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에 우체국에 다녀온다며 나갔던 남편이 한 참 지나도 안 오시네
점심시간이 되어 와서는 검은 봉지를 건넨다
홍시와 단감 - 우째 이번에는 과일이 정상적이다
단감은 다섯 개, 홍시는 일곱 개( 두 개는 먹었다)
왜 이렇게나 오래 걸렸냐니까 내년 봄에 이사할 곳을 찾아본다고 한 군데 들러 봤단다
그 아파트 번개 장터에서 사 왔다네.
남편은 대기업에서 나와 독립해서 수입이 아주 많았던 시절에
거제 통영 쪽으로 출장 다녀오는 길에 자주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먹거리를 사 왔었다
안 팔리는 과일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안쓰러워서 다 팔고 집에 가시라고 전부 다 사 왔다는데
경비실과 이웃집에 나눠 주려고 해도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나눠 먹기에도 애매했다
도와주려면 정상적인 거 비싸게 사 오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상품이 좋은 걸 왜 길거리에서 팔겠냐고 못 생기고 흠이 있는 거니까 길거리에서 파는 거란다
초등학교 시절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과일은 꿈도 못 꿨던 배고팠던 시절이 생각나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는 하나를 먹더라도 정상적으로 판매하는 과일을 사서 먹고 싶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당시 내가 마트에서 사 온 단감과 남편이 휴게소 들어가는 길목에서 사 온 단감을 비교해서 보여주고
사진 찍었던 게 있어서 복사해서 가져왔다 (단감 50 개 한 자루를 다 샀단다)
아주 작고 시든 밀감들
더 심한 고구마 - 제일 안 좋은 것만 골라서 가져왔단다
(앞으로는 도와주고 싶으면 돈은 주고 이런 물건은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육이오 전쟁 나서 피난 가는 길에
다섯 살 어린아이가 걷다가 폭격소리가 들리면 어른들 따라 도로 옆 고랑에 엎드리고
마음씨 좋은 군인들 만나 군용 트럭도 얻어 타고 이틀 굶고는 밭에서 뿌리도 캐서 먹고... 그래서 남은 음식을 못 버린다
지금도 서울에서 아이들이 먹다 남긴 식빵도 다 비닐봉지에 담아 오신다
큰아들은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을 텐데 아버지 성품을 아니까 빙그레 웃고는 그냥 쳐다본다
또 한 가지는
대학 4 년을 가정교사로 학비를 벌어서 다녔으니 자존심 상하는 마음고생도 많았을 테고 부잣집의 안 좋은 모습도 많이 봤을 거다
신혼 초에 가장 싫어하는 주부의 모습이
아침에 잠옷바람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 보는 모습이라고 했었다.
게으름의 표본처럼 보인다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