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살았다는 댓글을 써 놓고
언제부터인지 그 시작을 떠올려 봤다
술을 좋아하셨던 친정아버지께서는
내 기억에 내가 어렸던 젊은 시절에도 과음하는 날도 가끔 있었는데
남편은 술을 잘 마시지만 결혼 초기부터 한 번도 적정선을 넘는 날이 없었다
직원회식이나 동창모임 연말파티 야유회,
어디를 가서도 적정선에서 스톱하고 술이 취한 일행들이 잘 떠나는 걸 확인하고 온다고 했다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는 전날은
아무리 술판이 벌어져도 한 잔도 안 마시고 끝까지 맨 정신으로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듯
(남편이 처음으로 아주 취했던 날은 아들 둘 다 대학생이었던 어느 해였고 큰 아들이 아버지를 부축해서 집에 온 적이 있었다)
바쁜 중에도 쉬는 날은 집안일을 돕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도와주고
아프다고 하면 밤중에도 일어나 문을 연 약국을 찾아서 필요한 약을 사 왔던 적도 있다
사소한 친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을 거다
결혼 이후 아침에 출근하기 싫다거나,
회사 가서 일하는 게 싫다는 말을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속으로 싫은 날도 있었겠으나 그런 내색을 안 했을지도)
너무 피곤한 날이거나 새벽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옷만 갈아입고 나가는 날도
출근 안 하고 하루만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하더라
남들과 똑같은 월급 받으면서 왜 당신만 그리도 열심히 일하냐고 물었더니
나는 월급 받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성공하는 게 더 나은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거니까
소신대로 산다면서 남이 놀던 일하던 상관없다고 했었다
중역이 된 이후에는 겨울이라도 여섯 시 전에 집에서 나가서
회사 앞 호텔 수영장에서 30 분 수영을 하고 일곱 시 정각에 중역회의에 참석한다고 했다
자기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탄을 하고 존경으로 이어졌을 듯
2020 년 7 월에 쓴 첫 사회생활과 술이라는 제목의 글에
남편의 일화가 몇 가지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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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회생활과 술
며칠 전에 미국 사는 이웃 블로그에서
만 21세 된 조카의 파티를 열어 준 이웃집 글을 읽다가 옛 생각이 났었다.
미국은 만 18세부터 성인이지만, 술은 만 21세가 되어야 합법적으로 허락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술집에 갈 수도 있고 술을 마시는데 제약이 없는 만 21세 생일에
주인공 친구와 부모의 친지들을 초대해서 크게 파티를 열어준다고.
영국에서는 만 5세 생일을 우리나라에서 돌잔치를 하듯이 크게 파티를 한다고 해서
나도 우리 아들들 생일파티에 반 친구들 다 초대하고,
파티 진행자까지 불러서 크게 잔치를 해줬었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만 5세라는 뜻이다.
만 5세에는 정식 1학년이 아니고 예비반으로 1년 다니면서 단체생활에 대한 규율을 배웠다.
술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는 찾아보니 만 19세부터 허락이 되는 모양이다.
대학에 입학하는 나이가 만 19세이니 20세에서 1년 낮춰졌다고 한다.
고등학생일 때도 식사 중 포도주를 마시는 경우는 가끔 있었으나
생일이나 집안 행사가 있는 날이었으니 술 마시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제대로 술을 마셨다고 할 수 있는 사건은 두 아들 다 대학 입학 후 신입생 환영회가 처음일 것 같다.
큰아들은 그 당시 부모는 울산에서 살았고 아들은 학교 옆에서 하숙을 했으니
첫 경험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나중에 이야기로 들었다.
환영회에서 술에 취해 하숙집에 와서 자고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눈을 떴다고.
그 첫 느낌이
야~~~ 이렇게나 환 해진 시간에 일어나도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면서
국민학교부터 학교에 다닌 이후로
해가 뜬 이후에 일어난 첫 번째 날이었다고 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시간에 일어나 현관에 서서 인사를 하고
그 후에 둘 다 아침밥을 먹기 전까지 공부하는 게 일과였으니 )
둘째는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한 이후에 대학 입학을 했다.
동아리에서 주최하는 신입생 환영회가 있다고 하고는,
술을 많이 마실 거고 너무 늦어서 집에 못 올 수도 있다고 양해해 주십사고 하더라.
아버지가 동아리 회장 전화번호를 아들에게 물어서
저녁 시간 즈음에 전화를 하셨다.
신입생 ㅇㅇㅇ의 아버지라고 하고,
환영회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겠다고 인사를 하고는,
오늘 처음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날이니 선배님에게 잘 부탁한다고.
그리고 아이가 술에 취하면 선배님이 직접 택시를 불러서 태워 보내달라
전화를 받으면 아버지가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고, 부탁했단다.
아들은 신촌에서 대치동까지 택시를 타고 왔었다.
신입생 아버지의 전화 덕분에 그 해 환영회에서는
심하게 술을 권하는 일도 없었고,
취해서 쓰러지는 학생도 없이 환영회를 마쳤다고 하더라
평소에 아버지와 유대관계가 없는 집이었으면
아버지가 그런 일에 관여하는 것에 아들의 반발이 심했을 텐데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반발이 없었다.
영국에서 귀국했을 때,
큰 애가 아홉 살로 3학년이었는데,
사택의 그 또래 남자애들은 축구와 야구를 수준급으로 잘했다.
영국에서는 축구는 즐겨했지만 야구는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아이가 실망이 컸었다.
퇴근한 아버지가
테니스장 옆의 빈 터 철봉대에 야구공을 묶어서 아이 허리 높이로 매달아 놓고
저녁마다 배트 휘두르는 연습을 시키셨다.
공 받는 연습도 매일 하고...
테니스장 야간 불빛이 헤트 라이트처럼 밝아서 밤늦게까지 연습할 수 있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는,
동네에서는 자동차 때문에 위험하다고
울산 시내를 벗어나 언양 즈음의 시골길에 자동차에 자전거 두 대를 싣고 가서
아이들은 앞서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아버지는 뒤따라 천천 운전해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그렇게 하루종일 연습을 하고 저녁에 왔었다.
고등학생 때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주말에 등산도 가고, 낚시도 가고, 밤늦게 노래방에도 데리고 가고...
아이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시는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
만약을 생각해서
동아리 회장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아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단다.
추가,
술을 과하게 마시고 술로 인한 실수를 하거나
과속운전이나 난폭운전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의 인생이 소중한 사람과 지키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은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을 망쳐버리는 행동은 안 한다고요.
아내와 예쁜 아기가 있는 젊은 남자가
집 밖을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있겠냐고?
음주운전이나 난폭운전으로 그 행복을 망쳐버리려고 하겠냐고?
직장에 다니는 청년이 자기가 모은 돈으로 작은 차를 한대 샀다면,
그 차를 얼마나 애지중지 아끼겠느냐
한순간의 실수로 망쳐버릴 생각을 하겠느냐.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나가고 있는 사람이
한순간의 실수로 자기의 커리어에 큰 대미지가 생길 일을 만들겠느냐?
젊은이든 노인이든...
소중히 아끼는 게 있는 사람은 그 소중한 것을 오래 간직하려고
평소에도 함부로 살지 않는다고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