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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형제자매들.

친정아버지.2

by 그레이스 ~ 2007. 12. 7.

지금 쉽게 잠들어 보려고 포도주를 두 잔 마시고,

나른해 지기를 기다리면서 오늘을 기록하려 합니다.

 

오전에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창원에 도착한 시간은 12 시.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에 병실을 지키던 여동생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는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러니 네 큰오빠를 불러다오." 하셔서 형제자매들에게 호출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한 명 한 명 병실에 도착할 때마다 되풀이하시는 아버지 말씀이,

간밤(꿈)에 아버지 사시는 집에 다녀왔고, 아들 딸 집집마다 다 다녀오시는 꿈을 꾸셨다고...

"이제 갈 때가 된듯하니 팔에 꼽고 있는 모든 영양제와 항생제를 떼고 자연사하고 싶다"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고 싶으니 내 뜻대로 해다오."

"이렇게 생을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나는 맑은 정신으로 너희들과 작별하고 싶다" 하시는데...

 

(아버지께서 담당의사에게 강력하게 요구를 하셨더니 자식들의 동의를 받으라고 했답니다)

우리 모두는 당황하면서도 서울에서 저녁 늦게 도착한 남동생을 기다려서

모든 형제가 의논 끝에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오빠가 대표로 아버지 뜻에 따르겠습니다 했더니,

 

"고맙다 내 인생은 참 행복했고 내 죽음 또한 행복한 죽음이다"라고 말씀하시네.

너무나 또렷이 말씀하시고 정신이 맑으셔서 믿기지 않지만

의사 선생님 말씀이 모든 약을 제거하면 24 시간 정도 후에 운명하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끝내신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라고 하시고...

아버지 편안하시라고 오빠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의 개구쟁이 추억을 얘기하고,

나는 일곱 살 때 서울 출장 다녀오시면서 사주신 예쁜 색깔의 소꼽장과 새 구두 이야기.

동생들도  즐거웠던 추억들, 우스웠던 일들을 기억해내고... 그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신다.

 

어째 저리도 작은 소리까지 잘 들으실까?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이토록 위급상황인데도 아무런 통증이 없으시다는 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

지금의 주사약 이후엔 더 이상의 영양제와 항생제는 쓰지 않기로 의사와 합의했었고,

지금의 약이 4 시간은 더 걸린다길래 잠깐 다녀가려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 12시.

 

아버지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아들, 딸들에게 잠깐 쉬고 오라고 당부도 하시는 우리 아버지

무서울 정도로 반듯하게 삶을 마무리하시는 모습이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히 따라 하지 못할 스승을 보는 듯도 합니다.

 

복잡한 내 마음을 이렇게 횡설수설 쏟아놓고

새벽녘에 아버지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갑니다.

잠깐이라도 잠을 청하려 했는데 이렇게 울면서 밤을 새우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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