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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형제자매들.156

작은 여동생 문병을 다녀와서. 어깨를 감싸안으며 작별인사를 하고,울먹이는 동생과 눈맞추며 서 있다가... 그렇게 병원을 나왔다. 긴~ 병으로 새삼스레 더 놀랄 것도 없는데, 볼때마다 처음인양 목이 메인다.기집애~ 어찌 그리도 복이 없을까?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으로 넋을 놓고 있다가 내릴 곳을 놓칠 뻔 했다. 2010. 6. 3.
마음 졸인 2주일. 여섯 형제자매들. 때로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각자 나름의 힘든 시기도 보내면서 지금껏 용케도 잘 버텨왔는데... 2주전 여동생에게서 제부의 실직 소식을 전해듣고는 어찌나 마음이 무거운지. 3남 3녀 형제자매중 처음있는 일. 몇년전부터 퇴직후의 일을 준비하고 떠날 계획을 다 세워둔 오빠는 다시 재신임을 받아서 2년간 임기가 연장되었다는데 아직 경제적으로 준비가 안된 동생네는 어떡하냐? 아들 셋,사위 셋 - 여섯중에서 가장 기대치가 높았었는데... 화려한 졸업장과 실력 이외에도 개인의 힘으로는 어쩌지못하는 운이라는 변수가... 그래서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려운게야~ 56세라는 나이가 새직장을 알아보기가 쉽지않을텐데... 어떡하나? 사실 명훈이는 아직 어린 나이이고,또 직장 3년차 쫄병이어서 지금의 어려운 경제.. 2009. 2. 21.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신날. 지난번에 동생들과 약속한 대로 일찍 출발해서 별 차막 힘 없이 창원에 도착했고, 백합 한묶음을 사들고, 두 여동생과 아버지 산소에 갔었다. 내가 대표해서 큰소리로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절하고... 나는... 참 운이 좋은 아이. 51년 1월 - 전쟁 중에 태어난 여자아이가 50년대 그 어려운 시절에 생일상이라니 어림도 없는 일이지. 하나, 아버지 생신 바로 다음날에 태어난 나는, 설령 그게 전날의 음식일 망정 한 번도 빠짐없이 풍성한 생일상이었고, (오빠도, 누구도 그런 대접은 못 받은) 인사 오신 손님들에게 "내일은 제 생일이에요"애교 덕분에 용돈도 푸짐했었지. 나를 위해 마련한 음식이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난 나를 위한 음식이라 생각하고, 내가 복이 많은 아이라고 상상하기를.. 2008. 2. 15.
에피소드 모음 1. 동아일보 기자 김동욱. 부산, 경남 지역의 대선 취재차 내려와 있다가 직장 상사의 부친상이라는 연락을 받고 왔다는 젊은이. 같이 온 나이 많은 선배들 (논설위원 등등 평소에 신문에서 많이 보던 이름들.) 술 시중을 드느라 바쁜 청년이 준수하게 인물도 잘 생겼구나 하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올케언니 그쪽으로 가더니; 니가 동우기 아이가? 김동욱이 맞지? 하며 덥석 손을 잡는다. 동욱이 아버지와 오빠는 과거 오랜 직장동료. 그 말을 듣고 내가 가서 "동욱아~ 나, 명훈이 엄마다" ( 동욱이는 명훈이 친구) 이 녀석 눈이 휘둥그레진다. 올케와 나는 그 아이가 동아일보 기자인 줄을 몰랐고, 서울 동생은 우리들이 동욱이를 알 줄 몰랐고, 정작 본인은 어른 세사람이 한 형제인 줄 몰랐고... 그 자리에 있던 만.. 2007. 12. 15.
지난 일주일 기억 단지에 담아두고 싶은 여러 가지 일들 중에 내 실수부터 먼저 소개합니다. 앞으로 겪게 될 이웃들에게 참작을 하라는 뜻에서 공개할게요. 장례를 치르는 동안은 (호상이라고 하더라도) 상주들 모두 슬픔, 아쉬움, 부족했던 점, 피로감 등으로 마음 상태가 많이 불안정한 상태여서 마치 '젖은 종이'같이 찢어지기 쉬운, 감정 통제가 어려운 상태이니 서로서로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장례식 후에 싸움 나거나, 마음 상해서 멀어지는 일이 많이 생기는 이유가 약간의 언짢음도 자기감정에 증폭되어서 발끈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장례를 마치고 형제들이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 내가 막내에게 약간의 주의를 줬는데 막내가 발끈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평소엔 내 말에 잘 따르던 막내여서 더욱 놀랐어.. 2007. 12. 15.
