 비우면서
9 개월 지난 윤호 유라를 입주이모님 혼자서 돌볼 수가 없으니
어머니가 오실 수 있겠냐는 전화를 받고 흔쾌히 서울 가서 있다가
일주일 만에 집에 간 날에 생겼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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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원래 표는 4시 30분이었으나,
2시 넘어 공항에 도착해서 3시 30분 출발하는 것으로 바꿨다.
비행기가 앞 순서부터 계속 지연되더니, 3시 30분 출발하는 것도 4시가 넘어 탑승했고,
부산에서는 활주로가 빈 곳이 없어서 15분을 상공에 있었다.
결국 도착해서 가방을 찾아 나와서 보니, 5시 30분이더라.
출발하기 전에 남편에게 전화했더니,
캠핑카로 개조하는 일로 바빠서 공항에 못 나가니, 리무진버스를 타고 오라더라.
그럴 수도 있지 뭐
기다렸다가, 6시 출발 버스를 탔다.
반팔 티셔츠를 입었는데,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워서 가방 속의 긴팔 셔츠를 꺼내 겹쳐 입었다.
공항에서 들어오는 리무진버스는 돌고 돌아 한 시간 반이 지나 파라다이스호텔 앞에 도착이더라.
추운데 비까지 내리고... 택시가 안 와서 다시 남편에게 전화한다.
비 오고 힘드니까 호텔까지만 나와달라고
그냥 택시 타라고 하네.
(짜증이 났지만 어쩌겠어) 비를 맞고 호텔 앞 도로에서 기다리다가
택시를 타고는 기본요금 거리라서 미안하다고 하고,
행선지를 말했다.
(호텔 건물 앞에서 직원을 시켜서 택시를 부르면
장거리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하던 택시가 바로 오지만
그렇게 하는 건 기사님에게 너무나 큰 실례라서 도로에 나와서 지나가는 택시를 탄다)
빌라 앞에 내려서,
엘리베이터 없는 3층까지(계단으로는 4층) 여행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건,
내 몸상태로는 너무나 무리이니까,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밑에 도착했다고, 내려와서 가방 들어 달라고".
지금 주차장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으니, 경비아저씨에게 들어달라고 부탁하란다.
해도, 참 너무하네
기분이 팍~ 상해서 대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 올라가다가 허리가 부러지는 일이 있어도 내가 들고 간다~!!!
몸이 먼저 올라가서 계단 두 개씩 가방을 올리고, 그렇게 올라가는 중에,
남편이 하던 일을 중지하고 왔더라.
무슨 일에 집중하면 그것밖에 모르는 성격이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가족에게는 큰 단점이라고 하면서
옛날 일을 들먹이며 남편을 미안하게 만들었다.
영국에 도착했던 다음 해에, 임신이 되어
6 주가 되었을 때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유산하기를 원했는데
영국은 모든 게 공짜이지만 치료받으려는 대기자가 많아서 수술 날짜가 안 잡혀서
12 주가 되도록 차례를 기다려 유산을 했다
유산을 했을 때, 마취 깨고 곧바로 퇴원해서 집에 데려다 놓고,
골프에 미친 듯이 빠져있던 당신은,
물 한 그릇 떠 줄 사람 없는데, 그냥 골프 하러 갔었다고.
여섯 살 아들에게 물 한 컵 가져오라고 시켰더니, 부엌에서 물을 가지고 2층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왔더라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해서 펑펑 울었던 일과
연년생 두 살 세 살 아이를 데리고 추석음식 만드느라 정신이 없는 마누라 외면하고
추석전날 밤에 낚시 가서 약속한 새벽에 온 게 아니라
차례상 차려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니 9시가 넘어서 집에 왔었다고
변명이라고 하는 말이
일요일도 없이 밤중에 퇴근하는 생활을 몇 개월동안 계속하다가
추석이라고 처음으로 쉬는 날이어서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더라 했었다
어째서 하던 일 잠시 중단하고 급한 거 먼저 할 생각을 못하냐고~ 했더니,
아무 말도 못 한다.
지금 내가 얼마나 피곤할 것인가를 안다면,
또 비 오는데 우산도 없이 짐 들고 서 있는 걸 생각해서 공항은 못 오더라도 호텔까지는 왔어야지,
그걸 못했으면 밑에서 3층 올아오는 건 와서 도와줘야지
당신의 그 성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참아왔는지 알기나 하냐고,
웬만해서는 화를 안내는 성격이어서 번번이 그냥 넘어갔었다고,
화가 난 목소리도 아니고,
낮은 목소리로 조목조목 그렇게 말하고는 끝이었다.
공항으로 가기 전에 세훈이가 하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나더라.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시절에는,
아버지 성격 때문에, 어머니가 많이 손해 보고 산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두 분이 잘 맞춰 사셨다 싶고,
또 어머니는 노력과 희생을 다~ 보상받고 사신다~ 느껴진다고.
남편은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정리를 해놓고 올라왔고,
아기들 이야기, 아들부부 여행 다녀온 이야기, 작은아들 이야기, 하윤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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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년이 지난 지금 읽어봐도 참... 기가 막히네
나는 화가 났다가 욱하는 순간 다음에 감정이 폭발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을 속으로 넘기면 냉정해지고 차분해진다
만약에 감정정리가 안 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하루 이틀 더 지나서
감정 정리를 한 후에
남편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을 하는 생활이었다
환자가 된 이후에도
아내가 예전과 똑같이 처신하기를 기대하는 남편과
내 몸이 아프니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반박하는.....
지난 3 년동안 무수히 많은 스토리가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