친정 아버지.3 장례를 마치고 어제 왔습니다. 사인은 폐렴. 6 월에 식도암 수술을 하셨는데 (병원에서 3년은 더 살 거라고 했다) 봉사활동으로 맡고계셨던 회장 직책도 넘기고 주변정리를 하시느라 무리한 일정으로 여러 행사에 다니시더니, 급격한 체력 저하로 쓰러지셔서 입원하셨고, 한 달 만에 떠나셨습니다. 폐렴 때문에 호흡이 힘들었지만 암이 퍼지지 않아서 통증은 없었기에 지켜보는 우리들에겐 그나마 참 다행이었지요. 모든 약을 제거하고 다음날 면도를 원하셔서 해드리고, 물 타월로 온몸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머리까지 정갈히 빗은 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너를 키우면서 즐거웠고 사랑스러웠다고 또는 고맙고 든든했다고 작별인사를 하시고 오빠에겐 장례를 어디서 치를 건지 (운명하신 병원과 장례를 치룬병원이 다름) 사후의 절차도 들으.. 2007. 12. 13.
친정아버지.2 지금 쉽게 잠들어 보려고 포도주를 두 잔 마시고, 나른해 지기를 기다리면서 오늘을 기록하려 합니다. 오전에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창원에 도착한 시간은 12 시.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에 병실을 지키던 여동생에게 하시는 말씀이, "나는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러니 네 큰오빠를 불러다오." 하셔서 형제자매들에게 호출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한 명 한 명 병실에 도착할 때마다 되풀이하시는 아버지 말씀이, 간밤(꿈)에 아버지 사시는 집에 다녀왔고, 아들 딸 집집마다 다 다녀오시는 꿈을 꾸셨다고... "이제 갈 때가 된듯하니 팔에 꼽고 있는 모든 영양제와 항생제를 떼고 자연사하고 싶다"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고 싶으니 내 뜻대로 해다오." "이렇게 생을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나는 맑은 정신으로.. 2007. 12. 7.
친정아버지.1 열흘 전 서울 갔을 때 세훈이에게 말했었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장례식에 참석하는 거보다 살아계실 때, 널 반가워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실 때, 찾아뵙는게 더 좋겠다고... 먼저 약속된게 있고, 다른 일들이 있어서 12월 8일에 내려가겠습니다 그랬었는데 밤에 전화가 왔었다. 아침 8시 30분 비행기로 내려갑니다. 해서 우리 부부도 8시 40 분쯤 집에서 출발해서 김해공항에서 세훈이를 만나 창원으로... 병실에서 아버지를 뵙고나니 오늘 내려오기를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지난 토요일에도 책도 읽으시고, 명훈이, 세훈이 소식도 이것저것 많이 물으셨는데, 목요일부터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셨다며 겨우 몇 마디 말씀만 하시고, 손만 잡아주신다. 우리 모두 마음으로 각오하고있으면서도 애써 내색은 안 하려는 아들, 딸들... 2007. 12. 2.
할머니코끼리의 지혜. 혈중 산소량이 30% 밖에 안 되는 위급상황이라고 가족회의를 하라는 의사의 통고를 받았다며 아버지의 위급함을 알려왔다. 전화받고 10 분만에 출발해서 병원 도착하니 12 시 급하게 모인 (서울을 뺀) 거제,부산,진주,창원 네 곳의 형제자매들. 더 나빠지면 목에 구멍을 내어 산소공급을 할것인가가 쟁점. 아들 둘,딸 둘, 며느리 사위까지 다들~ 조심스럽고... 내가 나서서 그랬다 이런 문제는 딸들이 책임져야한다고. 많은 자식들이 피붙이의 감정이 앞서서 급한 마음에 생명연장을 해드리고 싶고, 고통스러움을 면하게 해드리고 싶은 맘으로 수술에 동의하게 되는데 나는 반대다. 정상으로 회복해서 퇴원하게 되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게 되어 나쁜 상태가 되더라도 한번 장치를 했으면 혼수상태로 몇 달이 지나더라도 의.. 2007. 11. 5.